거북 / 강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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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25회 작성일 24-05-17 09:37본문
[제4회 시산맥 시문학상 수상작]
거북
강기원
내 몸속에 거북 한 마리 들어와 산다
언제부터였을까 나 대신
주억거리고 도리질하고 비굴하게 움츠러들기도 한다
학이라면 모를까 거북이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
녀석이 머리에 달려 있으니
걸음도 갈짓자, 등도 시멘트 들이부은 듯 딱딱하게 굳어간다
횡단보도 건너갈 일이 사막처럼 아득해지고
낯가림이 심해지고
낳아 놓은 자식들 제 알아서
살 놈 살고 잘못돼도 내 탓 아니려니 싶어진다
이미 지난 일 후회하면 뭐하나 뒤돌아보는 일도 없다
그 뿐인가
짧은 목 길게 빼어 바라보는 곳은
비린 바람 불어오는 바다 뿐
태내에서부터 출렁이던 양수의 바다 뿐
나 죽거든 문무왕처럼 나라지킴이는 못되어도
낙산 바다에 뿌려 달라 유서도 쓸까 한다
이 난감한 녀석을 어찌 내보내야할지 궁리하는 대신
나는 점점 거북이 되어간다
침침한 눈 끔뻑이며, 홀로 거니는 고독한 거북
내 등판이 돌덩이인줄 알고 누군가 주저앉아도
무심결에 밟아도
끄덕끄덕과 도리도리 사이에서
굼뜬, 굼뜬, 거북한 거북이
―계간 《애지》 2023년 가을호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졸업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 당선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 『은하가은하를 관통하는 밤』
『지중해의 피』
시화집 『내 안의 붉은 사막』 『다만 보라를 듣다』, 동시집 『토마토개구리』
『눈치 보는 넙치』 『지느러미 달린 책』등
2006년 제25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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