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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災)의 여름 / 강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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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024회 작성일 15-07-17 08:35

본문

(災)여름

 

   강신애

 

 

기억을 불러내기 위해

홍차와 아스파라거스가 필요하지만

부추나 가지에도

기억은 땅속줄기처럼 주렁주렁 따라나오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삼척으로 가지

 

당신 없는 여름은 갈취일 뿐이고

어떤 변명도 유치할 뿐이라고

자외선이 환청처럼 파고들고

파도가 발을 걸지만

당신을 내다버릴 생각에 골몰했지

 

맹목과 장롱, 서랍이 비워지고

서류의 칸이 비워져

마침내 우울도 비워지기를

 

커튼을 떼어 무진장의 햇빛을 들여놓고

빛 속에서 비로소

인생이 내 손아귀에 들어 있음을 알았지

 

어머니라는 규칙을 몰아낸 후

텅 빈

뼈의 휴식

 

빛이 스러지면

재의 방

 

당신이 죽어야 살 수 있고 당신이 죽어도 죽을 수 있구나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회전문처럼

여전히 나를 돌리고 있는 당신

금지옥엽

죽지도 않는 당신

 

 

1961년 경기도 강화에서 출생
1996년 《문학사상》등단
시집 『서랍이 있는 두겹의 방』 『불타는 기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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