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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대식 / 정선 아라리, 당신 외 9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우대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5건 조회 9,361회 작성일 15-10-0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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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아라리, 당신 외 9편 / 우대식

                                
비가 오는 삼월의 마지막 날
마음의 회랑 안쪽에
정선 아라리 긴 휘장을 친다
다시 비가 내리고 또 다시 눈이 내린다
그 휘장 아래를 걸으면
밑도 없는 물길, 끝도 없는 산길이 나타나고
사라지고
내 슬픔이 무엔가 생각할 즈음
당신에 대해 명상을 한다
정선 아라리, 당신
왜 그렇게 천천히
또 다시 굽이굽이 적막강산에 서 있는가
비는 여전히 내리고
그 긴 휘장에 앉아 한 마리 짐승처럼
온 몸을 웅크린 채
소금 사러 가던 먼 길과
석탄으로 몸을 씻던 내(川)와
그런 길과 그런 내에서
당신을 기다리던
배가 고팠던 저녁
정선 아라리
당신,

유심 2015. 7월



원주 성당  

               
원주 성당 앞
눈이 내리고
온 데 간 데 없는 사람들
성모를 향해
성 예수를 향해 쏟아 붓던 기원들은
흩어져
또 흩어져
눈은 내리고
무딘 뿔을 단 사내가 공손히 뿔을 바닥에 내려놓고
모자를 벗는다
먼 죽음이 이곳에 도달했을 때의 자세처럼
기울어진 각도
그 기울어진 각도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과 생각들
텅 빈 몸에 눈이 내린다
쌓인다
등신의 좌대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서 고백하겠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딘 뿔이 점점 청동의 오래된 무기가 되어
마음 사방을 가두는
겨울날의 원주 성당

2015 가을 시와 반시 
 

 




백년만의 사랑 

                     

백 년 전 나는
긴 난전의 뒷골목에 앉아 있었다
점점이 어두워지는
거리에 등불이 켜지면
사람들의 긴 그림자가 내게로 왔다
젖은 채 다가오는
사람들
호리병 같은 젖가슴을 가만히 내밀었다
지긋이 입술을 대면
저 멀리 골목 끝에서 날려 오는 벚꽃 잎들
온통 꽃잎이 깔린 뒷골목에서 등불을 들고
걸어가는 반백의 사내가 있었다
이제 어둠의 잔을 채우고
꿈같이 지나온 날들을 생각하노니
시여 백년만의 시여
이제 내게 검이 아닌
하나의 사랑을 다오
차마 만질 수 없어 치어다 보다 울고 떠날
한 송이 꽃을 다오
백년만의 사랑이 또 다시 뒷골목을 헤매도록
그대로 놓아다오

2015.3.시와 표현

 

 



며칠 

                
청령포 부근 마을
작은 방을 빌어 한 며칠,
죽은 왕은 눈 속에도 자꾸 물을 건너고
어쩔 수 없다
꿈에서 꿈으로 며칠
배가 고플 즈음 강가에 서면
감발을 치고 길을 나서는 사내들의
눈이 매섭다
쉬이이 귀때기를 치고 가는 바람
눈은 며칠 멈추지 않으리
다시 걸어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갈 때
칼 같이 선 바위꼭대기에서
우르르 눈이 몰려 내려온다
나라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무엇입니까
어린 왕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꾸 장에 가는 아낙들의 뒤를 따른다
여기에 이르러
어름장 아래 물소리는 소리죽인 천둥소리가 되고
어두운 하늘 날아가며
점점이 우는 겨울새
그,
겨울날의 며칠


시인수첩 2014 여름
 

 




발광의 주파수 

                                                                   
   단원의 그림 모구양자도(母狗養子圖)를 보다가 눈이 흐려졌다. 어미와 새끼 개의 눈. 이 그림은 다 지우고 세 개의 눈만 남겨놓아도 좋으리. 어미의 눈은 파철지광(破鐵之光)의 그것이었다. 사람들은 자꾸 인자한 눈빛이라 하는데 내 눈에는 미친 듯한 나선형의 발광으로 보였다. 어린 새끼의 눈이 순진무구라는 것은 동의하겠다. 그러나 어린 새끼를 향한 당당한 미침, 뻗힘, 어떤 도발이 어미의 눈동자에 돌고 있었다. 오로지 하나의 생명만을 향한 인자함이 낭자하게 고여 있었다. 생명이 간혹 잔인하도록 모진 이유도 이 눈빛 언저리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발광의 주파수가 희미해질 때 우리는 고아가 된다.

2014. 여름 시인수첩
 

 




아내와 맨발 

                      
神께서 말씀하셨다
끼니 거르지 말라고
술 적당히 마시라고
지갑에 돈 없으면 추레하니 얼마라도 지니고 다니라고
그러던 神께서 아파 누었다
이마에 돋은 정맥이 파르르 떤다
神께 잘못했다고 수천 번을 빌었지만
神께서는 이미 알고 계셨다
당신께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면
저 탕아는 또 다시 고모라 城을 헤맬 것이라는 사실을
神이 누워계신 한 계절
나는 발꿈치를 들고
주막에서 주막으로 돌아다녔으나
神께서는 끝내 모른 채
누워계셨다
어찌 모르셨겠는가
다만
냉담(冷淡)으로 떠도는 한 인간을 가엾게 여겨
그렇게 다독인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섬광처럼 당신이 사라질 때
긴 회랑에서
집도 잃고 神도 잃은
한 사내의 맨발이 남긴
더럽고 황망한 발자국을 당신은 만날 것이다
중요한 것을 잃은 자들은
모두 맨발이다

2013 겨울 시와 사람





정선을 떠나며 

 

파울첼란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었던가
아름다운 시절은 흩어져 여자 등에 반짝인다고
시선을 거둔다
운명이란 최종의 것
정선 강가에 밤이 오면
밤하늘에 뜨는 별
나에게 당신은 그러하다
성탄절의 새벽길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기찻길 옆 제재소에서는
낮은 촉수의 등이 켜지고
이미 오래전에 예언한 미래가 사라지는 것들을 받아내고 있다
선명한 모든 것들을 배반하며
산기슭으로 흐르는 눈발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그리는 일은 또 언제나 부질없다
가끔 당신을 생각한다
생각하며 밥을 먹는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밥을 남긴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사랑이다

2013 가을 시와표현
 

 




山役4 


초여름 내리는 비는
여전히 슬프고
초여름 내리는 빗속에 마시는 술은
여전히 맑고
개울물은 조금씩 불어
장화 발목을 넘고
목수건에 물은 듣고
밥그릇에 내리는 빗물,
황토흙이 엉킨 장화를 벗고
공손히 술과 밥을 받고
스윽 허공에 젖은 수건을 문지르면
환한 얼굴이 몇,
보이다 다시 사라진다

2013 리토피아 여름




윤리학 

                                                            
   시는 윤리를 가르쳐 주었다. 시는 용기를 가르쳐 주었다. 시는 약간의 밥과 술을 주었다. 시는 죽음의 심연으로 가는 길을 열어 주었다. 시는 끝없이 뻥을 쳐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었다. 시는 여자란 죄악이 아니며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시에게 준 것이라고는 이런 쓸쓸한 고백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당신의 수형자, 어느 날은 깨진 사금파리를 입에 물고 당신의 혀에 깊숙이 키스하고 싶은, 배반한 애인의 복수 같은, 교도관을 죽이고 교도소의 주인이 되는, 모든 것을 되갚아주고 싶은, 남김없이.....


현대문학 2013.11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지옥을 유예하는 꿈을 꾸었다
내가 원한다면 다음 생애를 이어가며
지옥을 영원히 유예할 수 있다는 꿈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영원 너머 한번은 그곳에 가야한다는
괴로움에 몸을 떨었다
지상의 소시민이
이렇듯 큰 생각을 하며
지옥 아래 마을을 떠돈다는 사실이
조금은 쓸쓸했다
추운 겨울 저녁
들기름 바른 김을
숯불에 굽던
옛집으로 돌아가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눕고 싶다
오한 속에서 만나는
지옥의 야차와 일대의 싸움을 끝내고
오랜 잠을 자고 싶다
겨울날의 모든 저녁은 슬프다
봉당에 켜진 알전구처럼
겨울날의 모든 저녁이 나를 기다렸다

유심 2013. 4월

 

 

추천0

댓글목록

향기초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을날 오신 시인님
안뇽하세요
음..
구홈페이지에서
왼손의 그늘 / 우대식
부족하지만 포토방 모나리자정님의
멋진 작품으로 영상시방에 만들어 보았습니다

먹먹해서..
어쩜 이케 시들이 구구절절
가.을.이.라.서
더 그런가바요

저두 한 술하는데요
각1병 정도
어울리면 무한대 크크..

제 좌우명이 술 먹고 주사 부리지 않기인데요

가끔,
기절한적도 있더라구욥
지금은 그케 못 마시지만__::

시인님
따뜻한 순대 국밥 한 그릇
살포시 두고 가구여
또 놀러 올께요~~

물풀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물풀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대식 시인님 반갑습니다.
좋은 시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가슴 서늘할때 위로가 되는 좋은 시 잘 읽겠습니다.

조경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대식 선생님 어서오세요
시마을 가족과 함께 좋은 시 읽는 가을입니다
시마을이 더욱 풍요로워지는군요
고맙습니다!

향기초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니님의 멋진작품으로
낡고 깨끗한 방 / 우대식
시화로 만들어 영상방에 올렸는데요
음악 선곡하는데
고민을 조금 마니 ..
음..
음악때문에 시가 묻힐까봐여
근데
자꾸 슬퍼져서 그냥 올렸습니다

지독한 목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봐야 될 것 같네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오늘은 따스한 커피 한 잔 두고 갑니다~~

미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선 아라리, 당신 /// 누구실까요?
/당신을 기다리던
배가 고팠던 저녁
정선 아라리
당신,/// 혹시 화자의 어머니가 아니셨을까 추측해봅니다. 지금은 뵐 수 없는 분이 되셨을까요?
비와 눈까지 내리는 배경 때문에 적막이 더 깊습니다.

안녕하세요? 우대식 시인님, ^^*
오늘 /정선 아라리, 당신/ 시 한 편 감사히 감상하고 갑니다.
틈틈이 놀러 오겠습니다
시인님께서 시마을에서 함께 하시는 동안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

미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실은 제가 시인님을 처음 뵙습니다.
시인님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시를 읽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ㅜㅜ;;
작품 자체에만 국한해서 감상하려니 오독으로 소중한 시적 감동을 다 못 가져갈까 걱정됩니다.

/무딘 뿔이 점점 청동의 오래된 무기가 되어 /// 현대를 살아가는 나이 드신 가장들의 모습 같습니다.
시대에 뒤진 골동품 같은 지식, 정보, 능력 등...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께서 존재하심을 믿으십니까? 영적 체험이 있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기도에 상응하는 도움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영적 체험이 없는 분은 하나님 관심 밖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원주 성당 /에 하나님 사랑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향기초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을이 우수수
마음은 으시시 크크

시인님 안뇽하시져

새들의 무덤은 없다 / 우대식

포토방의용소님의 멋진작품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저두 새 발자국 쿡쿡
찍고 갑니다~~~

맛있는 감 몇 개 두고 갑니다^^

나문재님의 댓글

profile_image 나문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늘은 하루종일 외로운 삶에 대하여 생각했지요
남도 작은 동네 어디쯤, 정선 골짜기 어디쯤 작은 셋방 하나 빌어
가난하게, 아주 가난하게 사는 거에 대해서 생각했지요
인생이 어떠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지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지요, 영선아 너는 뭐를 원하는 것이냐 하고 물으면서...ㅎㅎ

미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백 년만의 사랑
/호리병 같은 젖가슴을 가만히 내밀었다 /// 어머니 같은 사랑을 주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이제 내게 검이 아닌
하나의 사랑을 다오 /// '검'은 경쟁에 필요한 모든 도구의 제유물, 하나의 사랑은 꽃(이성)으로 읽습니다.
'시' 그대로 읽어도 참 좋습니다
/백 년만의 사랑이 또다시 뒷골목을 헤매도록
그대로 놓아다오 ///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프실 텐데요, 시인님! 사랑할 대상이 없는 것보단 나을까요?
상상의 공간에 빠져 즐거운 시간 보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미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도 어린 왕도 불가항력으로 집에 갈 수 없나 봅니다

/나라는 무엇입니까
사랑은 무엇입니까 ///

/어린 왕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자꾸 장에 가는 아낙들의 뒤를 따른다 ///

집에 돌아갈 수 없는 이유를
어린 왕은 역사의 눈 때문에
시인님은 사랑의 눈 때문으로 읽어도 되겠습니까?
시인님이 집에 가지 못하는 이유를 어린 왕이 처한 상황과 같게 읽히도록 의도하신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함만 얹었을까요?^^*
멋진 시 감사합니다. ^^

미소..님의 댓글

profile_image 미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山役4/읽었습니다, 시인님, ^^*
어렸을 때 봤던 그 초여름 비, 밥 광주리이고 들에 가시는 엄니 따라가서 먹던 밥, 맑은 냇물에 일던 흙탕물...그 얼굴들...
저도 참 그립습니다.
단맛에 막걸리 홀짝거리다가, 늦 모내기하려고 써레질한 논에 어른들 식사하시는 사이에 들어갔는데 그 후의 일은 기억이 안 납니다
전 진흙을 엄청 싫어하고, 막걸리도 엄청 싫어합니다. ㅜ-;;

우대식 시인님. 고급 시 올려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록 독자로서지만 시인님을 알게 돼서 참 기쁩니다
이렇게 좋은 시를 쓰시는 시인님의 시를 간과할 뻔했습니다.
정갈한 빛이 도는 시, 언어의 활용이 눈 크게 뜨이게 하는 시였던 것 같습니다
한 달 동안 즐거웠습니다
시마을에서 늘 시로 대화할 수 있는 시인님이시면 좋겠습니다

향기초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기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인님
안뇽__::
다시 가 을 이 다가오네요^^

안빈낙도를 페하며 / 우대식

영상시방에 모셨습니다

멋 진 작품 감사합니다()

션한 냉커피 달달하게 타서 두고 가옵니다

대왕암님의 댓글

profile_image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우대식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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