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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안 / 환월(幻月) 외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김두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9건 조회 11,526회 작성일 16-03-03 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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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안 시인을 이달의 초대시인으로 모십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사물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실존에 대하여 깊이 있는 작품을

많이 발표하여 문단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시집 『달의 아가미』등이 있습니다

김두안 시인의 작품과 함께 멋진 계절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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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월(幻月) 외  / 김두안

 

 

  나는 어떻게 달에 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 거대한 강가에는 창문이 없는 빈집과 흔들리지 않는 나무 두 그루와

모래 위에 까마귀 화석이 서 있다

 

  나는 소란이 떠난 빈집의 마을을 바라본다 밝지도 어둡지도 못한 불면의

경계에서 달의 멸망한 빛을 생각한다

 

  어느 날 모든 구름은 지상으로 내려와 층층이 빙하 되었으며 까마귀들의

예언처럼 사람들은 강가에서 희고 거룩한 고요의 종교를 발견했다 청동빛

별이 무수히 지워지고 사람들은 스스로 혓바닥을 삼켰다 돌 틈에 작은 붓꽃을

심고 모두 강을 건너가 빙하 속으로 바람과 함께 결빙됐다

 

  강물은 가득 흐르다 부패한 침묵으로 멈춰 버렸으며 검은 바위들이 종단으로

부터 이탈한 자를 쫓는 짐승처럼 강가를 지키고 있다

 

  지상의 종교가 죽음 이후 시간과

  빛의 탄생을 약속했듯

  어제도 내일도 아닌 당신 목소리가 빙하에서 고요히 반사 된다

 

  나는 또 몇 번의 생을 거슬러와 이 거대한 멸망의 강가에서 내가 오랫동안 비워

둔 빈집의 문을 연다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노란 붓꽃에서 눈물 냄새가 난다

그토록 바라보았던 달에 와서

 

  나는 분명한 기억 속 당신의 환생을 꿈꾼다

 

  고요로부터 도망친

  내 눈동자에는 달의 환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죽음에 대한 리허설

 

 

나를 쏘아 올렸지

지상에 서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어

우린 둘이랄까

분열된 감정은 숫자에 불과했어

 

의사는 사과를 들고 말했다

당신은 어떻게 태양을 통과할 수 있었죠?

 

태양은 뿌리가 깊고 자꾸 부풀어 올랐어 두려움이 유일한 통로라고 직감

했어 빛의 문이 열리면 어둠은 시간이 되지 나는 투명하니까 나를 산채로

두고 떠나기로 했어 어쩌면 태양이 내 무의식을 통과했을 수도 있어

드디어 안녕

지상의 내가 보이지 않았어

 

나는 오직 어둠을 향해 날아갔어

빛으로부터 도망치듯

생각이 남아있는 속도는 너무 느려

우주는 허허롭고 쓸쓸한 회색 공간이야 아무런 미동도 없었지

 

별을 보는 것과 꽃을 만져보는 느낌의 공통점은

시선이 벌써 다녀왔다는 사실이야 나는 느낌보다 빠른 시선이 필요했어

 

밑도 끝도 없이 떠 있는

어둠의 산맥

별들이 새로 돋아난 행성들

등뼈가 앙상한 은하수는 사막에 버려진 낙타 해골보다 비참했어

 

온통 총탄에 난사당한

별의 도시는

붉은 술잔을 들고 서 있는 인간의 형상이었어

 

우주는 갈수록 암담하게 짙어지고 나는 침묵의 무덤 앞에 부딪히고 말았어

그리고 거기가 끝이었어 어떤 영혼도 통과할 수 없는

거대한 어둠의 벽

나는 홀연한 그림자로 또 두려움 앞에 서 있었어

 

의사가 사과를 자르며 말했다

이봐요!

당신은 아직 거울의 뒷면을 선택한 자유가 없어요

 

나는 어둠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했어

우린 하나랄까

분열된 선택은 숫자에 불과했어

 

죽음의 문이 열리면 빛은 시간이 되지 나는 이제 어둠이니까

우주여 안녕?

나는 다시 연둣빛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밤하늘의 등뼈에서 인용

 

 


집착

 

 

  당신의 강가에 집을 짓습니다 당신의 집이 흘러가는 구름이 됩니다 당신의 구름이 비를

내리고 점점 사각의 가방이 됩니다 당신의 가방이 겨우 혀를 깨물고 책이 됩니다 당신의

책이 화분에서 피어난 일요일이 됩니다 당신이 혼자 풀밭에서 잠을 잡니다

 

  당신이 꿈을 꿉니다 당신의 둥근 달이 뜹니다 달이 무척 작아져 돌멩이가 됩니다 당신의

돌멩이가 풀밭에 툭 떨어집니다

 

  당신의 강가에 안개가 핍니다 당신의 안개가 가만히 서 있는 발소리가 됩니다 당신의

발소리가 선명한 그림자가 됩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이제 망설이는 사다리가 됩니다

당신의 사다리가 목이 너무나 긴 망원경이 됩니다 당신의 망원경이 울지 않는 새가

됩니다 당신의 새가 담장을 넘어가는 빨간 풍선이 됩니다 당신이 풍선에 타고 동물원에

갑니다

 

인터뷰

 

 

  거미가 내려온다. 물기가 스미듯 거미는 어두운 방 안에 여덟 개의 모서리를 펼치고

죽어가는 자의 내부를 기록한다

 

  (침대는 무덤이 아니야

  나비를 놓아줘)

 

  거미는 죽어가는 자의 입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빛이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군

  거미는 신의 손가락처럼 투명한 타액의 비를 내린다

 

  혀를 다오

  혀를 다오

  너의 침묵은 애가 잃어버린 감정이지

  넌 거울 속에서 불길한 구름을 본 거야

  거미는 청색 혀의 수액을 빨아 먹는다

 

  거미는 다중성의 영혼처럼 검은 눈으로 죽어 가는 자의 머릿속에 속삭인다 무수히

걸어온 길이 녹아내는군 거미는 폐부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과 비명을 지르던 차가운

얼굴의 시선을 바라본다

 

  (나는 무덤이 아니야

  나비를 놓아줘)

 

  머릿속에서 태어난 거미 새끼들 까만 물방울이 되어 흩어진다. 거미가 네 개의 발로

전생을 사각사각 오려낼 때 죽어가는 자의 숨소리는 다시 저망 앞에서 팽창한다.

 

  말을 다오 

  말을 다오 

  너의 후회는 내가 풀지 못한 비밀이지 

  넌 거울 속에서 내 심장 소리를 들은 거야

  거미는 죽어 가는 자의 기억 속에 앞뒤가 없는 두 개의 문을 만든다

 

  밤은 죽고,

  나비는 하얗고,

 

  거미는 구름의 발을 잠재운다

  나비는 고요히

  허공을 가장 불안하게 날아간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꽃이라고 부른다

나는 꽃을 꺾어 해안에 던진다

 

새들이 부리를 닦고 바위에 사람 이름을 새긴다

눈썹처럼 돌아온 새가

차갑게 우는 것은

아직도 저녁 불빛을 향해 배 위를 달려가는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등대라고 부른다

나는 불빛을 꺾어 바위에 던진다

 

새들이 침묵을 물고 바위 속에 제 그림자를 접어 넣는다

말갛게 씻긴 발을 들이고 신열에 떨며 몸을 웅크린다

새들이

눈을 감고 바라보는 낡은 부리에는 어느 백랍 같은 영혼의 냄새가 묻어 있다

 

새들이 돌아오는 저녁을 안식처라고 부른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기로 한다

 

어두운 심연에서 떠오른 안개가 거대한 혀로 바위를 삼키고 해안을 점령한다

폭풍우 속으로 사라졌던

검은 배가 처량한 뱀의 소리를 내며 부두에 와 닿는다

안개 속에서 폐허가 된 마을로 걸어가는 젖은 발소리가 들린다

 

짙은 안개는

새들의 바위를 다 어쨌을까

 

안개 속으로 섬이 사라지고

죽은 이름들 밀려오는 밤이면 새들은 꽃을 먹지 않는다

 


바람이 다시 쓰는 겨울 


 

나는 강물의 얼굴을 알고 있다 새들이

죽은 버드나무 위에

집을 짓지 않는 시간에 대하여

 

물결이 물결 위에 쌓이는 겨울 강물의 폐허에 대하여

 

나는 죽어도 좋을까

다시 죽어도 줗을까

 

버드나무는 죽어서도 버드나무 뿌리에서 시작해 가지에서 끝나는

겨울의 찬란한 혁명을 알고 있다

 

버드나무를 구름이라고 부르는

언 강물을 긴 편지라고 부르는

 

까마귀 떼가 누군가의 심장을 파먹다

--- 외치며 날고 있다

 

버드나무의 얼굴이 귀신처럼 휘파람을 불면

눈이 올 듯 번지는

수상한 노을의 저편

 

바람이 바람결 위에 쌓이는

겨울 강물에

죽은 버드나무 그림자 백지장처럼 얼어가고 있다

 

얼어붙은 그림자 위에

바람이 새긴 투명한 잎사귀들

 

해가 얼음 속으로 스미는 저녁 무렵

 

버드나무의 전생을

바람이 다시 쓰는, 겨울 강물에 대하여

 

  ======

1965년 전남 신안군 임자도 출생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 『달의 아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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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金富會님의 댓글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두안 시인님....반갑습니다..
올려주신 좋은 작품 잘 감상하고 갑니다.
환한 봄날 지으시기 바랍니다. ^^

조경희님의 댓글

profile_image 조경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두안 선생님 어서오십시오
시마을에 좋은 시를 올려주시고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 받으시기 바라며
따뜻한 봄 만나시기 바랍니다

허영숙님의 댓글

profile_image 허영숙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두안 선생님 반갑습니다.
요즘 많이 바쁘실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 시 읽으며 많이 배우겠습니다

글이 중앙으로 집중되어 있어 수정해드렸습니다

손성태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손성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두안 선생님 고맙습니다.
시마을에 사는 가족님들께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느끼고, 공감하고, 뒤따라 가는 후배 시인님들의 힘찬 발걸음이
보입니다.
건안하세요~

최정신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정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두안선생님 초대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의 시로 많은 공부가 되는 시마을 문청들을 위해 내어 주신 시간에 다시 감사합니다
머무시는 동안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십시요^^

주거니받거니님의 댓글

profile_image 주거니받거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인연따라 대문을 들어서니 금파 선생님의 시세계를 접하여 영광입니다
먼 길도 가까이 걷는 지혜를 배우며 시상을 축하드립니다.

대왕암님의 댓글

profile_image 대왕암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김두안 시인 선생님 반갑습니다
선생님이  정성으로 만들어 올려주신 예쁜 글 잘 읽어 깊은 감상 잘하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 많은 글 올려주지면 감사합니다,
오늘도 건강하시고 즐거운 날 되시여 행복을 누리세요
선생님의 글 잘 모시고 갑니다 허락 해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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