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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연필 / 전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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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168회 작성일 15-07-16 05:27

본문

`


아버지의 연필




풍구의 회오리가 가슴께를 후려친다
갈탄의 낭자한 선혈 사이로
피 맛을 본 강철이 달아오른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강철연필은 학력편차가 크다
몇 자의 비문만 학습한 경우가 있고
공덕문을 줄줄이 암기하는 실력파도 있다
까막눈 돌쟁이는 단지 내장된 글자들을
강철연필로 파내는 것뿐이다
거북이나 두꺼비를 만나 호되게 당하기도 한다
환절기에는 떠나는 사람들 많다
해마다 반복되는 덕분에 그의 한문 실력도
지명이나 이름자에 두각을 나타냈다

담금질로 단단해지는 것은 강철뿐
돌쟁이의 가슴은 반비례로 물렁해졌다
구부리는 법을 터득한 까닭에 굽실거렸어도
칠십 평생 부러지지 않았다 그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 덕분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부끄럽게 생각한 적 있다

아버지는 물푸레나무들과 뒷산으로 올라가
겨우내 돌아오지 않았다
강철연필들은 처음으로 주인의 이름을 새겼고
얼어붙은 산 밑 저수지에서 떵떵
망치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찬물에 손이라도 씻는지 지난 봄에는 물푸레
푸른 물이 내려오기도 했다 오늘도
녹슨 강철연필들만 벌겋게 복습 중이다

旌 旋 全 公 重 鉉 之 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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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無疑)님의 댓글

profile_image 무의(無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휘청거림을 안추르며 달려갔다. 응급실 간호사가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어디 계시느냐 물으니 눈을 감췄다. 그녀가 머뭇거리다가 영안실 쪽으로 눈을 돌리는 잠시가 백 년의 세월만큼 무겁고 두려웠다. 떠밀리는 것처럼, 뒤에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영안실로 향했다. 아버지는 스테인리스 침대에서 흰 천을 덮은 채로 누워 외아들을 맞으셨다. 이러시려고 아들의 만류를 뿌리치셨을까. 이런 모습을 보여주시려고 예순하고도 아홉의 연세에 새벽마다 막노동판으로 나가신 걸까. 맞다고, 이분이 1남 4녀의 아버지이시고 평생 자식들 학비에 시달리던 가장이라고 의사에게 확인해주었다. 눈물은 무거워서 슬픔보다 늦게 도착한다. 주변 모든 것들이 아득하게 멀어지는 먹먹함 뒤에 뜨겁게 흐르기 시작했다. 사흘을 내리 철 이른 봄비가 내렸고 아들은 사흘을 내리 울었다. 울기만 했다.

아버지 노임을 받으러 다니며 사춘기를 보냈다. 고덕동, 개포동, 반포동 등등의 현장에 가서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점심도 굶으며 기다리다가 빈손으로 돌아서던 적 많았다. 빈손이라 집에 들어가기 미안했고 빈손인 걸 짐작한 어머니도 미안해했다. 이런 날은 저녁 밥상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도 없이 조용했다. 누나들도 나도 제각각 필요한 돈을 생각하며 밥을 삼켰고 어머니도 어림짐작을 하시느라 밥이 줄지 않았다. 담배 물고 나가신 아버지는 설거지가 다 끝나고도 한참 후에 돌아오셨다. 내 아버지가 이러고 사신 분이다. 변변한 배움도 없고 체구도 유난히 작아 힘이 달리는데, 자식 사랑에만 힘이 세서 평생 1남 4녀를 어깨에 얹고 사시다가 허망하게 가셨다.

아버지는 콘크리트 할석공이셨다. 저녁마다 정을 벼리고 물푸레나무 망치 자루를 다듬으셨다. 부러지지 않을 만큼만 각을 세우는 기술을 가지셨다. 그 정으로 콘크리트를 깨고 일당을 모아 자식들 학비를 댔다. 근근한 끼니를 넘길 때도 많았다. 아들은 당신께서 그토록 대단해 보인다던 건축 현장의 현장소장이 되었지만, 산에 모신 지 십 년도 더 지난 때였다. 절경은 시가 되지 않듯 절절한 생계도 시가 되기는 힘들다. 아니, 물기를 다 빼고 객관화하기에 난감한 일이다. 시와 내가 분리되지 않고 체험과 상상의 경계 긋기가 지난한 일이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스미곤 한다. 서로에게 번져가는 풍경들을 준법()이라 한다면 나는 그 기수(汽水) 지역에 정착하겠다. 무늬들이 얼룩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전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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