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흰 물 강가에서 / 송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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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80회 작성일 16-12-14 15:51본문
머리 흰 물 강가에서 / 송찬호
봄날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며 머리 흰
강물을 빗질하는 늙은 버드나무를 보았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밀고 당기며
강물은 나직나직이 노래를 불렀네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머리 흰 강물
푸른 머리카락 다 흘러가 버렸네
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나는 바지를
징징 걷고 얕은 강물로 걸어 들어갔네
봄날 노래 소리 나직나직이
내 발등을 간질이며 지나갔네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머리 흰 강물
푸른 머리카락 다 흘러가 버렸네
鵲巢感想文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마치 동양화 한 폭 보는 것 같았다. 강 그리고 버드나무가 있고 올 듯 말 듯 한 배가 있으며 버드나무 아래 머리 흰 노파가 앉은 수묵화 한 장 연상하게 한다. 논어에 있는 말이다. 사이우칙학仕而優則學하고 학이우칙사學而優則仕라 했다. 벼슬을 하면서 여력이 있으면 배우고 배우면서도 여력이 있으면 벼슬에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전자다. 이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시 5행에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시구가 이를 대변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버드나무에 의존한다. 봄날은 어느 한 시기를 말하며 강물은 세상 풍파를 뜻한다. 강가는 세상 풍파의 가장자리다. 배는 여기서는 이상향이다. 늙은 버드나무는 의인화한 어떤 기관을 말하기도 하고 실제 의인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물을 빗질한다는 표현은 아주 산뜻하다. 어찌 강물을 빗질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만큼 세상 풍파를 가름하며 요리조리 재본다는 뜻으로 쓴 하나의 은유겠다. 그러나 강물은 쉽게 넘어가는 그런 존재는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나직나직 노래를 불렀으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능글능글하였거나 상대의 가치만 떠보는 격이다. 결국, 버드나무나 버드나무에 누워 있는 나나 세월만 다 보냈다. 시인은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있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버드나무 가까이에서 강가로 걸어가는 시인을 볼 수 있음이다. 바지를 징징 걷고 얕은 강물로 가보았지만, 역시나 배는 오지 않았다. 평생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세월만 보낸 격이다.
이 시를 보면 ‘보았네, 불렀네, 버렸네, 들어갔네, 지나갔네, 버렸네’로 각운을 쓰고 있다. 더욱 조사의 경제적 생략은 이 시를 읽는 맛이 다분하기까지 한다.
봄날 강가에서 배를 기다리며 머리 흰
강물을 빗질하는 늙은 버드나무를 보았네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를 밀고 당기며
강물은 나직나직이 노래를 불렀네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머리 흰 강물
푸른 머리카락 다 흘러가 버렸네
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나는 바지를
징징 걷고 얕은 강물로 걸어 들어갔네
봄날 노래 소리 나직나직이
내 발등을 간질이며 지나갔네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머리 흰 강물
푸른 머리카락 다 흘러가 버렸네
鵲巢感想文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마치 동양화 한 폭 보는 것 같았다. 강 그리고 버드나무가 있고 올 듯 말 듯 한 배가 있으며 버드나무 아래 머리 흰 노파가 앉은 수묵화 한 장 연상하게 한다. 논어에 있는 말이다. 사이우칙학仕而優則學하고 학이우칙사學而優則仕라 했다. 벼슬을 하면서 여력이 있으면 배우고 배우면서도 여력이 있으면 벼슬에 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시인은 전자다. 이렇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시 5행에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나’ 시구가 이를 대변한다. 그러니까 시인은 버드나무에 의존한다. 봄날은 어느 한 시기를 말하며 강물은 세상 풍파를 뜻한다. 강가는 세상 풍파의 가장자리다. 배는 여기서는 이상향이다. 늙은 버드나무는 의인화한 어떤 기관을 말하기도 하고 실제 의인화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물을 빗질한다는 표현은 아주 산뜻하다. 어찌 강물을 빗질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만큼 세상 풍파를 가름하며 요리조리 재본다는 뜻으로 쓴 하나의 은유겠다. 그러나 강물은 쉽게 넘어가는 그런 존재는 아닌 듯하다. 왜냐하면, 나직나직 노래를 불렀으니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능글능글하였거나 상대의 가치만 떠보는 격이다. 결국, 버드나무나 버드나무에 누워 있는 나나 세월만 다 보냈다. 시인은 버드나무 무릎에 누워 있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버드나무 가까이에서 강가로 걸어가는 시인을 볼 수 있음이다. 바지를 징징 걷고 얕은 강물로 가보았지만, 역시나 배는 오지 않았다. 평생 배를 기다렸지만, 결국 세월만 보낸 격이다.
이 시를 보면 ‘보았네, 불렀네, 버렸네, 들어갔네, 지나갔네, 버렸네’로 각운을 쓰고 있다. 더욱 조사의 경제적 생략은 이 시를 읽는 맛이 다분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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