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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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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트 / 서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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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01회 작성일 16-12-16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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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보트 / 서효인




    발밑에 물이 들어온다. 이 중에 사제 서품을 받은 자는 지저분한 털을 귀밑에서 아래턱까지 이어 기른 취사병뿐었다. 미끄덩한 문어 요리를 먹다가 짧게 구부러진 검은 이물질을 발견한 수병이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민머리가 유독 반짝였다. 우리가 문어를 먹다니, 수병들은 물에 나온 연체동물처럼 당황하지만, 성호를 긋고.

    무릎까지 차올랐다. 지휘관은 제군들이 자랑스럽다. 너흰 지구의 가장 아래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을 것이며 조국은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취사병은 침을 뱉었다. 죽기 전에 수병들이 고해할 것은 차고 넘쳤다. 과연 바다 속살까지 그 분 뜻이 닿을 것인가. 하노이의 마을 창고에서 집단으로 저질렀던 추잡한 짓이 떠올랐지만, 기도합시다.

    허리가 젖었다. 너희는 오백쉰일곱 척에 달하는 상선을 까부쉈고, 살려 달라 울부짖는 사람들을 과녁 삼아 내기로 소총을 쏘며 낄낄거렸다. 조국은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사제는 흐느적거리며 양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다른 오락 거리가 없었잖아. 그 문어가 진짜 문어였다고 생각해? 수병들은 상상을 자제했지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코밑에 물이 있다. 수상한 먹물처럼 어뢰는 갑자기 터졌다. 유보트의 옆구리는 허리가 잘린 다족류가 되어 꿈틀거린다.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이제껏 살아 있었다고 믿었나? 먹물은 검은색이고, 털보가 만들어 내는 물음은 역하다. 군수품은 바닥났고, 고향에서 문어와 먹물은 원래 먹는 게 아니나, 이는 내 살과 피니.

    숨을 쉴 수 없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고자 해도 죽을 것이다. 변방의 제독을 떠올리며 수병들은 자신의 죽음이 뭍에 알려질까 궁금하다. 모든 게 조국 때문이었다. 아니다, 나 때문이다. 아니다, 문어 때문이다. 유보트는 침몰하기 위해 만들어졌지. 느린 고해 속, 털보와 취사병과 사제의 삼위는 절묘하게 일치하고.

鵲巢感想文
    문학은 크게 시와 소설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희극이나 평론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 중 시는 가장 짧으면서도 압축적이며 운율도 따르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요즘은 시가 시로 보이지 않을 때도 가끔 있다. 현대에 들어와 시는 하나의 공상과학처럼 창작의 일변도를 걷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일단은 함수관계를 살폈다. 무엇이 크고 무엇은 작은지, 또 무엇은 어디에서 나며 어디에 포함하는지, 또 어떤 것은 어느 부류에 넣어야 하며 이 부류는 어디에 소속한 것인지 말이다. 시는 역시 작난作難 같은 장난長難이다.

    유보트(U-boat)는 일종의 작은 배로 여겼다. 사전적인 의미는 대형 잠수함으로 적고 있기도 하다. 여하튼, 배다. 함수 하나가 생긴 셈이다. 시 1연을 보면 서품이라든가 취사병과 문어와 수병, 민머리, 연체동물 같은 시어가 나오지만, 어렵게 생각지는 말자! 모두 유보트와 관련된 시어며 이러한 시어는 유보트에 종속한다. 여기서 문어 요리를 먹은 그것도 검은 이물질을 발견한 수병이 나온다. 대립관계다. 그러니까 문어 요리가 을이면 수병은 갑이다. 문어 요리가 시나 그 소재나 또는 그 무엇이 될 수 있으며 또 그 무엇도 아니기도 하지만, 수병을 이루게 한 그 무엇은 충분하다.

    시 2연을 보면, 이제 물은 무릎까지 차올랐다. 물은 사회적 관계며 수준이며 어떤 잣대를 드리우는 기표다. 지휘관이나 제군이 나오며 조국도 나오는데 어떤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하는 시적장치다. 결국은 고해성사다. 시다. 그러니까 시는 거짓 없는 솔직함을 드러내는 문학이다. 솔직히 하노이의 마을 창고까지 들먹인 시인이지만, 분명 세계 2차 대전은 인류의 크나큰 오점과 상처를 남긴 건 사실이다. 일단은 기도하자는 여유가 있다. 나머지 시 문장을 다 끌어내려면 상상을 발휘해야 한다.

    이번은 허리까지 찼다. 그만큼 독해와 이해가 찼다는 뜻이다. 시 3연은 표면적인 뜻은 세계대전을 말하는 것 같아도 오백쉰일곱 권의 책을 읽었거나 그 무엇이다. 물론 시인은 글이 가장 좋은 놀이다. 이 놀이에 걸맞은 것은 당연히 찾기 어렵다. 문어는 시다. 여러 갈래의 뜻을 발산하는 다의성을 내포한 시는 문어에 비유할 만하다. 유보트에 탄, 수병이 가지고 놀 가장 좋은 먹거리는 문어다.

    이제 물은 코밑까지 닿았다. 어뢰는 하나의 기폭장치다. 어떤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먹을 것만큼 먹었으면 나올 때도 있는 법이다. 여기서 ‘그물’이라는 영화가 왜 자꾸 생각나는 것인지, 주인공 남철우는 북에서 취조당하다가 결국 남쪽에서 받은 물건을 배설한다. 똥 묻은 달러다. 시는 똥 묻은 달러나 다름없다. 배출했으니까! 고향과 문어와 먹물은 하나의 수병을 이룬 어떤 기억과 추억 그리고 연고다. 이러한 모든 것은 곧 수병의 살과 피가 된다.

    어차피 우리는 죽은 거나 다름없다. 시집을 내든 글을 써서 발표했던 나의 유보트는 바다를 향해 떠났다. 이 속에 탄 수병은 뭍에 알려질까 궁금하기까지 하지만, 시인은 널리 알려 꽤 많은 성취를 바란다. 이러한 문학 활동은 모두 조국을 위하는 것 같아도 나를 위하는 것이며 문어를 위하는 것 같다가 수병을 이루고 침몰은 곧 상생이며 이러한 상생 속에 시인은 고해성사를 마치게 된다. 절묘하고 일치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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