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 / 최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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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47회 작성일 17-01-15 00:03본문
어린이들 / 최금진
그때 황혼은 지고, 나는 노인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맸지
타고 온 자전거는 고삐를 풀고 우주로 달아나고
나는 빈 목줄만 들고 터벅터벅 코스모스 꽃잎 속으로 걸어들어갔지
마음은 날마다 흰 문종이 펄럭거리는 빈 방이었어
이불 속에서 몰래 씹는 칡뿌리처럼 밤은 아리고 달콤해서
어머니는 나를 근심하셨지
어머니가 아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꽃상여가 마을 산등성이를 돌아 나가는 환각과 환청이 코스모스 속에 피었어
내가 키우던 개는 턱뼈가 부서진 채 끙끙 앓았지
나는 어린이였어, 그러나 어머니도 어린이였지,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였어
우리는 짐승 같은 눈을 껌뻑거리며 서로의 상처를 혀로 핥아 줄 뿐
그 크고 따듯하고 비릿한 혓바닥이 우리들 위로의 전부였지
저녁연기가 마을 사람들 영혼 몇 개를 감아 하늘로 오르고
국수에서 나는 밀가루 냄새 같은
그 밋밋하고 초라한 저녁을 후루룩 마시며
우린 커다란 탈바가지처럼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웃었다
鵲巢感想文
날아가는 돌도끼 / 鵲巢
들판이었어 으뜸의 말 뛰기는 바짝 엎드려 있었지
우리는 저 번득이는 맹수의 이빨을 보고 있었어
들고 온 뭉뚝한 창은 던질 수 없었지
거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어
벌겋게 흐르는 초원의 피는 흰 갈대꽃만 적셨던 거야
갈대밭 사이 숨어, 숨만 졸이고 있었지
갈대밭 흔들릴 것 같아 도저히 숨 쉴 수 없었니깐
맹수의 이빨이 큰 바위를 돌아 초목이 우거진 쪽으로 사라졌을 때
들소의 잔해를 들고 노을로 향해 뛰었어
말 그대로 말 뛰기였어
이미 결딴난 들소의 잔해뿐인 동굴 어귀에
돌 볼끈 쥔 주먹이 뼈마디를 부러뜨리기 시작했어
골수만 빼먹기 시작했지
화톳불 가 앉아 달을 보며
으뜸의 말 뛰기, 큰 목소리, 개망초, 고들빼기도 모르고 말이야
오로지 돌 볼끈 쥔 주먹의 허공만 가르는 날개뿐이었어
그때, 윙 거리는 소리와 fuck 돌도끼 가슴에 와 박혔지
시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시인의 무한한 상상은 과연 어디까지 미치는 건가! 시를 읽다가 보면 도저히 맞지 않은 내용인 것 같아도 시만 생각하면 그런대로 맞아 들어가는 게, 시다.
위 최금진 선생의 시 ‘어린이들’ 감상하면 시인의 소싯적 추억을 되살리며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위 작품은 ‘詩’라는 주제 즉 시제는 ‘어린이들’이라고 했지만, 시를 묘사한 작품이다. ‘마음은 날마다 흰 문종이 펄럭거리는 빈 방이었어’ 라는 시인의 말은 시를 향한 시인의 욕구임을 볼 수 있다.
시는 복잡한 칡뿌리 같기도 하지만, 씹으면 재밌고 맛있다. 더욱 재미난 표현은 시 9행에 ‘내가 키우던 개는 턱뼈가 부서진 채 끙끙 앓았지’라는 대목이다. 시인의 시에 관한 맹렬한 믿음과 공부다. 개는 시를 은유하는 말이며 턱뼈가 부서졌다는 말은 시 해체를 말한다. 그만큼 공부에 몰입했다.
시 후반부에 들어가면 ‘국수’라는 시어가 나온다. 국수의 색감은 하얗고 곧다. 뜨거운 물에 풀어지면 아주 맛깔스러운 요기로 한 끼 식사는 충분하다. 나의 뜨거운 열정에 아주 맛깔스러운 작품이 나왔다면, 국수에 비할 바 있을까! 초라한 저녁에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하루가 따뜻하지 않을까 말이다.
물론 나의 시 ‘날아가는 돌도끼’는 위 최금진 선생의 시를 읽고 번득이는 마음에 한 줄 읊은 거다. 예전, 대학 1학년 때였지 싶다. 소설가 이문열 선생의 작품 ‘필론의 돼지’를 읽었던 적 있었다. 이 속에는 ‘들소’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어찌나 이미지가 강한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들소를 그렸다. 우리의 인간은 옛 추억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 잠재되어 있음이다. 시가 더 재미나게 그리려면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도 한 몫 있어야 한다. 금방 지은 거로 보면 시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창작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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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199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등단
그때 황혼은 지고, 나는 노인처럼 어쩔 줄 몰라 하며 쩔쩔맸지
타고 온 자전거는 고삐를 풀고 우주로 달아나고
나는 빈 목줄만 들고 터벅터벅 코스모스 꽃잎 속으로 걸어들어갔지
마음은 날마다 흰 문종이 펄럭거리는 빈 방이었어
이불 속에서 몰래 씹는 칡뿌리처럼 밤은 아리고 달콤해서
어머니는 나를 근심하셨지
어머니가 아는 걸 나도 알고 있었으니까
꽃상여가 마을 산등성이를 돌아 나가는 환각과 환청이 코스모스 속에 피었어
내가 키우던 개는 턱뼈가 부서진 채 끙끙 앓았지
나는 어린이였어, 그러나 어머니도 어린이였지, 모든 어른들은 어린이였어
우리는 짐승 같은 눈을 껌뻑거리며 서로의 상처를 혀로 핥아 줄 뿐
그 크고 따듯하고 비릿한 혓바닥이 우리들 위로의 전부였지
저녁연기가 마을 사람들 영혼 몇 개를 감아 하늘로 오르고
국수에서 나는 밀가루 냄새 같은
그 밋밋하고 초라한 저녁을 후루룩 마시며
우린 커다란 탈바가지처럼 서로 마주보며 까르르 웃었다
鵲巢感想文
날아가는 돌도끼 / 鵲巢
들판이었어 으뜸의 말 뛰기는 바짝 엎드려 있었지
우리는 저 번득이는 맹수의 이빨을 보고 있었어
들고 온 뭉뚝한 창은 던질 수 없었지
거저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였어
벌겋게 흐르는 초원의 피는 흰 갈대꽃만 적셨던 거야
갈대밭 사이 숨어, 숨만 졸이고 있었지
갈대밭 흔들릴 것 같아 도저히 숨 쉴 수 없었니깐
맹수의 이빨이 큰 바위를 돌아 초목이 우거진 쪽으로 사라졌을 때
들소의 잔해를 들고 노을로 향해 뛰었어
말 그대로 말 뛰기였어
이미 결딴난 들소의 잔해뿐인 동굴 어귀에
돌 볼끈 쥔 주먹이 뼈마디를 부러뜨리기 시작했어
골수만 빼먹기 시작했지
화톳불 가 앉아 달을 보며
으뜸의 말 뛰기, 큰 목소리, 개망초, 고들빼기도 모르고 말이야
오로지 돌 볼끈 쥔 주먹의 허공만 가르는 날개뿐이었어
그때, 윙 거리는 소리와 fuck 돌도끼 가슴에 와 박혔지
시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가 있을 수 있다. 시인의 무한한 상상은 과연 어디까지 미치는 건가! 시를 읽다가 보면 도저히 맞지 않은 내용인 것 같아도 시만 생각하면 그런대로 맞아 들어가는 게, 시다.
위 최금진 선생의 시 ‘어린이들’ 감상하면 시인의 소싯적 추억을 되살리며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위 작품은 ‘詩’라는 주제 즉 시제는 ‘어린이들’이라고 했지만, 시를 묘사한 작품이다. ‘마음은 날마다 흰 문종이 펄럭거리는 빈 방이었어’ 라는 시인의 말은 시를 향한 시인의 욕구임을 볼 수 있다.
시는 복잡한 칡뿌리 같기도 하지만, 씹으면 재밌고 맛있다. 더욱 재미난 표현은 시 9행에 ‘내가 키우던 개는 턱뼈가 부서진 채 끙끙 앓았지’라는 대목이다. 시인의 시에 관한 맹렬한 믿음과 공부다. 개는 시를 은유하는 말이며 턱뼈가 부서졌다는 말은 시 해체를 말한다. 그만큼 공부에 몰입했다.
시 후반부에 들어가면 ‘국수’라는 시어가 나온다. 국수의 색감은 하얗고 곧다. 뜨거운 물에 풀어지면 아주 맛깔스러운 요기로 한 끼 식사는 충분하다. 나의 뜨거운 열정에 아주 맛깔스러운 작품이 나왔다면, 국수에 비할 바 있을까! 초라한 저녁에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하루가 따뜻하지 않을까 말이다.
물론 나의 시 ‘날아가는 돌도끼’는 위 최금진 선생의 시를 읽고 번득이는 마음에 한 줄 읊은 거다. 예전, 대학 1학년 때였지 싶다. 소설가 이문열 선생의 작품 ‘필론의 돼지’를 읽었던 적 있었다. 이 속에는 ‘들소’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어찌나 이미지가 강한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들소를 그렸다. 우리의 인간은 옛 추억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 잠재되어 있음이다. 시가 더 재미나게 그리려면 시인의 풍부한 상상력도 한 몫 있어야 한다. 금방 지은 거로 보면 시라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창작의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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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최금진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1997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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