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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누Nu 7 / 함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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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5회 작성일 17-01-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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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 누Nu 7 / 함기석




    항아리에서 귀가 수련처럼 자란다 실뿌리가 희다 나비가 다가오면 무서워하는 꽃을 피우다가 누가 다가오면 어린 창녀처럼 뒤돌아 앉아 시든다

    폐를 도려낸 집, 갈라진 벽을 따라 빛이 예각으로 누수되고 있다 모든 소리와 색깔과 피를 흡수하는 삼각형 집, 나무는 없고 나무그림자 혼자 물속을 거니는

    모든 모서리가 직각으로 꺾인 무채색 정원, 나비들은 나풀나풀 피살된 노부부의 주검 곁을 날고 귀 잃은 얼굴로 정오가 정원을 배회하며 망각되고 있다

    넝쿨장미 담을 따라 늘어선 해바라기 전경들, 5월의 정원에서 하늘은 지렁이처럼 몸을 비틀며 마르는데 귀가하지 못한 귀가 하나 항아리에서 수련처럼 떨고

    갈라진 벽 속으로 은폐된 비명이 둔각으로 흡수되고 있다 터질 듯 몽우리를 맺는 귀, 무서운 꽃을 피우다가 누가 다가오면 무서워하며 시든다



鵲巢感想文
    시제가 수학자 누Nu 7이다. 여기서 수학자는 수학자數學者가 아니라 수학자修學者다. 누는 센다는 의미가 있다. 이것도 누수의 새는 것으로 이두식 향찰표기 같은 거로 보인다. 7은 행운의 숫자지만 칠한다는 그 칠이다.

    전에 시인의 시집 ‘오렌지 기하학’을 사다 본 기억이 있다. 이 속에 든 시, ‘ING 살인 사건’은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시집 전체가 수학 도식 같은 것도 많아서 시인은 아마도 수학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 느낌은 대체로 어렵게 닿았다. 이 시 또한 수학의 느낌을 주는 시제부터 범상치 않기는 하나, 이 시 전체는 ‘詩’를 묘사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묘사로 이룬 시다.

    시 1연을 보면 항아리라는 시어가 나오는데 이는 자아의 세계관이자 글의 세계다. 시집에 든 글은 모두 귀가 수련처럼 자라나 보이는 거고 또 귀(自我)는 현 세계를 향해 또 열어놓고 있다. 수련이라는 말도 수련(修鍊), 즉 학문과 기술을 닦으며 단련한다는 뜻도 있으니 의미의 중첩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실뿌리가 희다는 것은 본디 글은 백지 위에 쓰지는 거니까, 귀가 변이한 수련(修鍊)은 하얗기만 하다. 사색의 확장이다. 수련은 여러해살이로 뿌리가 수염처럼 나는 수초다. 수련(修鍊)과 수련(睡蓮)의 이미지 중첩을 노렸다. 여기서 ‘나비’와 ‘누가’는 목적성이 같은 인물들이다. 어린 창녀처럼 뒤돌아 앉아 시든다는 말은 그만큼 미숙한 어떤 글에 대한 화자의 마음이겠다.

    시 2연, ‘폐를 도려낸 집’은 시를 은유한다. 이미 숨소리가 멎어 마치 냉동된 것 같은 글을 은유한다. 갈라진 벽은 화자의 마음이다. 그만큼 공부에 대한 결과로 이 틈으로 빛이 예각(豫覺), 즉 보일 듯 말 듯, 읽을 듯 말 듯 표현의 은유다. 삼각형 집은 화자를 뜻하는 것으로 어떤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의 완전체다. 더 나가 삼이라는 숫자는 북방 유목민족의 뿌리를 두는 우리로서는 문화 곳곳 중요하게 와 닿는 수다. 삼족오라든가 단군신화, 삼재, 저승사자, 금줄, 솟대 등 안 미치는 곳이 없다. 나무는 없고 나무 그림자 혼자 물속을 거닌다는 말은 형체는 없고 형상만 떠오른다는 말이다.

    시 3연, 모든 모서리가 직각으로 꺾인 것은 시집이다. 반듯하다. 무채색 정원은 어떤 빛깔로도 가름할 수 없는 일정한 규정의 수를 말함이며, 피살된 노부부의 주검이란 무서워하는 꽃이 될 수도 있으며 어린 창녀처럼 시들 수도 있는 글을 은유한다. 시인 김언희 시 ‘캐논 인페르노’에서는 노모로 표현한 것도 기억하자. 노모, 노부부,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시어는 詩라는 표현의 그 원뿌리다. 정오가 정원을 배회한다는 말은 정오는 반듯한 나(正吾)로 정원(詩集)을 배회하며 망각되고 있다.

    시 4연, 넝쿨장미 담을 따라 늘어선 해바라기 전경은 시 문장을 은유한다. 넝쿨장미처럼 뻗어 오르는 글은 제 주인을 바라보며 서 있는 전경이다. 하늘은 지렁이처럼 몸을 비틀며 마르는 표현과 귀가하지 못한 귀가 항아리에서 수련처럼 떠는 것은 모두 화자의 공부에 대한 갈등이다. 여기서 귀는 자아의 세계다.

    시 5연, 둔각은 예각의 대치되는 말로 수학적인 뜻의 둔각이 아니라 둔하고 무딘 어떤 표현으로 시의 완성을 본다. 그러므로 시는 무서운 꽃이며 누가 다가오면 무서워하며 시드는 그런 꽃이다. 마음이기 때문이다.


  동공이 굳은 눈 / 鵲巢

    김이 난다 손목 없는 기계가 김을 내 뿜는다 손잡이 없는 잔이 바닥 위에 떠 있고 천정의 불빛이 깜빡거린다 음악처럼 무심코 집어 든 모서리는 둥근 잔 안에 담는다
    볶고, 갈고, 뽑고, 내리고, 나가는 모든 커피에 모서리가 있다 진열장처럼 놓인 둥근 잔들 자주 감기는 눈꺼풀을 걷어낸다
    밤새 자고 일어나면 제빙기 안은 얼음이 가득하고 마른 헝겊에 담은 얼음, 부은 눈을 닦는다 물방울 한 방울 한 방울…….
    퉁퉁 부은 눈, 창밖에 벚나무 본다 시력은 먼 거리를 자주 보는 것, 안구 통증은 모서리로 파는 것, 구름 하나 없는 창공에 붉은 태양이 떠 있는 오후, 바람은 불고 동공이 굳은 눈, 눈 하나가 커피잔 안에 하얗게 식어간다


    이제 모서리도 식상한 시어가 됐다. 모서리라는 말에 우리는 둥글지 못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하고 그 마음의 결정체를 담은 시집으로 제유하기도 했다. 어떤 시인은 식탁에서 모서리로 모서리에서 자아의 세계관으로 확장해석하며 시를 쓰기도 했다. 어떤 시인은 모서리가 하나의 벽에 갇힌 자아를 둥근 세계로 탈피하고픈 마음을 그리기도 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서리다. 이 모서리를 어떻게 깎느냐에 따라 나의 완전한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겠다. 삶도 글의 세계도 모두 모서리다. 오로지 둥근 세계로 옮기는 것이야 말로 자아를 위하는 것이며 나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부단한 노력, 노력만이 모서리를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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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함기석 1966년 충북 충주 출생 1992년 <작가세계>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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