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밥 / 한혜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01회 작성일 17-01-16 00:09본문
거대한 밥 / 한혜영
밥이라고 생각하면 / 아무리 긴 대사도 외워진다는 / 늙은 여배우의 고백을 들으며 / 산다는 것은 전쟁이지, / 웅얼거리다 / 적과 싸우기 위해 / 불쌍한 백성의 밥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었던 / 이순신의 밥을 떠올린다 / 세상엔 너무 작아서 / 안 보이는 것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 너무 커서 안 보이는 것도 있다는 것 / 거대한 밥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 가스배관을 타고 오르는 / 도둑의 머리 위에서, 홀로 / 빛나는 스텐 밥그릇을 올려다본다 / 그리고 먼 바다로 나가 밥알 / 건져 올리는 어부들의 그물을 생각하다가, / 영어 단어 하나하나가 밥알인 / 이민자들의 밥공기를 어루만지다가 / 지구라는 거대한 밥그릇을 깨닫는다 / 다닥다닥 / 붙은 밥알이 우리라는 거 / 서로가 서로에게 / 밥이 되기도 한다는 거
鵲巢感想文
밥, 쌀을 씻고 안치며 밥을 한다. 물이 너무 많으면 찰진 밥이 되고 물이 너무 적으면 고된 밥이 된다. 밥, 아주 맛깔스럽게 잘 버무린 밥이다.
늙은 여배우도 전쟁 통에 적과 싸우기 위해 장군 이순신도 밥을 먹어야 했다. 우리는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밥은 우리에게 생명을 유지하게끔 에너지를 준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밥도 있다는 사실을 시인은 일깨운다. 너무 작아서 안 보이는 것도 있을 것이지만 너무 커서 안 보이는 것도 있다. 미생물에서 산소에 이르기까지 그 하나라도 없다면 우리의 존재는 어렵겠다.
우리는 사회에 밥처럼 누구에게 따뜻한 밥으로 있었던가!
설 대목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제삿밥도 밥이고 조상님께 올리는 전도 밥이다. 요즘 달걀값이 천정부지다. 달걀 한 판이 만 원 가까이 한다. 미국 산 달걀을 수입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우리 달걀은 노란 빛을 가졌다면 미국 산 달걀은 하얗다. 달걀 한 판 9,000원 정도 측정될 거라는 정부의 의견도 있었다. 모 기자는 1597년 정유재란(丁酉再亂)을 빗대어 2017년은 정유계란(丁酉鷄亂)이라며 한 소리 했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정부의 재정은 사상 초유의 흑자라고 한다. 세수가 다른 어떤 해보다 많았다. 소득세, 재산세, 각종 부가세에 이르기까지 세수확대는 명확했다. 세금을 내는 것만큼 서민은 없는 살림 쪼개며 살았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의 오리파동(레임덕 lame duck)은 끊이지 않는 국가의 밥 짓는 소리다.
우리의 대통령은 많은 국민의 아쉬움 속에 정권 말기를 보낸 미국의 대통령과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내가 맡은 일에 소임을 다하지 못한 즉 국조 운영에 제대로 밥 짓지 못한 최고 책임자는 어떤 마음일까! 밥이 아니라 죽도 아닌 현 시국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말이다.
===============================
각주]
한혜영 1954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 1989년 <아동문학연구> 동시조 당선 1996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17년 1월 13일 자 신문의 내용이다.
'바리스타가 읽은 말-꽃'
카페 확성기
후기
시를 안 본 지 한 2년은 더 됐지 싶다. 그간 고전과 역사에 미쳐 살다가 작년 연말이었다. 비선 실세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문이 나오고 실망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이 손에 안 잡혔고 일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도 살아야지 하며 이 악물고 다시 걷겠다고 집은 것이 얇은 시집 한 권이었다. 그러나 시를 읽으니 마음은 더 복잡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도 가지 않아 나름으로 뜯어보고 읽자는 마음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연말연시 어수선한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내 삶의 한 방편인지도 모르겠다. 시는 다의적이라 시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문장에 담는다. 그러므로 시는 각자가 다르게 읽는 것도 맞다. 이런 와중에 시를 혼자서 읽고 가끔 ‘피식’ 웃고 말아야 할 것을 나는 괜한 짓,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거저 재미로 볼만한 책이라도 되었으면 더 바랄 게 없다.
끝까지 읽어주셔 진심으로 감사하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