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골 / 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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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4회 작성일 17-01-18 00:34본문
유골 / 유홍준
당신의 집은
무덤과 가깝습니까
요즘은 무슨 약을 먹고 계십니까
무덤에서 무덤으로
산책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웅크리면 무덤, 무덤이 됩니까
무덤 위에 올라가 망望을 보았습니까
제상祭床 위에 밥을 차려놓고
먹습니까
저는 글을 쓰면 비문碑文만 씁니다
저는 글을 읽으면 축문祝文만 읽습니다
짐승을 수도 없이 죽인 사람의 눈빛, 그 눈빛으로 읽습니다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수습하는 사람의 손길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잘 꿰맞추는 사람이지요
그는 살 없이,
내장 없이, 눈 없이
사람을 완성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무덤 속 유골을 끄집어내어 맞추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맞추어놓은 유골
유골입니다
鵲巢感想文
정말 우리의 뼈대는 무언가? 삶의 그 뼈대 말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더 나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이 삶을 영위해 나가느냐는 시인의 외침으로 읽었다. 당신의 집은 무덤과 가깝습니까? 하며 의문형으로 물은 것이지만, 이건 반문이다. 당신의 집은 무덤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집이 무덤이 되었어야 되느냐는 말이다. 집은 행복이 넘치며 삶의 원기를 불어넣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장소라야 맞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집은 여관보다 못하고 마치 무덤을 드나드는 것과 같고 무덤에서 무덤으로 산책하듯 그렇게 직장을 다니며 산다. 사회가 온통 무덤 같기에 하는 말이다.
글 한 자 써도 비문을 새기듯 하여야 하고 글 한 자 읽어도 축문을 읽듯 가까이해야 한다. 우리는 글을 함부로 쓰지는 않았는지 뉘우치게 한다. 수많은 짐승을 죽인 사람의 눈빛은 가련하겠지만, 무엇이 요점인지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얼마나 그 요점에 가까이 사는 것인가 말이다. 뼈대 있는 말은 그 살과 내장과 눈이 없어도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부재기위(不在其位)하여는 불모기정(不謀其政)이니라는 말이 있다. 물론 논어에 있는 말이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와 관련된 정사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공연한 말 때문에 불거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뭐 정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서민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직분에 맞는 일에 매진하며 자기 일이 아닌 것은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며 섣불리 논해서도 안 되겠다.
5년 전이었지 싶다. 시인 유홍준 선생의 시집 ‘저녁의 슬하’를 읽은 적 있다. 이 속에 든 시다.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를 읽고 감상한 바 있지만, 시인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분은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와 이미지 중첩한 글이라며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그때 나의 시력은 돈으로 보았다. 지금에 와 다시 보면, 거저 시다. 시에 대한 성찰과 열정이다.
한 대목을 간단히 피력해본다.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 나는야 살짝 흥분, 노란 참외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트럭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야 살짝 멈칫, 노란 참외 향기는 진하고 노란 참외 향기는 달콤해 노란 참외 향기는 지독하고 노란 참외 향기는 매혹적이야 한 덩어리 참외 향기의 마취, 한 덩어리 참외 향기의 황홀,’ *
산 / 鵲巢
바깥은 적적한 겨울 한기만 서려 있습니다 안에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나태함은 눈처럼 내리는데 나는 바깥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꽉 덮은 마음의 산, 열면 보이고 닫으면 적막한 산, 가볍기 그지없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산에 들어갑니다 멧돼지 있고 산토끼 있고 노루와 꿩도 있어 프스석 거리며 산을 꾸밉니다 ‘너희는 무얼 먹고 사니?’ 걸어도 숲이고 우거진 나무만 빽빽합니다 눈은 나무마다 내려서 눈 산으로 보이고 나는 또 안에 들어갑니다
경모는 커피 한 잔 내려서 가져다줍니다 커피도 신맛, 쓴맛, 떫은 맛, 단맛이 있듯 카페는 장장한 사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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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 신인상 등단
유홍준 詩集[저녁의 슬하 35p]
당신의 집은
무덤과 가깝습니까
요즘은 무슨 약을 먹고 계십니까
무덤에서 무덤으로
산책을 하고 있습니까
저도 웅크리면 무덤, 무덤이 됩니까
무덤 위에 올라가 망望을 보았습니까
제상祭床 위에 밥을 차려놓고
먹습니까
저는 글을 쓰면 비문碑文만 씁니다
저는 글을 읽으면 축문祝文만 읽습니다
짐승을 수도 없이 죽인 사람의 눈빛, 그 눈빛으로 읽습니다
무덤을 파헤치고 유골을 수습하는 사람의 손길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는 잘 꿰맞추는 사람이지요
그는 살 없이,
내장 없이, 눈 없이
사람을 완성하는 사람이지요
그는 무덤 속 유골을 끄집어내어 맞추는 사람입니다
저는 그 사람이 맞추어놓은 유골
유골입니다
鵲巢感想文
정말 우리의 뼈대는 무언가? 삶의 그 뼈대 말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 더 나가 어떤 목적을 위하여 이 삶을 영위해 나가느냐는 시인의 외침으로 읽었다. 당신의 집은 무덤과 가깝습니까? 하며 의문형으로 물은 것이지만, 이건 반문이다. 당신의 집은 무덤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니까 집이 무덤이 되었어야 되느냐는 말이다. 집은 행복이 넘치며 삶의 원기를 불어넣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의 장소라야 맞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집은 여관보다 못하고 마치 무덤을 드나드는 것과 같고 무덤에서 무덤으로 산책하듯 그렇게 직장을 다니며 산다. 사회가 온통 무덤 같기에 하는 말이다.
글 한 자 써도 비문을 새기듯 하여야 하고 글 한 자 읽어도 축문을 읽듯 가까이해야 한다. 우리는 글을 함부로 쓰지는 않았는지 뉘우치게 한다. 수많은 짐승을 죽인 사람의 눈빛은 가련하겠지만, 무엇이 요점인지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얼마나 그 요점에 가까이 사는 것인가 말이다. 뼈대 있는 말은 그 살과 내장과 눈이 없어도 우리의 가슴을 적신다.
부재기위(不在其位)하여는 불모기정(不謀其政)이니라는 말이 있다. 물론 논어에 있는 말이다.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그와 관련된 정사를 논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공공연한 말 때문에 불거지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뭐 정치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서민의 삶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직분에 맞는 일에 매진하며 자기 일이 아닌 것은 함부로 말해서도 안 되며 섣불리 논해서도 안 되겠다.
5년 전이었지 싶다. 시인 유홍준 선생의 시집 ‘저녁의 슬하’를 읽은 적 있다. 이 속에 든 시다.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를 읽고 감상한 바 있지만, 시인마다 보는 눈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어떤 분은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와 이미지 중첩한 글이라며 이야기하는 분도 있었다. 그때 나의 시력은 돈으로 보았다. 지금에 와 다시 보면, 거저 시다. 시에 대한 성찰과 열정이다.
한 대목을 간단히 피력해본다. ‘노란 참외를 볼 때마다 나는야 살짝 흥분, 노란 참외를 잔뜩 쌓아놓고 파는 트럭을 지나갈 때마다 나는야 살짝 멈칫, 노란 참외 향기는 진하고 노란 참외 향기는 달콤해 노란 참외 향기는 지독하고 노란 참외 향기는 매혹적이야 한 덩어리 참외 향기의 마취, 한 덩어리 참외 향기의 황홀,’ *
산 / 鵲巢
바깥은 적적한 겨울 한기만 서려 있습니다 안에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으면 나태함은 눈처럼 내리는데 나는 바깥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꽉 덮은 마음의 산, 열면 보이고 닫으면 적막한 산, 가볍기 그지없으나 결코 가볍지 않은 산에 들어갑니다 멧돼지 있고 산토끼 있고 노루와 꿩도 있어 프스석 거리며 산을 꾸밉니다 ‘너희는 무얼 먹고 사니?’ 걸어도 숲이고 우거진 나무만 빽빽합니다 눈은 나무마다 내려서 눈 산으로 보이고 나는 또 안에 들어갑니다
경모는 커피 한 잔 내려서 가져다줍니다 커피도 신맛, 쓴맛, 떫은 맛, 단맛이 있듯 카페는 장장한 사람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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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유홍준 1962년 경남 산청 출생 1998년 <시와 반시> 신인상 등단
유홍준 詩集[저녁의 슬하 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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