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의 습격 /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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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6회 작성일 17-01-19 00:07본문
파랑의 습격 / 안희연
그날 밤 나는 식물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화분을 뚫고 두 다리가 자라났어요. 마치 구름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잠시 이쪽을 골똘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극심한 피로 속에서 “누군가 말하고 있기 때문에 빛이 생긴다”*는 문장을 막 읽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식물에 관해서라면 더 이상 축적해야 할 지식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기이한 빛과 마주쳤습니다. 거듭 눈을 비비며 뒤쫓았지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요.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처음 보는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서…….
조소의 탁자에 불려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껏 나는 무수한 꽃을 보아왔으나 꽃이 어떻게 피어나는지는 단 한 번도 질문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방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외출 중인 모든 정물들,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소리만이 천둥처럼 내리꽂히는 이곳에서…….
한 소년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묻습니다. “아침이 왜 아침인 줄 아세요? 보고 싶은 할머니, 꽃으로 돌아오라고요.”
저 소년은 어떻게 식물학자가 됩니까. 책 속에 갇힌 삶은 어떻게 흉기가 됩니까. 나는 하루빨리 활자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프로이트
鵲巢感想文
나는 시 ‘파랑의 습격’을 읽고 갑자기 두부가 생각이 났다. 두부는 한글로 표기하면 두 가지 뜻을 지니게 된다. 첫째 콩으로 만든 식품의 하나, 둘째 동물의 머리 부분을 두부라 한다. 두부는 우리의 식품 중 가장 영양가 높고 오랜 전통을 지녔다. 이 두부는 네 모 반듯하여 벽돌과 비슷하다. 벽돌은 성을 이루는 소재다. 시는 하나의 건축이다. 벽돌로 건축하듯 시를 두부로 치환하여 어떤 글을 써도 괜찮겠다. 그러니까 시와 두부와 벽돌과 건축 그리고 다시 시로 들어오는 어떤 이미지 중첩을 노려볼 만하다.
여기서 식물이란 굳이 사전적 의미를 적지 않아도 아는 단어다. 동물에 대체되는 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뜻은 먹을거리를 식물(食物)이라 표기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이래나 저래나 식물이다.
시 첫 행을 보면 식물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시인은 목격했다. 화분을 뚫고 두 다리가 자랐다. 식물은 글을 제유하며 화분은 책을 뜻하는 은유다. 마치 구름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라는 말은 시인의 심리적 묘사다.
시 2행과 3행은 식물에 관한 시인의 시 전개다. 시 공부에 관한 묘사다.
시 4행은 식물에서 더 사실적인 ‘꽃’으로 전개되었다. 꽃은 문학의 꽃이다. 문학의 꽃은 시를 뜻한다. 시인은 여태껏 수많은 꽃을 보았지만, 그 꽃이 어떻게 피는지 단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다. 글도 그렇고 삶도 마찬가지다. 질문하지 않으면 길은 묘연하다. 질문 속에 해답을 구한다. 질문은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이며 좋은 질문은 좋은 해답을 구한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은 없다. 중국 속담에 나오는 말이다. ‘물어보는 사람은 5분은 멍청한 바보일지 모르나 묻지 않으면 영원한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질문하라!
시 5행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시의 역지사지다.
시 6행에 한 소년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묻는 것은 책 속의 인물이다. 물론 책 속의 인물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책의 내용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아침이 왜 아침인 줄 아세요? 보고 싶은 할머니, 꽃으로 돌아오라고요.”라는 말은 화자에게 던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화자 시인이다.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하루빨리 활자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 표현을 한다.
이 시에서 ‘식물’과 ‘빛’, ‘꽃’, ‘소년’은 모두 활자의 또 다른 표현이며 할머니와도 대치되는 시어다.
시 ‘파랑의 습격’은 독서를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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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1986년 경기도 성남 출생 2012 <창작과 비평>등단
그날 밤 나는 식물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화분을 뚫고 두 다리가 자라났어요. 마치 구름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주위를 두리번거렸습니다. 잠시 이쪽을 골똘히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극심한 피로 속에서 “누군가 말하고 있기 때문에 빛이 생긴다”*는 문장을 막 읽었을 무렵이었습니다.
식물에 관해서라면 더 이상 축적해야 할 지식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나는 기이한 빛과 마주쳤습니다. 거듭 눈을 비비며 뒤쫓았지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어요.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 처음 보는 꽃이 피어 있는 것을 보면서…….
조소의 탁자에 불려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껏 나는 무수한 꽃을 보아왔으나 꽃이 어떻게 피어나는지는 단 한 번도 질문해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방안을 둘러보았습니다. 외출 중인 모든 정물들, 째깍째깍 돌아가는 시계 소리만이 천둥처럼 내리꽂히는 이곳에서…….
한 소년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묻습니다. “아침이 왜 아침인 줄 아세요? 보고 싶은 할머니, 꽃으로 돌아오라고요.”
저 소년은 어떻게 식물학자가 됩니까. 책 속에 갇힌 삶은 어떻게 흉기가 됩니까. 나는 하루빨리 활자 밖으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프로이트
鵲巢感想文
나는 시 ‘파랑의 습격’을 읽고 갑자기 두부가 생각이 났다. 두부는 한글로 표기하면 두 가지 뜻을 지니게 된다. 첫째 콩으로 만든 식품의 하나, 둘째 동물의 머리 부분을 두부라 한다. 두부는 우리의 식품 중 가장 영양가 높고 오랜 전통을 지녔다. 이 두부는 네 모 반듯하여 벽돌과 비슷하다. 벽돌은 성을 이루는 소재다. 시는 하나의 건축이다. 벽돌로 건축하듯 시를 두부로 치환하여 어떤 글을 써도 괜찮겠다. 그러니까 시와 두부와 벽돌과 건축 그리고 다시 시로 들어오는 어떤 이미지 중첩을 노려볼 만하다.
여기서 식물이란 굳이 사전적 의미를 적지 않아도 아는 단어다. 동물에 대체되는 말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 또 다른 뜻은 먹을거리를 식물(食物)이라 표기하기도 하나, 여기서는 이래나 저래나 식물이다.
시 첫 행을 보면 식물에 영혼이 있다는 것을 시인은 목격했다. 화분을 뚫고 두 다리가 자랐다. 식물은 글을 제유하며 화분은 책을 뜻하는 은유다. 마치 구름이 움직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동작이라는 말은 시인의 심리적 묘사다.
시 2행과 3행은 식물에 관한 시인의 시 전개다. 시 공부에 관한 묘사다.
시 4행은 식물에서 더 사실적인 ‘꽃’으로 전개되었다. 꽃은 문학의 꽃이다. 문학의 꽃은 시를 뜻한다. 시인은 여태껏 수많은 꽃을 보았지만, 그 꽃이 어떻게 피는지 단 한 번도 질문한 적이 없다. 글도 그렇고 삶도 마찬가지다. 질문하지 않으면 길은 묘연하다. 질문 속에 해답을 구한다. 질문은 가장 효과적인 학습방법이며 좋은 질문은 좋은 해답을 구한다. 이 세상에 멍청한 질문은 없다. 중국 속담에 나오는 말이다. ‘물어보는 사람은 5분은 멍청한 바보일지 모르나 묻지 않으면 영원한 바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멍청하게 가만히 있지 말고 질문하라!
시 5행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와 같은 표현으로 어떤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시의 역지사지다.
시 6행에 한 소년이 방문을 열어젖히고 묻는 것은 책 속의 인물이다. 물론 책 속의 인물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책의 내용으로 보아도 무관하다. “아침이 왜 아침인 줄 아세요? 보고 싶은 할머니, 꽃으로 돌아오라고요.”라는 말은 화자에게 던지는 말이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화자 시인이다.
마지막 행에서 시인은 하루빨리 활자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 표현을 한다.
이 시에서 ‘식물’과 ‘빛’, ‘꽃’, ‘소년’은 모두 활자의 또 다른 표현이며 할머니와도 대치되는 시어다.
시 ‘파랑의 습격’은 독서를 은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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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1986년 경기도 성남 출생 2012 <창작과 비평>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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