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속도 / 김지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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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70회 작성일 17-01-22 00:11본문
지구의 속도 / 김지녀
천공天空이 열린 아치처럼 휘어지고 있다
빽빽한 어둠 속에서
땅과 바람과 물과 불의 별자리가 조금씩 움직이면
새들의 기낭氣囊은 깊어진다
거대한 중력을 끌며 날아가 시간의 날카로운 부리를 땅에 박고
영원한 날개를 접는 저 새들처럼,
우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
교신이 끊긴 위성처럼 궤도를 이탈할 때
우리는 지구의 밤을 횡단해
잠시 머물게 된 이불 속에서 기침을 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지만, 묵음의 이야기만이 눈동자를 맴돌다 흘러나와
문득 창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근육과 뼈가 쇠약해진 우주인과 같이
둥둥 떠다니며 우리는 두통을 앓고
밥을 먹고 함께 보았던 노을과 희미하게 사라지는 두 손을 가방에
구겨 넣고는 곧 이 밤의 터널을 지날 것이다
어딘가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새들의 영혼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의 속도처럼
조용히 멀미를 앓으며
저마다의 속도로 식어 가는 별빛이 될 것이다
鵲巢感想文
이 시는 웹진 시인광장 선정의 책에서는 연 가름이 되어 있지 않으나 시인의 시집 “시소의 감정”에는 총 5연으로 나뉘어 있다.
시 1연과 2연은 우리와 지구의 시적 형태 묘사다. 주체와 객체가 나뉜다. 생물과 무생물로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지구는 우리가 아는 생물도 많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구의 속도는 지구를 의식하며 바라보는 생물이다.
시 3연은 우리는 잠시 이불 속에서 지구를 들고 횡단하듯 보는 것이다. 지구의 무생물과 그러니까 고체화된 어떤 형질과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눈동자를 돌려가며 몰입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시 4연은 지구 내에 있는 형질은 이미 근육과 뼈가 녹은 경전 같은 말씀이다. 지구를 횡단하다 보면 노을도 그려지며 두통을 앓는 것은 당연하다. 길고 긴 터널 같은 밤을 보내는 것은 지구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시 5연은 시적 교감이다. 지구와 오랫동안 함께 걸으면 어딘가로 날아간 새의 영혼처럼 언젠가는 지구와 같은 별이 될 거라는 희망을 표현한다.
위 시도 좋지만, 김지녀 시인을 더 유명하게 한 시가 있다. ‘지퍼의 구조’다. 이 시 전문을 행 가름 없이 필사하며 감상해보자.
지퍼의 구조 / 김지녀
뜨거운 계단이 열리고 있다 / 나의 목까지 밀고 들어오는 진흙처럼 / 계단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잡아당겨 놓았다 / 나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 생각하는 자세로 오해받기 적당하다 / 그러나 지금 나에겐 어떠한 생각도 자세도 없다 /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 / 이것은 극단에 가깝지만 / 위에서 아래로 / 나를 힘껏 잡아당긴 것은 Y의 말대로, 나이다 / 그러고 보니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 또한 나이다 / 이쪽과 저쪽이 잘 맞물려 서 있는 자세에 대하여 / 틀어진 이를 가지런히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 나는 알지 못한다 / 아무리 힘껏 당겨도 닫히지 않는 계단 앞에서 / 나는 기울어져 조용히 멈춰 있다
-민음사 76p, 지퍼의 구조-
지퍼의 구조 시 전문이다. 여기서 지퍼는 시를 제유한다. 그러니까 시의 구조다. 계단은 지퍼 구조의 그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글을 파악하는 내공을 의미한다.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시의 구조는 어렵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묘사한다. 위에서 아래로 시를 보는 것이며 Y의 말이란 지퍼 즉, 시의 말이다. Y가 마치 지퍼의 형태미를 갖춘 것에 착안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은 나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고정관념의 깊이를 말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어떤 틀을 깨부수는 것은 실로 어렵다. 그러므로 시는 어려운 것이므로 나는 의자를 반쯤 젖혀두고 기울어져 있다. 조용히 멈춰 생각해 보는 것이 된다.
지퍼의 구조 / 김지녀
깍지 낀 손을 풀어 놓는다
두 개의 구멍이 된다
-민음사 77p, 지퍼의 구조-
시인의 또 다른 시, 지퍼의 구조다. 시는 마치 깎지 낀 손을 풀어 놓는 것과 다름없다. 원관념이 있고 보조관념이 있듯 시는 두 개의 구멍이 된다. 실은 세 개의 구멍일 수 있으며 천 개의 구멍일 수도 있다. 시는 다의적이며 다족류고 파충류와 다름없는 냉혈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외계인으로 분류해도 크게 손상 가는 일은 아니겠다. 여기서는 지퍼의 구조라 두 개의 구멍으로 얘기했다. 너와 나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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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지녀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세계의 문학> 등단
천공天空이 열린 아치처럼 휘어지고 있다
빽빽한 어둠 속에서
땅과 바람과 물과 불의 별자리가 조금씩 움직이면
새들의 기낭氣囊은 깊어진다
거대한 중력을 끌며 날아가 시간의 날카로운 부리를 땅에 박고
영원한 날개를 접는 저 새들처럼,
우리가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생각할 때
교신이 끊긴 위성처럼 궤도를 이탈할 때
우리는 지구의 밤을 횡단해
잠시 머물게 된 이불 속에서 기침을 하고
다정한 눈빛을 보내지만, 묵음의 이야기만이 눈동자를 맴돌다 흘러나와
문득 창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며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근육과 뼈가 쇠약해진 우주인과 같이
둥둥 떠다니며 우리는 두통을 앓고
밥을 먹고 함께 보았던 노을과 희미하게 사라지는 두 손을 가방에
구겨 넣고는 곧 이 밤의 터널을 지날 것이다
어딘가로 날아갈 수밖에 없는 새들의 영혼처럼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는 지구의 속도처럼
조용히 멀미를 앓으며
저마다의 속도로 식어 가는 별빛이 될 것이다
鵲巢感想文
이 시는 웹진 시인광장 선정의 책에서는 연 가름이 되어 있지 않으나 시인의 시집 “시소의 감정”에는 총 5연으로 나뉘어 있다.
시 1연과 2연은 우리와 지구의 시적 형태 묘사다. 주체와 객체가 나뉜다. 생물과 무생물로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지구는 우리가 아는 생물도 많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지구의 속도는 지구를 의식하며 바라보는 생물이다.
시 3연은 우리는 잠시 이불 속에서 지구를 들고 횡단하듯 보는 것이다. 지구의 무생물과 그러니까 고체화된 어떤 형질과 서로의 어깻죽지에 머리를 묻고 잠들고 싶어도 눈동자를 돌려가며 몰입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시 4연은 지구 내에 있는 형질은 이미 근육과 뼈가 녹은 경전 같은 말씀이다. 지구를 횡단하다 보면 노을도 그려지며 두통을 앓는 것은 당연하다. 길고 긴 터널 같은 밤을 보내는 것은 지구보다 나은 것은 없을 것이다.
시 5연은 시적 교감이다. 지구와 오랫동안 함께 걸으면 어딘가로 날아간 새의 영혼처럼 언젠가는 지구와 같은 별이 될 거라는 희망을 표현한다.
위 시도 좋지만, 김지녀 시인을 더 유명하게 한 시가 있다. ‘지퍼의 구조’다. 이 시 전문을 행 가름 없이 필사하며 감상해보자.
지퍼의 구조 / 김지녀
뜨거운 계단이 열리고 있다 / 나의 목까지 밀고 들어오는 진흙처럼 / 계단은 가장 깊은 곳까지 나를 잡아당겨 놓았다 / 나는 한쪽으로 크게 치우쳐 있다 / 생각하는 자세로 오해받기 적당하다 / 그러나 지금 나에겐 어떠한 생각도 자세도 없다 /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 / 이것은 극단에 가깝지만 / 위에서 아래로 / 나를 힘껏 잡아당긴 것은 Y의 말대로, 나이다 / 그러고 보니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 또한 나이다 / 이쪽과 저쪽이 잘 맞물려 서 있는 자세에 대하여 / 틀어진 이를 가지런히 만드는 방법에 대하여 / 나는 알지 못한다 / 아무리 힘껏 당겨도 닫히지 않는 계단 앞에서 / 나는 기울어져 조용히 멈춰 있다
-민음사 76p, 지퍼의 구조-
지퍼의 구조 시 전문이다. 여기서 지퍼는 시를 제유한다. 그러니까 시의 구조다. 계단은 지퍼 구조의 그 단계를 말하는 것이며 글을 파악하는 내공을 의미한다. 움직일수록 계단들은 더 깊게 열린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시의 구조는 어렵고 생각에 잠기는 것을 묘사한다. 위에서 아래로 시를 보는 것이며 Y의 말이란 지퍼 즉, 시의 말이다. Y가 마치 지퍼의 형태미를 갖춘 것에 착안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이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은 나이라고 했다. 무슨 말인고 하면 고정관념의 깊이를 말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어떤 틀을 깨부수는 것은 실로 어렵다. 그러므로 시는 어려운 것이므로 나는 의자를 반쯤 젖혀두고 기울어져 있다. 조용히 멈춰 생각해 보는 것이 된다.
지퍼의 구조 / 김지녀
깍지 낀 손을 풀어 놓는다
두 개의 구멍이 된다
-민음사 77p, 지퍼의 구조-
시인의 또 다른 시, 지퍼의 구조다. 시는 마치 깎지 낀 손을 풀어 놓는 것과 다름없다. 원관념이 있고 보조관념이 있듯 시는 두 개의 구멍이 된다. 실은 세 개의 구멍일 수 있으며 천 개의 구멍일 수도 있다. 시는 다의적이며 다족류고 파충류와 다름없는 냉혈한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외계인으로 분류해도 크게 손상 가는 일은 아니겠다. 여기서는 지퍼의 구조라 두 개의 구멍으로 얘기했다. 너와 나의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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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지녀 1978년 경기도 양평 출생 <세계의 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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