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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커피 /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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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04회 작성일 17-01-23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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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커피 / 손현숙




    올해도 과꽃은 그냥, 피었어요 나는 배고프면 먹고 아프면 아이처럼 울어요 말할 때 한 자락씩 깔지 마세요 글쎄, 혹은 봐서, 라는 말 지겨워요 당신은 몸에 걸치는 슬립처럼 가벼워야 해요

    천둥과 번개의 길이 다르듯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갈등하는 거 흙산에 들면 돌산이 그립고, 가슴의 A컵과 B컵은 천지차이죠 한 생에 딱 한 목숨 몸뚱이 하나에 달랑 얼굴 하나, 해바라기는 장엄하기도 하죠

    비개인 뒤 하늘은 말짱해요 당신이 나를 빙빙 돌 듯 지구 옆에는 화성, 그 옆에는 목성, 또 그 옆에는 토성 톱니바퀴처럼 서로 물고 물리면서 우리는 태양의 주위를 단순하게 돌아요

    당신, 돌겠어요?

    시간을 내 앞으로 쭉쭉 잡아당기다보면 올해도 과꽃은 담담하게 질 것이고, 때로는 햇빛도 뒤집히면서 깨지기도 하지요



鵲巢感想文
    시제 블랙커피는 시를 제유한 시 제목이다. 말 그대로 까만 글, 하지만, 애인과 커피 한 잔 마시듯 시는 부드러워요. 시는 오로지 애인을 다루듯 해야 해요. 거칠 거나 모질게 굴다가는 여차 없이 이해하기 어려워요. 그러니까 ‘글쎄’라든가, 혹은 봐서, 라는 말은 통하지가 않죠. 나를 읽으려면 당신의 몸은 어떤 잡생각도 없이 슬립처럼 가벼워야 해요. 시 1행은 시 접근에 관한 묘사다.

    시 1행에서 나는 배고프면 먹고 아프면 아이처럼 울어요. 주체와 객체의 도치다. 내가 배고프면 먹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시는 하나의 생물처럼 다룬 것에 기가 막힐 일이다. 우리가 시를 들여다볼 때 이해 못하면 시에 먹히는 것이 된다. 도로 우리가 시를 이해했다면, 시의 아픔이겠지! 아니면 그 반대든가.

    시 2행을 보면, 시의 모양과 성질이다. 제목 하나에 늘어놓는 문장들이니, 몸뚱이 하나에 달랑 얼굴 하나를 묘사한다. 시는 천둥과 번개의 길이 다르듯, 짜장면과 짬뽕 사이의 갈등과도 같으며 흙산 같다가도 돌산도 무관하며 A컵이든 B컵이든 어려운 건 마찬가지, 해바라기처럼 제 주인 얼굴만 바라보는 것도 시가 된다.

    시 3행은 시의 습성과 형태미다. 습관이 된 성질이다. 시를 읽고 이해하면 비개인 뒤 하늘처럼 말짱하지요. 천체 우주, 즉 태양계를 마치 구슬처럼 어찌 뒤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말이다. 그 순서가 있듯, 시의 구조 또한 뒤바꿀 수는 없는 것이다.

    시 4행은 시인의 능청이다. 당신, 돌겠어요? 그래 돌겠다.

    시 5행은 시 해체는 과꽃이 핀 것이고 때로는 햇빛도 뒤집히면서 깨지는 것처럼 다시는 이 글을 보지 않을 수도 있겠지. 뭐!

    이 시를 읽다가 사족으로 덧붙인다.
    중국 역사에서 요순 임금은 최고의 성군聖君이고, 걸주는 가장 포악한 군주로 그려졌다. 근데, 걸왕이나 주왕도 백성에게 나쁜 짓을 하라고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왜 걸주의 시대에는 사회가 혼란하고 난폭한 백성이 많아졌는가. <대학>은 이렇게 설명한다.

    백성이 자기 왕이 정말 좋아하는 것(소호所好)을 했을 뿐이다. 걸주는 유능한 신하를 탄압하여 스스로 폭력의 모범을 보였다. 백성에게 “착하게 살라”는 걸주의 명령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것과 모순되는 것이었다. 백성은 걸주가 정말 좋아하는 것을 따랐을 뿐이다.


    <후한서>*에 이런 말이 나온다. 오나라 왕이 검객을 좋아하자 백성의 몸에 상처가 많아졌고, 초나라 왕이 가는 허리를 좋아하자 궁중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왕이 허리가 가느다란 미녀를 좋아하자, 궁녀가 너무 심하게 다이어트를 하여 많이 굶어 죽었다고 하니 좀 과장된 표현이긴 하다. 그러나 윗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조직의 구성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나타낸 이야기다.

    주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다. 시를 군림하는 군주 즉, 자아와 시의 객체 즉, 백성과 같은 문장이다. 시를 얼마나 사랑하느냐에 따라 시력詩力을 가질 수 있음이겠다.


=============================
각주]
    손현숙 1959년 서울 출생, 1999년 <현대시학> 등단

    후한서 참조]
    오왕호검객吳王好劍客 백성다창반百姓多瘡瘢
    초왕호세요楚王好細腰 궁중다아사宮中多餓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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