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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 최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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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13회 작성일 17-01-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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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정원 / 최형심




나는 거인에 속해 있었다. 니체가 거인을 죽인 후, 20세기적 고통으로 더는 그를 정의하지 않는다.

칠월이 해바라기 밭을 지날 즈음, 한 줌의 머리를 잘라 거인을 추억한다. 촉촉한 실비가 이른 새벽을 걸어가면 천장이 낮은 집 지붕 밑 그늘까지 하얗던 나날들. 잠자리가 그려 놓은 나른한 하늘 아래 초록 거미의 여름이 엄지발가락에 닿곤 했다. 익명의 이별을 위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간이역이었던 곳, 문득, 푸른 스카프를 두른 여장 사내가 기억을 놓친다.

겨울이 드나들던 자리에서 한여름 한기에 발이 젖는다. 샛노란 레몬 달이 뜨면 신물 나는 세상을 뒤로 걷는 사람들, 온몸을 흔들어 제 안에 쌓인 고요를 휘젓는다. 허기의 무늬가 둥근 파문을 일으키면 지난 밤 만났던 꽃의 이름을 더는 묻지 않는 풀벌레들이 작은 귀를 떼어낸다. 밤이 한 방향으로 몰려오고

나는 내부로 들어가 공명한다. 너무 많은 사랑이 나를 죽였어. 콧등을 덮은 불빛에 얼굴을 잃었다. 살별을 벼리다 위험한 저녁이 내게 이르러서였다. 지금은 뼛속에 묻어둔 그 이름을 꺼내어 닦아야 할 때, 비망록을 꺼내 들며 타는 갈증으로 키 큰 해바라기 목을 친다. 꽃대롱이 떠받치던 하늘이 성큼, 비가 되어 쏟아진다. 어둠이 비에 쓸려 바닥에 고인다. 이제, 그 어둠을 찍어 거인에게 편지를 써야 하리. 나는 오랫동안 절망을 만졌으므로 조금도 절망하지 않겠다.



鵲巢感想文
시를 읽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나는 진보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때는 보수에 위치에 서 있었다. 어렵게 잡은 일이지만, 내가 고용한 사람은 진보였기 때문이다. 대우가 좋지 않았다거나 어떤 불평등을 기했던 것도 없지만, 대표는 밑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치다. 그러니 사람이 있는 곳은 어찌 다 마음을 맞출 수 있을까! 서로 이해하고 노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마음이 아픈 것이다.

정치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매일 신문에 오르는 소식은 대부분 좋지 않은 소식으로 가득하다. 정치인의 도덕성과 그들의 정책도 믿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아닌가! 몇 사람을 이끄는 것도 이리 힘 드는 데 대중을 선동하고 목표로 이끄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생각했다. 사족이 길었다.


시제가 ‘거인의 정원’이다. 첫 문장을 보면 나는 거인에 속해 있었다. 니체가 거인을 죽인 후, 20세기적 고통으로 더는 그를 정의하지 않는다. 화자는 거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과 또 거인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위치에 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화자는 거인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다. 거인은 제유다. 문장이나 시나, 여타 다른 무엇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시가 가장 가깝다. 니체가 거인을 죽였다는 말이 나오는데 니체의 명언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겠다. 가장 유명한 말은 ‘신은 죽었다’, ‘침묵 당하는 모든 진실은 독이 된다.’ 등 여러 가지 말은 있겠지만 여기서는 이를 포함한 니체의 철학이다. 화자는 니체에게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니체의 영향으로 거인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니체의 영향으로 거인과 같은 시를 내 마음에서 없앴다는 어떤 추측을 해 볼 수 있겠다. 없앤다는 말은 거인을 생산하기 위한 어떤 통과의례다. 20세기적 고통으로 더는 그를 정의하지 않는다. 20세기는 과거다. 화자의 과거로 더는 그를 해석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는 거인이며 시다.

칠월이 해바라기밭을 지날 즈음, 한 줌의 머리를 잘라 거인을 추억한다. 시인은 시어의 성격을 잘 알아야 하며 마음을 시어에 이입하는 방법도 도가 튼 사람이어야 한다. 칠월에 화자는 해바라기밭 즉, 시-밭 어쩌면 거인의 정원일 수도 있겠다. 한 줌의 머리를 잘라 거인을 추억하는 행위는 나의 모태인 그 시를 기억하며 거인을 생산하고픈 시인의 욕망 같은 것이 묻어나 있다. 다음 문장은,

촉촉한 실비라든가 천장이 낮은 집 지붕은 시인의 마음을 이입한 시구다. 이는 주어부며 그와 같은 마음으로 다음 시구를 이끈다. 때는 새벽이고 마음은 하얗다. 시에 대한 접근과 사랑이다. 잠자리가 그려놓은 하늘과 그 아래 초록 거미의 여름은 어떤 시의 탄생을 그리는 화자의 심적 묘사다. 잠자리가 그려놓듯 불명확한 사실과 초록 거미의 새파랗게 떠오른 얽히고설킨 진실을 말한다. 그것이 엄지발가락에 닿곤 했으니 시작에 불과하다.

익명의 이별을 위하여 우리가 서로에게 간이역이었던 곳, 문득, 푸른 스카프를 두른 여장 사내가 기억을 놓친다. 시인의 시적 교감이다. 만해의 회자정리가 떠오르는 문장이다. 이별은 곧 만남이다. 시와의 결별은 진실 된 결별이어야 한다. 어영부영 보고 넘기는 것이 아니라 착실한 사랑을 말함이며 이는 너와 나의 간이역 같은 것이다. 너는 나를 도착지로 이끈다. 그것은 완벽한 문장만이 모이는 곳이다. 푸른 스카프는 초록 거미와 맥이 같으나 하나가 작용이면 하나는 반작용이다. 흔히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간이역처럼 끈길 수 있으나 도착지만 분명하면 시는 완성할 수 있겠다.

겨울이 드나들던 자리에서 한여름 한기에 발이 젖는다. 이 문장은 때는 여름이다. 앞에 자리를 수식하는 것이 겨울이다. 그러니까 겨울 같은 문장을 제유한다. 발이 젖었으니 읽었다는 표현이겠다.

샛노란 레몬 달이 뜨면 신물 나는 세상을 뒤로 걷는 사람들, 온몸을 흔들어 제 안에 쌓인 고요를 휘젓는다. 여기서 달은 시인의 이상이다. 샛노란 레몬은 색감 표현으로 하나의 수식어에 불과하다. 뒤로 걷는 사람들로 표현이 참 재밌다. 시는 거꾸로 보는 세계관, 주관적 처지는 배제하며 읽는 눈을 가져야겠다. 시인 박성준 시 ‘내일’에서는 ‘감염된 사람들’로 표현한 것도 주목하자. 온몸을 흔들어 제 안에 쌓인 고요를 휘젓는다는 말은 시 태동의 암시다.

허기의 무늬가 둥근 파문을 일으키면 지난 밤 만났던 꽃의 이름을 더는 묻지 않는 풀벌레들이 작은 귀를 떼어낸다. 문장이 제법 길다. 하지만, 단순하게 여겨야 한다. 주어부와 서술부를 확인하며 말이다. 풀벌레들이 떼어내다가 요지다. 풀벌레가 있기까지 화자의 심적 묘사를 앞의 수식어에서 볼 수 있다. 꽃의 이름을 더는 묻지 않는 풀벌레다. 허기의 무늬가 둥근 파문을 일으켰다는 말도 시 탄생의 조짐을 뜻하는 묘사다. 그러니까 시 읽기에 부족한 마음과 이 속에 그려내는 파문 같은 꽃(詩題)을 지난 밤 본 셈이다. 그러면 풀벌레는 시인을 제유한 시어며 작은 귀는 공부의 흔적 같은 것이다. 큰 귀가 아니고 작은 귀에 주목하자. 밤은 한 방향으로 몰려오고, 밤은 깊어 가고 말이다.

나는 내부로 들어가 공명한다. 시인은 시에 들어가 동화가 된다. 시인의 시적 교감이다. 너무 많은 사랑과 콧등을 덮은 불빛은 모두 같은 형질이다. 글과 자아의 동화작용이다. 살별을 벼리다 위험한 저녁이 내게 이르러서였다. 살별은 혜성을 말함이며 벼리는 것은 무딘 연장을 날카롭게 하는 것 즉 무딘 마음을 단련하여 심성을 강하게 하는 시인의 의지다. 때는 저녁에 이르러서였다.

지금은 뼛속에 묻어둔 그 이름을 꺼내어 닦아야 할 때, 비망록을 꺼내 들며 타는 갈증으로 키 큰 해바라기 목을 친다. 드디어 시인은 비장의 무기를 빼 들었다. 나는 시가 거울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한다. 문장을 보고 있으면 마치 미래에 태어날 나의 문장을 보는 격이다. 그것을 그려내느냐가 중요하다. 여기서 시인은 결심한다. 시의 갈증으로 키 큰 해바라기 목을 쳤다. 어쩌면 나의 이 시 감상문은 또 하나의 키 큰 해바라기다. 이 해바라기의 목을 치는 과정이다.

꽃대롱이 떠받치던 하늘이 성큼, 비가 되어 쏟아진다. 시인의 결실과정을 보는 심적 묘사다. 어둠이 비에 쓸려 바닥에 고인다. 이제, 그 어둠을 찍어 거인에게 편지를 써야 하리. 나는 오랫동안 절망을 만졌으므로 조금도 절망하지 않겠다. 시인은 절망 같은 시, 어쩌면 키 큰 해바라기의 목을 칠 수 없었을지도 모르는 그 일련의 과정을 절망이라 했다. 하지만 조금도 절망할 필요가 없다. 키 큰 해바라기의 목을 방금 나는 쳤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금시 거인의 정원에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 내가 쓴 거인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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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최형심 2008년 <현대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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