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목赤木 / 윤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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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98회 작성일 17-01-25 00:02본문
적목赤木 / 윤성택
이별이 목발을 하고 우리를 지난다 을씨년스런 예감이 새벽의 안감에 박혀 스르르 말줄임표가 되어가는 별, 환자복에서는 파란 눈이 송이송이 날리고 소독약 냄새 같은 추억도 자정을 넘긴다 이별부터 시작되는 날이 맨 처음 첫인상에 이르면 운명도 단지 멀미일 뿐, 누구를 만난다는 건 이제 각오하고 우연과 헤어지는 것이다 불면에 구면(舊面)을 겹쳐본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알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비밀이 때로 비밀을 만나 돌아오지 않는 상상, 한쪽 어깨의 당분간 타인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그에게 유배를 가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폐병을 앓다 죽은 날이 그가 나를 순장하듯 깨닫는 순간이다 추억이 한 문장씩 지워지면 검은 페이지의 내일이 바람을 훑으며 넘어온다 현재는 빛으로 꽉찬 문틈 같다 기억이 오래되면 그날 구체적인 상황이 유화처럼 뭉개져 알 수 없는 색으로 굳어간다 그리고 아주 작은 점으로 일생 안에 찍혀 화소가 되어 가겠지 그러니 나는 그림이 되어가는 중이고 결국 하나의 그림이 내 안에 들어와 이젤을 펴는 것이다
鵲巢感想文
시제 ‘적목赤木’을 본다. 적목赤木은 잎갈나무(소나뭇과의 낙엽교목)를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는 이 나무와는 무관하다. 한자를 보면 붉다는 뜻을 지닌 ‘적赤’자가 들어가 있음으로 시인의 마음, 그러니까 시에 관한 붉은 마음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시제가 ‘적목赤木’이 된다.
시 감상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만 붙이겠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마음에 들여놓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하다. 시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과 친숙하며 구면으로 익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그렇게 와 닿을 때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 시는 총 2연으로 나뉘어 있다. 시 1연은 화자의 시 접근, 친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거라면 시 2연은 화자가 또 다른 화자에게 친숙해지고픈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문장이 다른 시인과 분간이 갈 정도로 탁월하다.
시 1연을 잠깐 보면, 이별이 목발을 한다거나 을씨년스런 예감이 새벽의 안감에 박혀 스르르 말줄임표가 되어가는 별과 환자복에서는 파란 눈이 송이송이 날리고 소독약 냄새 같은 추억, 이별부터 시작되는 날이 맨 처음 첫인상 이르는 것, 불면에 구면을 겹쳐보는 것, 비밀이 때로 비밀을 만나 돌아오지 않는 상상은 시인의 시에 대한 불안전한 마음을 묘사한다. 그래서 한쪽 어깨의 당분간 타인이라 적어놓고 시 2연을 시작한다.
시 2연을 보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그에게 유배를 가는 거라 했다. 그러니까 시인의 마음은 독자에게 있으니 나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속에 숨었다. 폐병을 앓다 죽은 날과 추억이 한 문장씩 지워지는 것은 시인의 시를 묘사한다. 그리고 독자와 친숙하고픈 마음을 뒤에 서술하는데 이를 내일이 바람을 훑으며 넘어오거나 유화처럼 뭉개져 알 수 없는 색으로 굳어가는 표현, 더 나가 화소로 결국 그림 한 장이 그려지니 독자의 이젤을 보는 셈이다. 미래의 독자와 만나는 장이 된다.
이 글은 시에 대한 감상문이지만, 시인은 미래의 친구를 하나 얻은 셈이다. 이것을 예견하듯 이 시는 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참 아득하면서도 정감이 나는 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시를 읽는 이에게도 마음이 훈훈하며 어떤 따뜻한 편지 한 장 받은 듯하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그에게 유배를 가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다가 시인 정현종 선생께서 하신 말이 생각나 적는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조직을 맡은 대표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가족을 이끈다는 것은 그 한 사람뿐일까! 딸린 식구는 또 얼마며 그와 관계된 이해관계는 또 얼마인가! 이 나라 정치를 맡은 최고 지도자는 또 어떤 마음일까! 우리의 목숨을 안은 국가는 또 어디로 가는가? 거저 시를 읽다가 잠시 넋두리하였다.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먼저 그림을 그릴 흰 바탕을 마련하고 그다음에 한다는 말이다. 회(繪)는 그림을 뜻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집을 짓는데도 기초를 먼저 다져야 하고 강을 건너려면 다리를 놓아야 건널 수 있다. 모든 예술은 그 순서가 있다. 미술을 하려면 흰 종이를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보를 그리려면 노트가 있어야 한다. 시를 적으려면 먼저 시를 읽어야 한다. 책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어찌 좋은 글을 바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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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윤성택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 “수배전단” 신인상 수상 등단
이별이 목발을 하고 우리를 지난다 을씨년스런 예감이 새벽의 안감에 박혀 스르르 말줄임표가 되어가는 별, 환자복에서는 파란 눈이 송이송이 날리고 소독약 냄새 같은 추억도 자정을 넘긴다 이별부터 시작되는 날이 맨 처음 첫인상에 이르면 운명도 단지 멀미일 뿐, 누구를 만난다는 건 이제 각오하고 우연과 헤어지는 것이다 불면에 구면(舊面)을 겹쳐본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알기 위해 밤기차를 타고, 비밀이 때로 비밀을 만나 돌아오지 않는 상상, 한쪽 어깨의 당분간 타인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그에게 유배를 가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 폐병을 앓다 죽은 날이 그가 나를 순장하듯 깨닫는 순간이다 추억이 한 문장씩 지워지면 검은 페이지의 내일이 바람을 훑으며 넘어온다 현재는 빛으로 꽉찬 문틈 같다 기억이 오래되면 그날 구체적인 상황이 유화처럼 뭉개져 알 수 없는 색으로 굳어간다 그리고 아주 작은 점으로 일생 안에 찍혀 화소가 되어 가겠지 그러니 나는 그림이 되어가는 중이고 결국 하나의 그림이 내 안에 들어와 이젤을 펴는 것이다
鵲巢感想文
시제 ‘적목赤木’을 본다. 적목赤木은 잎갈나무(소나뭇과의 낙엽교목)를 얘기하는 것이지만, 이 시에서는 이 나무와는 무관하다. 한자를 보면 붉다는 뜻을 지닌 ‘적赤’자가 들어가 있음으로 시인의 마음, 그러니까 시에 관한 붉은 마음을 펼친 것이다. 그래서 시제가 ‘적목赤木’이 된다.
시 감상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만 붙이겠다. 시를 사랑하고 시를 마음에 들여놓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린 듯하다. 시와 친구가 되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과 친숙하며 구면으로 익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그렇게 와 닿을 때가 있어서 하는 말이다.
이 시는 총 2연으로 나뉘어 있다. 시 1연은 화자의 시 접근, 친숙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거라면 시 2연은 화자가 또 다른 화자에게 친숙해지고픈 마음을 그리는 것이다. 문장이 다른 시인과 분간이 갈 정도로 탁월하다.
시 1연을 잠깐 보면, 이별이 목발을 한다거나 을씨년스런 예감이 새벽의 안감에 박혀 스르르 말줄임표가 되어가는 별과 환자복에서는 파란 눈이 송이송이 날리고 소독약 냄새 같은 추억, 이별부터 시작되는 날이 맨 처음 첫인상 이르는 것, 불면에 구면을 겹쳐보는 것, 비밀이 때로 비밀을 만나 돌아오지 않는 상상은 시인의 시에 대한 불안전한 마음을 묘사한다. 그래서 한쪽 어깨의 당분간 타인이라 적어놓고 시 2연을 시작한다.
시 2연을 보면,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그에게 유배를 가는 거라 했다. 그러니까 시인의 마음은 독자에게 있으니 나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 속에 숨었다. 폐병을 앓다 죽은 날과 추억이 한 문장씩 지워지는 것은 시인의 시를 묘사한다. 그리고 독자와 친숙하고픈 마음을 뒤에 서술하는데 이를 내일이 바람을 훑으며 넘어오거나 유화처럼 뭉개져 알 수 없는 색으로 굳어가는 표현, 더 나가 화소로 결국 그림 한 장이 그려지니 독자의 이젤을 보는 셈이다. 미래의 독자와 만나는 장이 된다.
이 글은 시에 대한 감상문이지만, 시인은 미래의 친구를 하나 얻은 셈이다. 이것을 예견하듯 이 시는 그 내용을 담은 것이다. 참 아득하면서도 정감이 나는 시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시를 읽는 이에게도 마음이 훈훈하며 어떤 따뜻한 편지 한 장 받은 듯하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나 자신을 데리고 그에게 유배를 가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다가 시인 정현종 선생께서 하신 말이 생각나 적는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조직을 맡은 대표는 얼마나 힘든 일인가! 가족을 이끈다는 것은 그 한 사람뿐일까! 딸린 식구는 또 얼마며 그와 관계된 이해관계는 또 얼마인가! 이 나라 정치를 맡은 최고 지도자는 또 어떤 마음일까! 우리의 목숨을 안은 국가는 또 어디로 가는가? 거저 시를 읽다가 잠시 넋두리하였다.
논어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작업은 먼저 그림을 그릴 흰 바탕을 마련하고 그다음에 한다는 말이다. 회(繪)는 그림을 뜻한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집을 짓는데도 기초를 먼저 다져야 하고 강을 건너려면 다리를 놓아야 건널 수 있다. 모든 예술은 그 순서가 있다. 미술을 하려면 흰 종이를 마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악보를 그리려면 노트가 있어야 한다. 시를 적으려면 먼저 시를 읽어야 한다. 책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어찌 좋은 글을 바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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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윤성택 충남 보령 출생 2001년 <문학사상> “수배전단” 신인상 수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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