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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여자 / 김기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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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22회 작성일 17-01-29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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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여자 / 김기택




    눈을 떠보니 / 어느 작고 어둡고 뚱뚱한 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 / 뒷덜미에서 철커덕, 문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 머리가 너무 크고 무거웠으므로 / 끊임없이 마음을 낮게 구부려야 했다. / 창문을 찾아 기웃거릴 때마다 /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벽도 따라 움직여서 / 어디가 바깥인지 알 수가 없었다. / 우선 눈에 띄는 대로 / 빛이 뚫려 있는 콧구멍에다 얼른 얼굴을 들이밀고 / 급한 대로 차가운 빛줄기 몇 가닥을 들이마셨다. / 숨통을 통해 바깥이 조금 보였다. / 밖으로 나가려고 몇 차례 몸을 뒤틀어보았으나 / 모든 문은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있었고 / 나를 찢거나 부수지 않고는 열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 아홉 개의 좁은 구멍을 찾아 간신이 빠져나간 건 / 거친 숨과 땀방울과 뜨거운 오줌과 입 냄새뿐이었다. / 숨 쉴 때마다 / 나를 가둔 벽은 출렁거리며 뒤룩뒤룩 융기하였으며 / 브래지어는 팽팽하게 부풀었다. / 엉덩이며 젖가슴, 겨드랑이, 사타구니까지 / 막힌 숨이 가득 차 있었고 / 터져나가지 못하도록 / 온갖 시큼하고 구린 비린내로 단단하게 밀봉되어 있었다. / 가까스로 내가 있는 곳을 찾아내어 살펴보니 / 거울 속이었다. / 어항 같은 눈을 뻐끔거리고 있는 얼굴이 / 살 속에 숨은 눈으로 살살 밖을 쳐다보는 얼굴이 / 포르말린 같은 유리 안에 담겨 있었다. / 나자마자 마흔이었고 거울을 보자마자 여자였다. / 그렇게 관리를 하지 않고서야 / 언제 시집이나 한 번 가볼 수 있겠느냐는 소리가 / 방 안을 찌렁찌렁 울리며 들어왔다. / 그게 구르는 거지 걷는 거냐고 / 내 뒤뚱거리는 걸음을 눌려대는 소리가 / 벽을 뚫고 살을 콕콕 찌르며 들어왔다. / 움직일수록 더 세게 막혀오는 숨통을 놓아주기 위해 / 나는 방 하나를 통째로 소파 위에 누이고 / 개처럼 혀를 다해 헉헉거렸다.



鵲巢感想文
    시는 비유다. 얼핏 읽으면 여성 비하한 글 같기도 하지만, 시는 분명히 그 의미를 담았다. 우리는 시를 쓴답시고 충분히 다듬지 않았거나 숙성하지 않은 글은 없는지 반성하게 한다. 나는 시인의 글을 읽고 가슴이 뜨끔했다. 그간 썼던 글이 포르말린 같은 냄새로 풍겨오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글을 무서워하며 쓰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생산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숨통을 틔우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다.
    여기서 여자란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그 비유를 들었지만, 꼭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여자는 여자(余子)로 보아도 괜찮기 때문이다. 시제 뚱뚱한 여자, 거울 같은 내 글, 구린내 폭폭 풍기는 내 삶의 찌든 때, 좀 더 정갈하고 깔끔하게 덜어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시인 김기택 선생께서 시에 충분한 묘사로 얘기하셨기에 덧붙일 이유는 없지만, 시와 어울릴지는 모르겠다만 고전 한 가닥 풀어보자.

    진시황이 중원 천하를 통일한 것은 기원전 221년이다. 그러나 진나라는 춘추시대부터 내려온 오래된 나라였다.
    전국시대에는 중국 대륙에서 7개국이 서로 경쟁한 시기였다고 하지만 서쪽의 진나라와 동쪽의 제나라가 강대국으로서 대결하는 동서 대립 형세를 이루었다. 그중에서도 진나라는 특이하게 다른 나라 출신의 인물들이 진나라로 들어가서 유능한 인재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외국 인재를 잘 활용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진나라가 강대국으로 되는 시기는 춘추시대 목공穆公 때가 기점이 된다. 진 목공은 진시황보다 4백 년 이상 앞서서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왕인데, 그는 남달리 포용력이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 무척 아끼던 그의 말이 왕궁의 마구간에서 달아났다. 마구간 책임자가 수소문하여 찾아보다가 기산岐山 기슭의 마을로 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마을에 가보니 이미 백성들이 왕의 말을 잡아먹은 뒤였다. 왕의 말을 잡아먹은 일은 관리의 처지에서 볼 때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급히 마을 사람 3백 명을 잡아들이고 사건을 목공에게 보고하였다. 그러자 목공은 ‘말은 이미 죽었는데 백성들을 잡아서 무엇을 하겠는가? 말고기를 먹으면 반드시 술을 먹어야 탈이 없다’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술까지 내려주도록 하였다. 그 뒤에 목공이 전쟁터에서 포위되는 사건이 생겼다. 포위망이 좁혀져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인데 돌연히 한 무리의 병사들이 적진 속에 돌입하여 목숨을 걸고 싸워 포위망을 뚫어냈다. 이 병사들은 왕의 말을 잡아먹고 술까지 받아먹었던 기산 마을 사람들이었다.
    진 목공의 포용력에 관한 일화는 많다. 특히 유능한 인재에 대한 신뢰는 본받을만한 점으로 알고 있다. 언젠가 목공은 맹명시孟明視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 전투에서 맹명시는 대패하고 포로가 되었다. 뒤에 그가 돌아올 때 목공은 상복을 입고 성 밖까지 마중 나가 “모든 것이 나의 잘못이요. 그대는 이 수치를 잊지 말고 계속 직무에 힘써 주시오.”하고, 이전보다 더욱 두텁게 신임하였다. 수년 뒤 다시 진나라를 칠 때 목공은 또 맹명시를 보냈다. 맹명시는 목숨을 걸고 분전奮戰하여 승리하였다. 이때 목공은 전장에 직접 나와 그곳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엄숙하게 장례 지내고, 전사자들이 생명을 잃게 된 책임은 자기에게 있다고 하고 다시는 이러한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군사들 앞에서 맹세하였다.
    부하의 잘못은 책임 추궁하고 공은 가로채기 쉬운 것이 단순한 인간의 마음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진정한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목공은 아랫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이 책임을 짊어지고 손해를 감당하였다. 이러한 포용력과 덕이 사람들의 진심에서 우러난 충성忠誠을 이끌어냈다.
    <대학>에서는 ‘덕이 있으면 곧 사람이 모인다有德比有人’고 하였다. 덕은 진실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올려, 상대방이 감동하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이른바 덕의 감화력感化力이다. 덕의 포용력을 가진 지도자 주위에는 마음 깊이 복종服從하는 인물들이 많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러한 유대로 조직된 집단은 외부조건이 어려울 때 견디는 힘도 강하고, 조건이 좋을 때 새로운 것을 개척하는 창의력도 뛰어날 것이다.

    시제 ‘뚱뚱한 여자’와 고전의 한 가닥은 뭐 그렇게 어울려 보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영 맞지 않는 것도 없다. 시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누구의 마음이든 그 표현에 있어 대중성을 갖게 되면 시의 역할은 충분하다. 여자, 뚱뚱한 여자는 안 되겠다. 그렇다고 ‘뚱뚱한’이라는 형용사에 꽂힐 필요는 없다. 글을 얼마나 정갈하고 맛깔스럽게 쓸 수 있느냐가 중요하겠다. 진 목공의 예를 들었지만, 여자(余子)에게도 덕을 베풀 수 있는 그런 포용력까지 곁들인 글쟁이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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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기택 경기도 안양 출생 198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등단
    고전의 품격 156p~1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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