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칼 / 이만섭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부드러운 칼 / 이만섭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36회 작성일 17-01-30 00:10

본문

부드러운 칼 / 이만섭




    사과를 깎다 보면
    과도의 예리한 날이 육즙을 즐긴다
 
    칼은 한 마리 활어처럼
    스륵스륵 과육 사이를 헤엄쳐 다니고
    은근히 피워내는 사과 향기
    주변이 오롯하다

    제 몸 베이면서도 어느 한 곳
    상한 데 없는 사과의 짜릿한 비명이
    환하고 둥글게 피어난다
   
    상큼한 맛을 즐길 칼은
    이윽고 사과의 몸을 빠져나와
    포만감에 겨운 듯 소반 위에 드러눕는다

    꽃 핀 자리처럼
    눈부신 사과의 속살 지어놓고
    달콤한 육즙에 젖어
    자르르 윤기 흐르는 과도의 날
    그 견고한 부드러움



鵲巢感想文
    우리말은 어떤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시어가 많다. 시제 ‘부드러운 칼’에서 칼은 날카롭고 잘못 다루기라도 하면 오히려 큰 상처를 입을 수 있는 그런 소재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칼만큼 부드러운 것도 없다 싶을 정도로 시인은 소재를 잘 다루었다. 시제가 부드러운 칼이다. 두 시어詩語에서 ‘부드러운’ 이라는 형용사에 더 관심이 끌린다. 칼의 소재에 그 의미를 전환하는 중요한 시어가 되었다.
    이 시는 함수관계가 그리 복잡하지도 않아, 독자는 읽는 맛이 톡톡 배여 있다.
    이 시에서 극을 보자면, 사과와 칼이다. 시 1연은 시적 계기로 시 발단이다. 사과를 깎다 보면 과도의 예리한 날이 육즙을 즐긴다는 표현은 얼핏 읽으면 사과 깎는 행위지만, 칼이 사과의 그 속을 즐기는 것이다. 칼이 사과의 몸통을 깎음으로써 고통을 호소하거나 사과가 칼이 지나가므로 참지 못한 아픔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육즙을 즐긴다고 시인은 분명히 얘기한다.
    시 2연을 보면 칼은 한 마리 활어처럼, 이라고 했다. 직유다. 활어의 그 탱탱함 졸깃함 뭐라 말할 수 없는 어떤 미묘한 감정 같은 것을 활어에다가 뭉뚱그려 놓았다. 그러니까 읽는 독자는 이거 뭐지 하며 상상을 하게 된다. 정말이지, 머릿속 활어 한 마리 지나는 것처럼 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더욱이 주변이 오롯하기까지 하니 충분히 넘쳐나고도 남은 것이 칼의 행위다. 오롯하다는 말은 형용사로 모자람이 없이 온전함을 뜻한다. 행위자는 칼이다. 칼이 주도적임을 볼 수 있다. 사과 향기가 주변에 오롯함은 결국 칼의 행위에 대한 결과다.
    시 3연은 더욱 압권이다. 제 몸은 성한 데 없이 온통 상처, 아니 아예 표피를 다 벗겨냈으니 홀가분한 어떤 감정을 대신한다. 거기다가 짜릿한 비명까지 내 둘렀으니 세상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환하다.
    시 4연은 칼의 처지다. 상큼한 사과의 맛을 보았다. 사과의 몸을 빠져나와 그 포만감에 소반 위에 드러누웠다. 어찌 소반이 침대 같은 책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시 5연은 시인은 이제 그 홀가분한 마음에 사과의 속살을 짓는다. 달콤한 육즙에 젖어 자르르 흐르는 윤기, 과도의 날을 되새기며 그 견고한 부드러움을 잊지 못한다.
    시는 전반적으로 관능미가 철철 묻어나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함으로 어떤 독자는 칼 같은 고통을 느끼거나 사과 같은 아픔으로 읽는 이도 있을 것이다. 시는 독자에게 맡겼으므로 활어처럼 살아 움직이는 바다를 누비는 것이다.


    한 선비가 친구를 찾아갔다. 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죽마고우라 서로 편한 사이였다. 지금은 서로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자주 만나기 힘든 형편이다. 이 친구는 그런대로 형편이 괜찮았지만 옛날부터 좀 인색吝嗇한 편이었다. 돈이 있어도 선뜻 한턱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이날도 오랜만에 찾아온 옛 친구에게 내놓은 술상이 시원치 않았다.
    “이보게, 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번 진탕 먹어 보세. 어디 이런 날이 자주 있겠나?”
    “그럼, 그거 좋은 말일세. 나도 자넬 만나니 무척 반갑네.”
    “안주가 좀 더 있어야 할 텐데……. 내가 타고 온 말을 팔아서 안주를 마련하세.”
    “아, 이 사람아! 그럼 먼 길을 어떻게 돌아가려고 그러나?”
    “웬 걱정인가? 저기 마당에 뛰어다니는 암탉 한 마리만 주면 그걸 타고 가지.”
    “하하, 이 친구! 알았네 알았어. 내가 암탉을 잡지.”

    부드러운 칼과 사과 그리고 과도의 날이다. 시적 교감을 생각하다가 그려본 고사다. 커피 집을 운영하는 사람은 커피가 상품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커피 한잔하게, 마! 푼돈 생각하다가 거저 한 잔 얻어 마시는 것은 무례다.
    최소한 도리를 지킨다면 부드러운 칼과 윤기 자르르 흐르는 과도의 날, 사과는 은근한 향으로 오롯하겠다.

================================
각주]
    이만섭 전북 고창 출생 2010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60건 1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66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 2 06-25
65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1 1 12-22
65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1 0 06-15
65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6 0 09-30
65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2 0 08-14
65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5 0 08-31
65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4 0 09-18
65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4 0 10-19
65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9 0 10-29
65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0 0 11-10
65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99 0 11-22
64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59 0 11-28
64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1 0 12-06
64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7 0 12-14
64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8 0 12-29
64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0 0 01-07
64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6 0 01-15
64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5 0 01-27
64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6 0 09-01
64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3 0 09-08
64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33 0 09-14
63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7 0 09-23
63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 0 10-02
63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3 0 03-01
63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2 0 05-01
63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1 0 05-23
63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4 0 06-18
63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33 0 03-22
63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3 0 12-08
63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0 0 12-21
63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6 0 12-30
62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69 0 01-08
62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08 0 01-16
62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5 0 01-25
62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35 0 02-02
62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79 0 02-10
62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89 0 02-18
62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66 0 02-24
62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823 0 03-01
62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25 0 03-06
62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10 0 05-05
61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953 0 05-19
61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95 0 05-29
61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40 0 06-18
61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6 0 10-01
61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2 0 08-14
61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4 0 08-31
61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4 0 09-18
61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2 0 10-19
61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4 0 10-3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