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 이해존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벽 / 이해존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75회 작성일 17-02-11 00:01

본문

벽 / 이해존




    줄넘기하는 아이의 발목 없는 그림자가 떠 있는 오후, 줄에 걸려 넘어진다 뻗쳐 있던 머리카락이 어둠으로 내려앉는다

    사소해서 몸집을 부풀리는 속임수는 독이 없다 한 번이라도 나를 스쳐가지 않는 것이 없다 이제 모서리가 필요하다

    벽을 따라간 대치 끝에 너와 악수하고 또 다른 모서리에서 만난다 모서리가 향한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리

    마임처럼 벽에 새겨진 손바닥들, 저편에서 같이 벽을 밀어내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그림자가 주저앉는다 벽 앞에서, 얼굴을 괸 손바닥을 벽쪽으로 밀고 있다

    손바닥 사이에서 납작해진 몸이 벽이 되어간다



鵲巢感想文
    시가 마치 추상화 보는 것 같다. 추상화란 사물의 사실적 재현이 아니고 순수한 점ㆍ선ㆍ면ㆍ색채에 의한 표현을 목표로 한다. 일반적으로 대상의 형태를 해체한 입체파 등의 회화도 포함한다. 예를 들어 맛있는 음식을 먹고 달콤한 느낌은 부드러운 터치로 분홍색으로 표현하고 고소한 맛은 나무색 같은 것으로 동그라미 모양으로 그린다면 이는 추상화다. 또 음악을 듣고 분위기가 어떤지에 따라서 명암과 색상을 고르고 악기에 따라서 선이나 점을 이용하여 그 음악에 맞게 그린다면 이것도 추상화다. 구체적인 형상을 그리지 않고 색상과 점, 선, 면 등을 이용해서 대상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변형하기도 하며, 느낌과 생각을 표현한다.
    시 1연을 보자. 줄넘기하는 아이의 발목 없는 그림자가 떠 있는 오후, 라고 했다. 시제가 벽이다. 줄넘기하는 아이는 자아다. 놀이의 줄넘기를 생각하면 안 되고 어떤 선을 넘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여기서 발목 없는 그림자가 떠 있는 오후니까 이것만큼 위태한 것도 없다. 현실의 부정과 실체의 부재다. 결국, 이는 줄에 넘어지고 뻗쳐 있던 머리카락이 어둠으로 내려앉는다. 줄에 넘어진다는 말은 어떤 선을 넘지 못하고 좌절했다는 묘사다. 머리카락은 글의 제유며 어둠은 실현치 못한 꿈을 묘사한다.
    사소해서 몸집을 부풀리는 속임수는 독이 없다. 시는 어쩌면 사소하기까지 하며 몸집을 부풀리는 속임수다. 시가 독이라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는 나를 스쳐 가지 않는 것이 없고 이를 표현하자니 우리는 모서리가 필요하다. 모서리는 시집을 제유한 표현이다. 시집은 직사각형 모서리며, 모서리만 모아놓은 글뿐이다.
    벽을 따라간 대치 끝에 너와 악수하고 또 다른 모서리에서 만난다. 시집은 경전이나 다름이 없다. 나의 글을 표현하는 데는 말이다. 화자가 표현한 것은 모서리라 했지만, 어떤 시인은 검(劍)이라 표현한 이도 있으며 어떤 이는 신전(神殿)이나 심지어 어머니, 아버지, 다족류 더 자세히는 오징어나 문어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보트나 기차, 식탁이나 가구 등 표현에 안 미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끌고 들어오면서 문장과 맥이 맞아야겠다.
    모서리가 향한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리, 모서리가 을이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거리는 갑이다. 다시 말하면 내 속을 들여다보는 거리다. 자아를 거울에 비추어놓고 그 내면을 보는 격이다.
    마임처럼 벽에 새겨진 손바닥들, 저편에서 같이 벽을 밀어내고 있다, 마임은 대사 없이 표정과 몸짓으로 하는 연극을 말한다. 손바닥은 시인의 마음을 제유한다. 결국, 거울보고 추상화 한 점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저편에서 같이 벽을 밀어내고 있으나, 이는 이쪽에서 뿌리치는 또 하나의 모서리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친 그림자가 주저앉는다 벽 앞에서, 버스는 화자의 마음을 담은 보자기나 다름없다. 시인 김선우의 ‘보자기의 비유’*라는 시도 있다만, 버스는 온전한 마음을 대신한다.
    얼굴을 괸 손바닥을 벽 쪽으로 밀고 있다, 실은 손바닥 같은 벽에 얼굴 담은 것을 묘사한다. 그러니까 시의 탄생이다. 손바닥 사이에서 납작해진 몸이 벽이 되어간다. 시집이 하나 완성된다. 시집 한 권은 여러 손바닥을 묶은 거나 다름없다.

    맹자의 말이다. 인유계견방즉지구지人有鷄犬放則知求之 유방심이부지구有放心而不知求 사람들은 기르던 개나 닭이 도망가면 찾으려 하지만 자기의 마음이 도망가면 찾으려 하지 않는다. 학문지도學問之道 무타無他 구기방심이이의求其放心而已矣 학문을 하는 것은 다른 것이 없다. 자기가 드러내놓은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시학은 마음을 들여다보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맹자는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흩은 마음 즉 방심을 되찾아 오는 것이라 했다. 매사 우리가 바쁘다고 뛰어다니지만, 진작 그것이 바쁜 일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눈은 책에 있으나 마음은 딴 데 있다. 마음이 흐트러진 상태다. 정신일도精神一到 하사불성何事不成이란 말도 있다. 정신이 한 곳에 모이면 무슨 일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벽,
    우리는 진정 무엇을 벽으로 두고 있는가? 마임처럼 가위에 눌리고 있지는 않은가? 발목 없는 아이로 공중에 떠 있거나 누가 내 얼굴을 누르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마음을 한곳에 모아라! 정신을 집중하고 성심을 다하면, 무엇이든 뚫리지 않는 일은 없다.
    송곳처럼 사물의 눈에 집중하라!

===================================
각주]
    이혜존 1970년 충남 공주 출생 2013년 <경향신문> 등단

    보자기의 비유 / 김선우

    처음엔 보자기 한 장이 온전히 내 것으로 왔겠지
    자고 먹고 놀고 꿈꾸었지 그러면 되었지
    학교에 들어가면서 보자기는 조각나기 시작했지
    8등분 16등분 24등분 정신없이 갈라지기 시작했지
    어느덧 중년--
    갈가리 조각난 보자기를 기우며 사네
    바늘 끝에 자주 찔리며
    지금이 없는 과거의 시간을 기우네
    미래를 덮지 못하는 처량한 조각보를 기우네

    한번 기우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지네
    그러니 청년이여 우리여
    가장 안쪽 심장에 지닌 보자기 하나는
    손수건만하더라도 통째로 가질 것
    단풍잎만하더라도 온전히 통째일 것

    온전한 단풍잎 한 장은 광야를 덮을 수 있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60건 8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31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2 0 09-04
30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5 0 09-03
30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0 0 09-02
30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94 0 09-01
30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4 0 08-31
30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5 0 08-31
30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8 0 08-30
30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8 0 08-29
30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7 0 08-28
30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1 0 08-28
30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8 0 08-21
29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6 0 08-21
29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1 0 08-19
29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6 0 08-18
29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9 0 08-18
29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4 0 08-17
29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2 0 08-16
29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9 0 08-16
29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3 0 08-15
29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3 0 08-15
29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2 0 08-14
28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2 0 08-14
28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3 0 08-13
28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7 0 08-12
28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54 0 08-12
28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7 0 08-12
28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5 0 08-11
28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97 0 08-11
28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7 0 08-10
28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01 0 08-09
28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0 0 08-07
27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9 0 08-04
27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2 0 10-07
27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91 0 10-07
27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16 0 10-03
27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1 0 10-02
27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426 0 10-01
27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16 0 09-30
27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09 0 09-30
27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72 0 09-30
27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34 0 09-28
26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83 0 09-09
26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33 0 09-02
26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85 0 08-28
26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48 0 07-24
26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22 0 06-27
26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629 0 06-25
26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91 0 06-24
26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764 0 06-24
26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547 0 06-22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