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관한 성찰 / 권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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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37회 작성일 17-02-18 00:08본문
바닥에 관한 성찰 / 권현형
저녁이 깊이 헤아려야 할
말씀처럼 두텁게 내려앉는 11월
뱀은 껍질을 발자국처럼 남기고
숲으로 사라진다
얼굴은 들고 허물은 벗어놓고
온몸의 발자국 같은
발자국의 온몸 같은 너의 껍질을
목간木簡처럼 받아들고 나는 깨닫는다
얼굴을
꼿꼿이 들고 낡은 몸을 버리고 숲속으로 사라진
너의 내성이 인류를 구하리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너는 자존심을 감추고 살아있다
현란한 무늬와 꿈틀거리는 육체성 때문에
관능의 화신으로 악마의 화신으로
돌팔매질당해 온 너의 깊은 슬픔
바닥을 쳐본 너의 고통이 세계를 구원하리라
짐승에서 인간으로, 짐승에서 인간까지
鵲巢感想文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가 시인이다. 꼭 등단했다고 하여 시인만은 아니다. 등단한 사람마저 그 이후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도 꽤 많다. 등단은 아니 하여도 글은 좋아 꾸준히 작품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21c는 출판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책이라는 매체가 이제는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예전보다는 적은 것도 사실이고 다른 매체로 정보를 구하는 길이 더 수월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이 갖는 의미는 인류가 살아 있는 한 가장 압도적이며 중요한 자리에 있음이다.
시인은 학자만 시인이 아니라 시인은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한다. 이러한 다양한 직업에 쏟아내는 목소리야말로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학자가 아닌 시인은 저녁이면 글을 파며 헤아리며 고독과의 싸움을 거치거나 어두컴컴한 숲속의 한 줄 빛처럼 문장을 남기기도 한다. 나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 인류가 남긴 목간 이래로 책을 탐독하는 것은 시인만의 일이다. 여기서 시인이 사용한 뱀은 문장을 제유한 시어며 숲은 자아를 표현한다.
하지만 역시 詩는 다의적이라, 뱀은 남성을 상징하며 숲은 여성을 상징한다. 뱀으로 묘사한 작품 중 미당의 시 ‘화사’가 있다. 화사는 꽃뱀이다. 화사를 보자
花蛇 / 미당 서정주, 詩 全文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채 낼룽 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베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 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
화사는 남성을 상징한다. 이에 극을 이루는 것이 크레오파투라다. 고흔 입설이다. 시인이 사용한 숲은 마치 구스타프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이 생각나게 한다. 미당은 ‘돌팔매를 쏘면서’로 표현했다면, 시인 권현형은 돌팔매질당해 온 너의 깊은 슬픔이라 했다. 어찌보면 시의 진화를 우리는 보는 셈이다. 하여튼,
詩 바닥에 관한 성찰은 화간和姦처럼 성애를 표현한 시로 읽을 수 있음도 밝혀둔다.
묵수墨守라는 말이 있다. 묵적지수(墨翟之守)라고도 한다. 묵적이 성을 굳게 지켰다는 말로 어떤 융통성을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지킨다는 뜻이다. 어쩌면 시가 묵수墨守라면 누가 읽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詩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이므로 묵수墨守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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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권현형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95년 <시와 시학> 등단
구스타프 쿠르베 1819년 6월 10일 ~ 1877년 12월 31일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미술가동맹의 회장이었던 쿠르베는 정치활동에도 가담함, 파리 코뮌이 무너진 후 체포되었고 그 결과 파산함. 작품으로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오르낭의 매장’ 이외 다수
저녁이 깊이 헤아려야 할
말씀처럼 두텁게 내려앉는 11월
뱀은 껍질을 발자국처럼 남기고
숲으로 사라진다
얼굴은 들고 허물은 벗어놓고
온몸의 발자국 같은
발자국의 온몸 같은 너의 껍질을
목간木簡처럼 받아들고 나는 깨닫는다
얼굴을
꼿꼿이 들고 낡은 몸을 버리고 숲속으로 사라진
너의 내성이 인류를 구하리라
바닥에 납작 엎드려 너는 자존심을 감추고 살아있다
현란한 무늬와 꿈틀거리는 육체성 때문에
관능의 화신으로 악마의 화신으로
돌팔매질당해 온 너의 깊은 슬픔
바닥을 쳐본 너의 고통이 세계를 구원하리라
짐승에서 인간으로, 짐승에서 인간까지
鵲巢感想文
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가 시인이다. 꼭 등단했다고 하여 시인만은 아니다. 등단한 사람마저 그 이후로 글을 쓰지 않는 사람도 꽤 많다. 등단은 아니 하여도 글은 좋아 꾸준히 작품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 21c는 출판문화도 많이 달라졌다. 책이라는 매체가 이제는 독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예전보다는 적은 것도 사실이고 다른 매체로 정보를 구하는 길이 더 수월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이 갖는 의미는 인류가 살아 있는 한 가장 압도적이며 중요한 자리에 있음이다.
시인은 학자만 시인이 아니라 시인은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한다. 이러한 다양한 직업에 쏟아내는 목소리야말로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다. 학자가 아닌 시인은 저녁이면 글을 파며 헤아리며 고독과의 싸움을 거치거나 어두컴컴한 숲속의 한 줄 빛처럼 문장을 남기기도 한다. 나의 문장을 만들기 위해 인류가 남긴 목간 이래로 책을 탐독하는 것은 시인만의 일이다. 여기서 시인이 사용한 뱀은 문장을 제유한 시어며 숲은 자아를 표현한다.
하지만 역시 詩는 다의적이라, 뱀은 남성을 상징하며 숲은 여성을 상징한다. 뱀으로 묘사한 작품 중 미당의 시 ‘화사’가 있다. 화사는 꽃뱀이다. 화사를 보자
花蛇 / 미당 서정주, 詩 全文
麝香 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 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
꽃다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든 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채 낼룽 그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눌이다. .......물어뜯어라. 원통히 무러뜯어.
다라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麝香 芳草ㅅ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안해가 이브라서 그러는게 아니라
石油 먹은 듯......石油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눌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다님보단도 아름다운 빛........
크레오파투라의 피먹은양 붉게 타오르는 고흔 입설이다........슴여라! 베암.
우리 순네는 스물난 색시, 고양이 같이 고흔 입설........슴여라! 베암.
화사는 남성을 상징한다. 이에 극을 이루는 것이 크레오파투라다. 고흔 입설이다. 시인이 사용한 숲은 마치 구스타프 쿠르베의 ‘생명의 기원’이 생각나게 한다. 미당은 ‘돌팔매를 쏘면서’로 표현했다면, 시인 권현형은 돌팔매질당해 온 너의 깊은 슬픔이라 했다. 어찌보면 시의 진화를 우리는 보는 셈이다. 하여튼,
詩 바닥에 관한 성찰은 화간和姦처럼 성애를 표현한 시로 읽을 수 있음도 밝혀둔다.
묵수墨守라는 말이 있다. 묵적지수(墨翟之守)라고도 한다. 묵적이 성을 굳게 지켰다는 말로 어떤 융통성을 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지킨다는 뜻이다. 어쩌면 시가 묵수墨守라면 누가 읽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詩는 마음이다. 그 마음을 상대에게 보이는 것이므로 묵수墨守는 없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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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권현형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95년 <시와 시학> 등단
구스타프 쿠르베 1819년 6월 10일 ~ 1877년 12월 31일 사실주의 미술의 선구자. 미술가동맹의 회장이었던 쿠르베는 정치활동에도 가담함, 파리 코뮌이 무너진 후 체포되었고 그 결과 파산함. 작품으로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 ‘오르낭의 매장’ 이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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