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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스테메, 텍스트 미학 / 김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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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593회 작성일 17-02-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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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스테메, 텍스트 미학 / 김광기




    숨구멍을 열고 오밀조밀 몰려있는 개미집 같고
    곧은 씨알들이 촘촘히 박힌 해바라기 같기도 하지만
    선험의 숨결이 응축된 기표와 기의의 횡단들,
    무수한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나 세상으로 퍼진다.
    소리로 키워내는 순간 의미는 분해되는 듯하지만
    가슴에 다시 고여서 탄력을 갖는 패러다임,
    읽을 때마다 의미는 달라진다. 뜻은 그대로이더라도
    좌표는 달라진다. 삶의 경륜으로 읽히는 텍스트,
    벽에 꽂힌 무수한 텍스트들, 갖가지의 무늬로 아침을 밝히고
    때로는 깨알처럼 때로는 고딕폰트 문양 같은 높이로
    시작을 알린다. 다시 텍스트만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횡렬에 따르지 않고 아래를 내려 밟는다.
    그렇게 오르려고만 했던 계단을 내려가기만 할 때
    중심을 지탱하던 관절의 삐걱거림을 느끼며
    노쇠한 무릎 때문에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지나온 삶이 아니면
    도저히 따라 읽을 수 없는 시간에 한 걸음씩 내려가는
    텍스트 계단, 무수히 밟히는 시니피앙 시니피에들.



鵲巢感想文
    詩學은 마음공부다.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이다. 위 詩는 우선 외국어가 많아, 정의부터 내려야겠다. 에피스테메episteme는 순수한 지식을 말한다. 텍스트text는 문장보다는 더 큰 단위를 말한다. 원문이나 본문쯤으로 보면 된다. 시니피앙signifiant은 귀로 듣는 단지 소리다. 그러니까 이 소리에 의미는 제외한다. 시니피에signifie는 소리에 담은 의미다. 시인 조말선 선생의 시 ‘빈방 있습니까’에서 빈방은 거저 시니피앙이다. 하지만, 시로 나타낸 이 속뜻은 마음을 말한다. 그러면 마음은 시니피에가 된다.
    詩人의 詩는 詩의 묘사다. 詩는 숨구멍을 열고 오밀조밀 몰려있는 개미집 같다. 개미는 까맣고 작다. 그러므로 까만 글씨를 제유한다. 곧은 씨알들이 촘촘히 박힌 해바라기 같기도 하다. 해바라기는 태양만 바라본다. 그 특성을 볼 때 오로지 글의 제 주인은 독자다. 시는 선험의 숨결이 응축된 기표와 기의의 횡단들이다. 기표는 시니피앙이며 기의는 시니피에다. 무수한 기운들이 스멀스멀 피어나 세상으로 퍼진다. 시는 마치 생물처럼 살아 움직이는 어떤 힘으로 세상을 밝힌다.
    시는 소리로 키워내는 순간 의미는 분해되는 듯하지만, 가슴에 다시 고여서 탄력을 갖는 패러다임이다. 시는 읽을 때마다 의미는 달라진다. 시는 뜻은 그대로이더라도 좌표는 달라진다. 시는 삶의 경륜으로 읽히는 텍스트다. 시는 벽에 꽂힌 무수한 텍스트들, 갖가지의 무늬로 아침을 밝히고 때로는 깨알처럼 때로는 고딕폰트 문양 같은 높이로 시작을 알린다. 여기서 벽은 마음의 벽이다. 고딕폰트 문양은 원뜻은 알지 못하고 반듯한 활자체로 그냥 읽는 맛을 말한다. 그러니까 시니피앙이다.
    시는 다시 텍스트만 있는 것 같다. 이제는 횡렬에 따르지 않고 아래를 내려 밟는다. 아래를 내려 밟는다는 말은 이제는 읽는 것만이 아니라 쓰는 단계로 나의 철학을 알릴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그렇게 오르려고만 했던 계단을 내려가기만 할 때 중심을 지탱하던 관절의 삐걱거림을 느끼며 노쇠한 무릎 때문에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힘들다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물론 어머니의 철학적 말씀도 맞고, 시는 또 어머니와 같다. 거울을 보고 내 철학을 담는 것은 어쩌면 중심이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내공이 없다면 내려가는 길은 목숨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나온 삶이 아니면 도저히 따라 읽을 수 없는 시간에 한 걸음씩 내려가는 텍스트 계단, 무수히 밟히는 시니피앙 시니피에들, 그러므로 시학은 어느 정도 경륜이 있어야 한다. 삶의 여러 가지 문양을 겪은 어른이야말로 그 어떤 인생 경험도 이해가 되며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철 메뚜기가 겨울을 알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모르고 모래사장만 걷던 어떤 생물 또한 코발트 빛 바다를 어찌 알겠는가 말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말로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주머니 속에 송곳이란 뜻이다. 의역하면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저절로 드러난다는 말이다. 이 얘기의 근원인 평원군과 모수의 대화를 모두 옮길 순 없으나 간략히 얘기하면 이렇다. 모수는 평원군의 하인이었다. 춘추전국시대는 하루도 전쟁이 없는 날이 없었다. 궁지에 몰린 평원군은 이웃 나라에 구원병 요청을 위해 일정의 요원을 뽑는 중, 자원하고 나선 모수가 있었다. 모수는 평원군 하수로 들어온 지 3년이었다. 뛰어난 자는 어쨌든 간에 드러나는 법인데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이 사람을 평원군은 믿을 수 없었다. 이때 모수는 정곡을 찌르는 직언을 한다. 말인즉슨 자신을 주머니 안에 넣어 달라는 얘기다. 이에 탄복한 평원군은 모수를 쓰게 되었다. 그 이후 모수의 뛰어난 활약 덕분에 나라를 구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21c 자본주의 시대다. 낭중지추의 의미를 다시 읽는 것은 시대의 의미를 알아야겠다. 춘추전국시대와 달리 이 시대는 웬만한 주머니에 들어가기에는 여간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경쟁은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다.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갈 지경이다. 춘추전국시대보다 전쟁은 없으나 새로운 자본가의 출현은 버금가는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두각은 주머니를 스스로 만들고 스스로 바늘이 되어야 하는 웃지 않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낭중지추囊中之錐가 아니라 심중지추心中之錐로 바늘과 같은 묘수를 하루라도 생각지 않으면 하루는 버티기 힘든 시대다.
    에피스테메는 개천에 떨어지는 매화 꽃잎이다. 텍스트는 뿌리로 돌아가는 꽃이다. 시간에 한 걸음씩 내려가는 텍스트 계단, 무수히 밟는 시니피앙 시니피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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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광기 충남 부여 출생 1995년 시집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펴냄으로써 작품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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