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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꽃 / 사윤수 외 1편, 靑磁象嵌梅竹柳文'將進酒'銘梅甁의 木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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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23회 작성일 17-03-01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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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꽃 / 사윤수




    폭우는 허공에서 땅 쪽으로 격렬히 꽃피우는 방식이다. 나는 비의 뿌리와 이파리를 본 적이 없다. 일체가 투명한 줄기들, 야위어 야위어 쏟아진다. 빗줄기는 현악기를 닮았으나 타악기 기질을 가진 수생식물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비에겐 나비가 아니라 영혼이 깨지는 순간이 필요한 것. 두두두두두두 타닥타닥타닥타닥타닥 끊임없이 현이 끊어지는 소리, 불꽃이 메마른 가지를 거세게 태울 때의 비명이 거기서 들린다. 꽃무릇의 핏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뺐다고 치자. 그게 백혈병을 앓는 군락지처럼 줄기차게 거꾸로 드리우는 것이 폭우다. 추락의 끝에서 단 한 순간 피고 지는 비꽃. 낮게 낮게 낱낱이 소멸하는 비의 꽃잎들,
    비꽃 한 아름 꺾어 화병에 꽂으려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鵲巢感想文
    어떤 때는 詩가 시인의 시제 비꽃처럼 속 시원히 뚫고 지날 때도 있다. 시 한 수 짓는 게 저럴 수 있다면 하루가 이것보다 더 좋은 성찰은 없겠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시 한 편 감상하는 보람도 시 짓는 것보다 더 좋은 성찰임을 이 비꽃을 통해 깨닫는다.
    詩人은 땅바닥에 맹렬히 퍼붓는 폭우를 비꽃이라 했다. 비는 줄기며 땅바닥에 부딪는 순간 꽃을 피우는 게다. 이를 시인은 현악기를 닮은 빗줄기로 타악기를 닮은 꽃에 그러니까 수생식물로 명기한다. 꽃을 피우는 건 영혼이 깨지는 순간이라 했다. 현이 끊어지고 불꽃이 메마른 가지를 거세게 태울 때, 비명이 거기서 들린다. 번개를 메마른 가지로 치환한데다가 더 나가 자아를 그리는 언어 중첩 기술은 압권이다. 산뜻하다.
    이제 시인은 시의 결말로 내디딘다. 꽃무릇의 핏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뺏을 때, 시는 오는 것인데 백혈병을 앓는 군락지처럼 줄기차게 거꾸로 드리우는 것이 폭우라 했다. 그러니까 시다. 폭우는 시초詩草를 제유한 것이며 백혈병은 흰 종이를 제유한다. 군락지는 말 그대로 뭉뚱그린 글이겠다.
    추락의 끝에서 단 한 순간 피고 지는 비꽃, 詩다. 낮게 낮게 낱낱이 소멸하는 비의 꽃잎들, 시의 문장들, 비꽃 한 아름 꺾어 화병에 꽂으려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했다. 시인은 시를 쓴다. 쓴 시를 시집으로 내는 일이야말로 詩人의 행복이다.

    詩人의 詩 한 편만 더 보자.


    청자상감매죽유문장진주명매병의 목독(木牘) / 사윤수
    靑磁象嵌梅竹柳文'將進酒'銘梅甁의 木牘

    그날 밤 소쩍새 소리에 처음 눈을 떴습니다 검은 허공이 실핏줄로 금이 가 있었습니다 사깃가마 속 사흘밤낮 회돌이치는 불바람이 나를 만들었지요 흙이던 때를 잊고 또 잊어라 했습니다 별을 토하듯 우는 소쩍새도 그렇게 득음 하였을까요 나는 홀로 남겨지고, 돌아보니 저만치 자기(瓷器) 파편 산산이 푸른 안개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모서리에 기러기 매듭 끈이 달린 국화칠색단 남분홍 보자기가 나를 데려갔습니다 다포 겹처마 팔작지붕 아래 슬기둥 덩뜰당뜰 당다짓도로 당다둥 뜰당* 거문고 소리 깊은 집이었습니다 달빛 애애한 밤 오동 잎사귀 워석버석 뒤척이면 나는 남몰래 사수 겹머리사위체 춤을 추곤 했지요 대숲에 댑바람 눈설레 치고 지고 내 몸에 아로새겨진 버드나무에도 당초호접무늬 봄이 수 백 번 오갔습니다

    여기는 커다란 하나의 무덤 그 속에 작은 유리무덤들, 이제 나는 침침한 불빛에 갇혀 있습니다 내가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나도 모르는데 날마다 많은 사람들 들어와 나를 쳐다봅니다 밖에는 복사꽃 붉은 비처럼 어지러이 떨어지는지** 전해주는 이 아무도 없고 그 사이로 천 년의 강물 흘러갑니다 때로는 내가 흙이던 날의 기억 아슴아슴 젖어옵니다 누가 이곳에 대신 있어준다면 나는 잠시 꿈엔 듯 다녀오고 싶건만 아, 그 소쩍새는 아직 울고 있을까요

 
    鵲巢感想文
    우선 이 詩, 감상에 앞서 시제를 보아야겠다. 청자상감매죽유문장진주명매병靑磁象嵌梅竹柳文'將進酒'銘梅甁의 목독(木牘)으로 목독(木牘)은 글씨를 쓴 나뭇조각으로 시제가 마치 목독(目讀)으로 읽힌다. 눈으로 읽는다는 뜻으로 말이다.
    매병梅甁은 아가리가 좁고 어깨는 넓으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이다. 상감象嵌은 금속이나 도자기, 목재 따위의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서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 은, 보석, 뼈, 자개 따위를 박아 넣는 공예 기법. 또는 그 기법으로 만든 작품. 고대부터 동서양에서 두루 이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상감 청자와 나전 칠기에서 크게 발달하였다.
    청자상감靑磁象嵌은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도자기 고려청자의 일종이다. 詩人은 이 명품을 보며 시 한 수 지었다. 이 자기는 매화와 대나무 버드나무가 새겨져 있는가 보다. 시제가 매죽유문梅竹柳文이라 하니 말이다. 장진주將進酒는 중국 당대의 시귀로 불리는 이하(790~816)의 작품이다.
    시 내용은 이 병에 얽힌 전설을 이용하여 작문한 것으로 보인다. 천 년을 기리는 소쩍새 울음소리는 시를 제유한 시구다. 청자상감매죽유문장진주명매병에 갇힌 시, 소쩍새처럼 만약 천 년 뒤 시가 읽히는 것만큼 시인은 시대를 떠나 명예를 갖는 셈이다.
    시 2연을 보면 ‘슬기둥 덩뜰당뜰 당다짓도로 당다둥 뜰당’ 시인의 언어유희를 볼 수 있는데 이는 거문고 뜯는 소리 은유다. 슬기인 듯 기둥인 듯 덩뜰당뜰 집(당) 다 짓도록 집(당) 다 둥 뜰도 있다 둥 당 마치 이렇게 읽힌다. 웃기고 재밌다.
    이 詩는 시도 참 잘 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한 건 역시나 우리 고유의 문화자산을 한 층 더 격상한 것에 주안점을 둬야겠다. 시제만 보아도 천년의 세월에 얼 지경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천년은 아득한 세월이다. 한 생애가 30년이라면 몇 대를 거쳐야 천 년인가? 시도 아득하게 읽히고 전설처럼 소쩍새가 이 시를 감상하는 마당에 소쩍,소쩍거리며 날아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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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사윤수 1964년 경북 청도 출생 2011<현대시학>등단
    詩人曰 * 슬기둥 덩뜰당뜰 당다짓도로 당다둥 뜰당 - 어느 책에서 빌림
    詩人曰** 매병에 새겨진 시문 장진주(將進酒) 가운데, 도화난락여홍우(桃花亂落如紅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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