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법 /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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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39회 작성일 17-03-07 00:05본문
비유법 / 이규리
방과 후 날마다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비유법을 밥처럼 먹던 시절 있었다
비유는 하나로 여럿을 말하는 일이야
노을이 철철 흘러 뜨거워서 닫아거는 저녁
우리는 서쪽 창가에 앉아 흰 단어들을 널었다
나뭇가지에 서늘한 시간이 척척 걸리곤 했다
그 놀이에 탐닉하는 동안
놀이 끝에 서서히 슬픔이 베어나고 있었다 글쎄 그게 아픈데도 좋았다
그 찬란에 눈이 베이며 울며 또 견디며
그런데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은 다 어디 갔을까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죽어가는 나무, 무서운 옥상들
뭐 이런 시절이 다 있어
이건 비유가 아냐 방과 후가 아냐
제 생이 통째 비유인 줄 모르고,
저기 웅크리고 혼자 지는 붉은 해
눈 먼 상처들이야 자해한 손목들이야
鵲巢感想文
詩 한 수 읽어도 이렇게 간담이 서늘하게 읽은 것도 없을 것 같다. 비유법이 이렇게 큰지 새삼 느끼는 시다. 시는 총 7연을 이룬다. 시 1연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자아다.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과 비유법처럼 밥을 먹고 그러니까 인생을 미리 알기 위해 공부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 커간다.
詩 2연은 벌써 인생 막바지에 들어선 자아다. 노을이 철철 흘러 뜨거워서 닫아거는 저녁, 우리는 서쪽 창가에 앉아 흰 단어들을 널었다. 그만큼 인생을 회상하며 본다는 뜻이다. 나뭇가지에 서늘한 시간이 척척 걸리곤 했다. 나의 일, 나의 자식, 나의 사상 등 그 어떤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비유다.
詩 3연, 인생 말기에 접어든 자아와 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의 시간을 겪는 것도 아픔은 있지만, 좋았다. 놀이에 탐닉한다는 말, 놀이 끝에 서서히 슬픔이 배어난다는 말, 그 찬란에 눈이 베이고 울며 견디는 이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詩 4연 그런데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이미 떠나고 없는 선생이 그립다. 그만큼 자아는 이미 늙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던 옛 선생님 마음을 이해한다.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즉 이는 인생이다. 한평생 살았다만, 진작 어릴 때 배웠던 선생의 말씀은 이제야 떠오른다. 죽어가는 나무는 자아를 제유하며 죽음은 무섭기만 하다.
詩 5연 뭐 이런 시절이 다 있어 하며 후회하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라고 인생이 아니라고 방과 후가 아냐, 하지만 방과 후는 모두 끝났다.
詩 6연, 인생이 통째 비유인 줄 모르고 말이다.
詩 7연, 저기 웅크리고 혼자 지는 붉은 해, 자아다. 해가 저물 듯 인생은 저물었고 눈먼 상처와 자해한 손목 같은 노을만 깊다. 묘사다.
한 편의 시가 마치 영화 보는 것보다 더 명징하다. 시 1연의 유연 시절과 시 2연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그만큼 시간은 빠르게 묘사했다. 여기서 시 감상하는 독자는 생각한 만큼 아득하게 느꼈을 것이다. 시 4연과 5연에서 인생의 막바지 노을은 왜 그리 깊게 닿는지. 특히 4연의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죽어가는 나무, 무서운 옥상들은 죽음을 인식하며 그리 아리따웠던 꽃밭 같은 삶만 아득하게 지나고 만다. 아마 이 부분을 읽는 독자가 나이가 많을수록 더 가슴 아프게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40대 후반인 필자는 이미 지나간 40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니 온몸이 전율이 일 정도다.
시가 짧다고 하지만, 감동을 안겨다 주는 시는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인생을 그릇에 많이 비유한다. 이 그릇도 금 그릇, 은그릇, 동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금수저, 은수저에 버금가는 우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으나 수저와 태생은 다르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던 인생은 그 누가 대신하지 않기에 무엇을 담는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했다. 천천히 내가 갖은 꿈에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한 계단씩 준비하며 오르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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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이규리 1955년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 등단
방과 후 날마다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비유법을 밥처럼 먹던 시절 있었다
비유는 하나로 여럿을 말하는 일이야
노을이 철철 흘러 뜨거워서 닫아거는 저녁
우리는 서쪽 창가에 앉아 흰 단어들을 널었다
나뭇가지에 서늘한 시간이 척척 걸리곤 했다
그 놀이에 탐닉하는 동안
놀이 끝에 서서히 슬픔이 베어나고 있었다 글쎄 그게 아픈데도 좋았다
그 찬란에 눈이 베이며 울며 또 견디며
그런데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은 다 어디 갔을까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죽어가는 나무, 무서운 옥상들
뭐 이런 시절이 다 있어
이건 비유가 아냐 방과 후가 아냐
제 생이 통째 비유인 줄 모르고,
저기 웅크리고 혼자 지는 붉은 해
눈 먼 상처들이야 자해한 손목들이야
鵲巢感想文
詩 한 수 읽어도 이렇게 간담이 서늘하게 읽은 것도 없을 것 같다. 비유법이 이렇게 큰지 새삼 느끼는 시다. 시는 총 7연을 이룬다. 시 1연은 어린 시절을 보내는 자아다.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과 비유법처럼 밥을 먹고 그러니까 인생을 미리 알기 위해 공부하고 어른이 되기 위해 커간다.
詩 2연은 벌써 인생 막바지에 들어선 자아다. 노을이 철철 흘러 뜨거워서 닫아거는 저녁, 우리는 서쪽 창가에 앉아 흰 단어들을 널었다. 그만큼 인생을 회상하며 본다는 뜻이다. 나뭇가지에 서늘한 시간이 척척 걸리곤 했다. 나의 일, 나의 자식, 나의 사상 등 그 어떤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는 비유다.
詩 3연, 인생 말기에 접어든 자아와 성찰이다. 이러한 성찰의 시간을 겪는 것도 아픔은 있지만, 좋았다. 놀이에 탐닉한다는 말, 놀이 끝에 서서히 슬픔이 배어난다는 말, 그 찬란에 눈이 베이고 울며 견디는 이 말에 가슴이 뭉클했다.
詩 4연 그런데 비유법을 가르쳐주시던 선생님들은 다 어디에 갔을까? 이미 떠나고 없는 선생이 그립다. 그만큼 자아는 이미 늙었다. 인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던 옛 선생님 마음을 이해한다.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즉 이는 인생이다. 한평생 살았다만, 진작 어릴 때 배웠던 선생의 말씀은 이제야 떠오른다. 죽어가는 나무는 자아를 제유하며 죽음은 무섭기만 하다.
詩 5연 뭐 이런 시절이 다 있어 하며 후회하지만, 이건 비유가 아니라고 인생이 아니라고 방과 후가 아냐, 하지만 방과 후는 모두 끝났다.
詩 6연, 인생이 통째 비유인 줄 모르고 말이다.
詩 7연, 저기 웅크리고 혼자 지는 붉은 해, 자아다. 해가 저물 듯 인생은 저물었고 눈먼 상처와 자해한 손목 같은 노을만 깊다. 묘사다.
한 편의 시가 마치 영화 보는 것보다 더 명징하다. 시 1연의 유연 시절과 시 2연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순식간이다. 그만큼 시간은 빠르게 묘사했다. 여기서 시 감상하는 독자는 생각한 만큼 아득하게 느꼈을 것이다. 시 4연과 5연에서 인생의 막바지 노을은 왜 그리 깊게 닿는지. 특히 4연의 비유법을 모르는 추운 꽃밭, 죽어가는 나무, 무서운 옥상들은 죽음을 인식하며 그리 아리따웠던 꽃밭 같은 삶만 아득하게 지나고 만다. 아마 이 부분을 읽는 독자가 나이가 많을수록 더 가슴 아프게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40대 후반인 필자는 이미 지나간 40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니 온몸이 전율이 일 정도다.
시가 짧다고 하지만, 감동을 안겨다 주는 시는 오래도록 머리에 남아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인생을 그릇에 많이 비유한다. 이 그릇도 금 그릇, 은그릇, 동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금수저, 은수저에 버금가는 우스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으나 수저와 태생은 다르다. 내가 어떻게 태어났던 인생은 그 누가 대신하지 않기에 무엇을 담는다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몫이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했다. 천천히 내가 갖은 꿈에 급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이 한 계단씩 준비하며 오르는 현명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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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이규리 1955년 문경 출생 1994년 <현대시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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