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메기를 읽다 / 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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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00회 작성일 17-03-24 08:59본문
물메기를 읽다 / 김지요
내 몸의 물기가 마르는 날이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누수의 출처를 찾지 못했다
물주머니처럼 흐느적거리며
물의 나라에서 나고 자란 태생을 탓할 뿐이었다
어느 날 내장이 비워진 채
베란다 난간에 내어 말려졌다
잠이 없는 밤
혼자였다
그리고 혼자였다
점자를 읽듯 밤들을 건넜다
날것으로 요동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해
한동안 허공에 마음을 두었다
가시 하나 없는 섬모를 가진 보자기가
나를 받아 안을 것만 같았다
추락의 탄성彈性이 오히려 나를 붙들었다
아가미에 꿰어진 끈 놓지 않으려
한 방울의 눈물도 버렸다
뼈대만 남은 말라비틀어진
한 마디의 말言이 되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들을
간단없이 건너온 순례기를 몸으로 쓰는 중이다
허공에 뜬 탁본은
아기미 속으로 울음을
삼켜 본 자만이 읽을 수 있다
鵲巢感想文
여기서 물메기는 제유다. 빨랫감으로 제유한 것이지만 이는 자아를 그린다. 물메기는 쏨뱅이목 곰칫과의 바닷물고기이다. 피부와 살이 연하여 일정한 모양을 갖추기 어렵다. 옛날에는 생선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물메기탕, 곰치국 등이 유명하다. 시제 물메기는 물메기가 아니라 세상에 폭 젖어 사는 우리, 혹은 자아를 뜻한다.
이 시의 7행에 보면 ‘베란다 난간에 내어 말려졌다’는 문장에 시인의 시작법을 얼추 이해가 닿는다. 시인은 빨랫감으로 자아와 대치되는 세계를 중첩하며 그렸다. 이 시를 읽듯 한평생 산다는 것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말 못 할 사정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러한 말을 제대로 표현하고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의중을 곧이곧대로 풀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시와 더불어 품격을 더 높여 시로 승화시켜 놓은 시인도 있다.
사회를 이루며 사회에 사는 우리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더불어 하기는 어렵다.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무리를 이루지 못하며 너무 아둔하면 실익을 추구할 수 없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시집살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와 함께할 때 때로는 이처럼 처세한다면, 나의 실익은 분명히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함이 화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우화 한 편 보자.
전갈이 강을 건너가려 했지만 헤엄칠 줄 몰라 망설이고 있던 차에 물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전갈이 강 저편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자 개구리는 “네가 꼬리의 독침으로 나를 쏠지도 모르니 그건 좀 곤란해”라고 대답했다. 당황한 전갈이 곧바로 해명했다. “그렇지 않아. 너를 쏘아 죽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잖아.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절대로 너를 해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개구리는 전갈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등에 전갈을 업고 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강 중간에 이르자 전갈이 갑자기 꼬리의 독침으로 개구리를 찔렀다. 개구리가 힘들게 고개를 돌려 전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물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우리는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는데 왜 나를 죽이는 거지?” 개구리의 몸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전갈은 온 힘을 다해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보며 외쳤다. “나도 모르겠어. 남을 독침으로 물어 죽이는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봐!” 전갈도 결국에는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화를 예로 들었지만, 사회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게 접한다. 정치권에서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일반 서민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조직 내에 시기 질투는 자신도 파멸로 잇는다. 나의 본능을 자제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다.
자공이 물었다. “어떠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 子貢 問曰 何如 斯可謂之士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행동에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 子曰 行己有恥
부끄러움은 어째서 생기는 것인가? 정말 그대는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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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지요 2008년 <애지> 등단
내 몸의 물기가 마르는 날이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누수의 출처를 찾지 못했다
물주머니처럼 흐느적거리며
물의 나라에서 나고 자란 태생을 탓할 뿐이었다
어느 날 내장이 비워진 채
베란다 난간에 내어 말려졌다
잠이 없는 밤
혼자였다
그리고 혼자였다
점자를 읽듯 밤들을 건넜다
날것으로 요동치는 바람을 이기지 못해
한동안 허공에 마음을 두었다
가시 하나 없는 섬모를 가진 보자기가
나를 받아 안을 것만 같았다
추락의 탄성彈性이 오히려 나를 붙들었다
아가미에 꿰어진 끈 놓지 않으려
한 방울의 눈물도 버렸다
뼈대만 남은 말라비틀어진
한 마디의 말言이 되고 있었다
칠흑 같은 밤들을
간단없이 건너온 순례기를 몸으로 쓰는 중이다
허공에 뜬 탁본은
아기미 속으로 울음을
삼켜 본 자만이 읽을 수 있다
鵲巢感想文
여기서 물메기는 제유다. 빨랫감으로 제유한 것이지만 이는 자아를 그린다. 물메기는 쏨뱅이목 곰칫과의 바닷물고기이다. 피부와 살이 연하여 일정한 모양을 갖추기 어렵다. 옛날에는 생선으로 취급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물메기탕, 곰치국 등이 유명하다. 시제 물메기는 물메기가 아니라 세상에 폭 젖어 사는 우리, 혹은 자아를 뜻한다.
이 시의 7행에 보면 ‘베란다 난간에 내어 말려졌다’는 문장에 시인의 시작법을 얼추 이해가 닿는다. 시인은 빨랫감으로 자아와 대치되는 세계를 중첩하며 그렸다. 이 시를 읽듯 한평생 산다는 것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말 못 할 사정이 얼마나 많겠는가! 이러한 말을 제대로 표현하고 사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자신의 의중을 곧이곧대로 풀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시와 더불어 품격을 더 높여 시로 승화시켜 놓은 시인도 있다.
사회를 이루며 사회에 사는 우리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더불어 하기는 어렵다. 사람이 너무 똑똑해도 무리를 이루지 못하며 너무 아둔하면 실익을 추구할 수 없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말이 있다. 시집살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와 함께할 때 때로는 이처럼 처세한다면, 나의 실익은 분명히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못함이 화를 불러들이는 것이다.
우화 한 편 보자.
전갈이 강을 건너가려 했지만 헤엄칠 줄 몰라 망설이고 있던 차에 물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나타났다. 전갈이 강 저편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하자 개구리는 “네가 꼬리의 독침으로 나를 쏠지도 모르니 그건 좀 곤란해”라고 대답했다. 당황한 전갈이 곧바로 해명했다. “그렇지 않아. 너를 쏘아 죽이면 나도 물에 빠져 죽잖아.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절대로 너를 해치지 않을 테니 걱정 마.” 개구리는 전갈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생각해 등에 전갈을 업고 강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강 중간에 이르자 전갈이 갑자기 꼬리의 독침으로 개구리를 찔렀다. 개구리가 힘들게 고개를 돌려 전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를 물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어? 우리는 생사를 같이하기로 했는데 왜 나를 죽이는 거지?” 개구리의 몸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전갈은 온 힘을 다해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보며 외쳤다. “나도 모르겠어. 남을 독침으로 물어 죽이는 천성은 어쩔 수 없나 봐!” 전갈도 결국에는 개구리와 마찬가지로 물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우화를 예로 들었지만, 사회에 사는 우리는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게 접한다. 정치권에서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일반 서민의 삶도 마찬가지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조직 내에 시기 질투는 자신도 파멸로 잇는다. 나의 본능을 자제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현명한 사람이다.
자공이 물었다. “어떠해야 선비라 할 수 있습니까?” 子貢 問曰 何如 斯可謂之士矣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행동에 부끄러움이 있어야 한다.” 子曰 行己有恥
부끄러움은 어째서 생기는 것인가? 정말 그대는 떳떳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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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김지요 2008년 <애지>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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