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지는 쪽으로 / 이정록 > 내가 읽은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내가 읽은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내가 읽은 시

    (운영자 : 네오)

 

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해 지는 쪽으로 / 이정록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883회 작성일 17-05-12 21:24

본문

해 지는 쪽으로 / 이정록




    햇살동냥 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줄만 심었지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네.

    나는 꼭,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리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네.

    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이
    또 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나지.
    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네.

    해마다 나는
    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네.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鵲巢感想文
    예전 시인의 시집 ‘제비꽃 여인숙’을 읽고 몇 편을 감상한 바 있다. 오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창비에서 낸 시집을 본다. 이중 시 ‘해 지는 쪽으로’는 서시에 해당한다.
    시제 ‘해 지는 쪽으로’는 해가 지는 방향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저물어가는 자아를 가리킨다. 해는 시인을 제유한다. 시인은 햇살동냥 하지 말라고 밭둑을 따라 한 줄만 심었다고 했다. 햇살은 마치 금전적인 어떤 대상을 비유한 것 같다. 직장을 다녀도 교편을 잡아도 혹은 공무 일을 한다고 해도 반대급부인 급여는 생명 줄이며 피할 수 없는 동냥이나 마찬가지다. 밭둑을 따라 한 줄만 심었다. 논도 아니고 밭도 아니고 밭둑이다. 둑은 하나의 경계다. 나와 너와의 경계, 삶과 죽음과의 경계가 둑이다. 밭은 정실의 작업장이 아닌 후사를 보조하는 경작의 덤이다. 한 줄만 심은 것, 일관성이다. 줄곧 시와 그 맥을 끊지 않고 산 시인이다. 그런데도 해 지는 쪽으로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가 있다. 해 지는 쪽은 점점 나이가 드는 시인을 제유하며 고갤 수그리는 해바라기는 시인의 이상향이다. 즉 시다. 시는 시인의 뼛골이나 다름없기에 해와 해바라기, 실체인 몸과 마음을 비유한다.
    나는 꼭,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 해바라기는 여러 마음 중에서도 유독 표 나는 마음으로 시로 변형이 가능한 이상이다.
    벗 그림자로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르는 까만 눈동자, 속눈썹이 젖어 있다. 이 부위는 해바라기를 묘사한다. 그러니까 마음의 상황묘사다. 마음은 시인의 벗이며 시인의 벗은 시며 그것은 마음의 골짜기를 문지를 까만 눈동자다. 속눈썹이 젖어 있다. 속눈썹이라는 시어에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좀 관능적이다. 눈썹이 아니라 속눈썹이다. 숨기고 싶은 어떤 부끄러움도 부끄러움이 아닐 때 이것이 시로 승화할 때 속눈썹이 된다.
    머리통 여물 때면 어김없이 또다시 고개 돌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겨난다. 시의 앞에 연과 행-가름이 되어 있으니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한다. 머리통이면 무엇을 뜻하는지 말이다. 여기서 머리통은 인생의 완숙기를 뜻한다. 발끝 내려다보는 놈이 생기는 것은 내가 난 곳을 돌아보는 것을 묘사한다.
    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을 나도 매일 바라본다. 그늘 막대가 가리키는 쪽은 해 지는 쪽과 반대 방향이다. 그러니까 과거를 회상하는 자아다. 이미 걸었던 뒷일을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해마다 나는 석양으로 눈길 다진 그 녀석을 종자로 삼는다. 과거의 회상과 노을처럼 자욱하게 퍼져나가는 인생의 감회를 영글며 더욱 다지는 고체화 작업을 희망한다. 돌아보는 놈이 되자고, 굽어보는 종자가 되자고, 돌아보며 다시 빠뜨린 것 없는지 확인하며 굽어보며 소신껏 산 삶을 종자처럼 남기고픈 시인이다.
 
    下筆成文이라는 말이 있다. 출처가 삼국지다. 위나라 조조의 셋째 아들은 조식의 고사에서 유래한다. 붓을 들면 문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조식은 건안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왕찬(王粲)을 높이 평가하여, 〈왕중선뢰〉를 지어 "문장은 봄꽃과 같고, 생각은 샘처럼 솟아오른다. 하는 말마다 읊조릴 만하고, 붓을 놀리면 작품이 된다(文若春華, 思若湧泉. 發言可詠, 下筆成篇)"라고 칭송하였다. 여기서 유래하여 하필성문은 뛰어난 글재주나 그러한 재능을 가진 사람을 비유하여 고사성어로 사용한다.
    뛰어난 문장가가 되고자 한다면, 글과 붓은 늘 곁에 두는 선비가 되어야겠다.

===================================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것들의 목록’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660건 7 페이지
내가 읽은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36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2 0 11-01
35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263 0 11-01
35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9 0 11-01
35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3 0 10-31
35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5 0 10-30
35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9 0 10-30
35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4 0 10-30
35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6 0 10-29
35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26 0 10-29
35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06 0 10-28
35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3 0 10-28
34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5 0 10-28
34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11 0 10-27
34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2 0 10-27
34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7 0 10-26
34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07 0 10-25
34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2 0 10-25
34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5 0 10-24
34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8 0 10-23
34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4 0 10-22
34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1 0 10-21
33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0 0 10-20
33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7 0 10-19
33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2 0 10-19
33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8 0 10-18
33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18 0 10-17
33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9 0 10-17
33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99 0 10-15
33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6 0 10-10
33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6 0 10-08
33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0 0 10-03
32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6 0 10-03
32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8 0 10-02
32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7 0 10-01
32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583 0 09-26
32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5 0 09-25
32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2 0 09-24
32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0 0 09-22
32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0 0 09-18
32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0 0 09-18
320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9 0 09-17
319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84 0 09-13
318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185 0 09-13
317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1 0 09-12
316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84 0 09-11
315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1 0 09-10
314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0 0 09-09
313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79 0 09-08
312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6 0 09-06
311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1 0 09-06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