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 김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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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17회 작성일 17-05-22 20:22본문
오렌지 / 김상미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
그러나 두려워 마라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여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남아 있는 법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는 내 사랑의 이로
네 속에 남은 한줌의 삶
흔쾌히 베어 먹는다
鵲巢感想文
문학동네 시인선 시인 김상미 님의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읽었다. 위 詩는 이 시집에 첫 번째 시다. 시제가 ‘오렌지’다. 여기서 오렌지는 어떤 특별한 비유를 든 것이 아니라서 굳이 무엇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마음이라든가 나이라든가 감동 아니면 시 혹은 생명 등 여러 의미로 볼 수 있으므로 상징이다.
시인은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여기서 ‘든’은 조사로 어느 것이 선택되어도 차이가 없는 둘 이상의 일을 나열할 때 나타내는 보조사다. 굳이 ‘든’만 떼어서 볼 일도 아니다. ‘시든’ 이라 할 때 어떤 기세가 약해지는 동사로도 볼 수 있다. 시인은 ‘드는’이라는 동사로 스미거나 들어오거나 혹은 나가거나 좋은 뭐 그런 여러 가지 뜻으로 모호한 문장을 이루었다. 하여튼, 어떻게 읽든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다. 이는 오렌지를 설명한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오렌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독자께 맡긴 셈인데 그 무엇을 생각해도 어울리는 문장이다. 코끝을 찡 울리는 나이, 혹은 생명 아니면 마음이든 詩드는 향기며 시드는(點,萎) 향기다.
시인은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라 했다.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그 무언가를 두고 하는 얘기다. 사마천은 일찍이 구우일모九牛一毛라 했다. 인생을 하찮은 털끝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것도 소 아홉 마리 중 하나의 털이니 얼마나 가치 없는 일인가! 켰던 불은 우리의 인생을 제유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도 남아 있는 법이라 했다. 독자께 교훈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이다. 무슨 일이든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무엇을 풀든 또 무엇을 남겼든 혹은 독자가 무엇을 취했든 간에 그것은 모두 오렌지다. 그 오렌지는 바람에 날아가고 나는 내 사랑의 이로다. 이로泥路는 진창길이며 검버섯이 핀 늙은(犁老)이며 나이로 꽤 지친 것(羸老)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이로泥路가 맞겠다. 시 쓰는 일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이니까! 인생의 성찰은 시인에게는 혹독한 아픔이 베여있으니까 말이다.
네 속에 남은 한 줌의 삶 흔쾌히 베어 먹는다. 시는 사랑의 이로로 남은 별이라면 이 별빛을 보는 우리는 하나의 지표로 오래도록 남는 지침서로 자리매김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의 시집 마지막 시편 ‘꽃밭에서 쓴 편지’의 앞부분만 옮겨놓는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대가 떠난 뒤 나는 꽃들과 친해졌답니다. 그대가 좋아했던 꽃들. 그 꽃들과 사귀며 하루하루 새 꿈을 개발해내고 있답니다.
그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안개꽃이었나요? 영원한 사랑. 그 꽃으로 그대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버렸지요. 꽃밭 가득 그 꽃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요. 깊이를 잴 수 없는 꽃들의 욕망은 그 자체가 울부짓는 색깔 같아 그대 없이도 나는 그 꽃들을 숨막히게 안고 숨막히게 그 향기를 맡아요.’
시인이 남긴 시집 한 권은 안개꽃이라 해도 되겠다. 시인은 가고 없을지라도 시는 영원히 남아 우리 가슴에 남는다. 깊이를 잴 수 없는 꽃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말이다.
시인의 시가 오래도록 남아 우리들의 인생 이로에 빛으로 남는다면 그렇게 고독한 것만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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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
그러나 두려워 마라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여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여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여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에도
남아 있는 법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
나는 내 사랑의 이로
네 속에 남은 한줌의 삶
흔쾌히 베어 먹는다
鵲巢感想文
문학동네 시인선 시인 김상미 님의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를 읽었다. 위 詩는 이 시집에 첫 번째 시다. 시제가 ‘오렌지’다. 여기서 오렌지는 어떤 특별한 비유를 든 것이 아니라서 굳이 무엇을 얘기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마음이라든가 나이라든가 감동 아니면 시 혹은 생명 등 여러 의미로 볼 수 있으므로 상징이다.
시인은 시든, 시드는 오렌지를 먹는다. 여기서 ‘든’은 조사로 어느 것이 선택되어도 차이가 없는 둘 이상의 일을 나열할 때 나타내는 보조사다. 굳이 ‘든’만 떼어서 볼 일도 아니다. ‘시든’ 이라 할 때 어떤 기세가 약해지는 동사로도 볼 수 있다. 시인은 ‘드는’이라는 동사로 스미거나 들어오거나 혹은 나가거나 좋은 뭐 그런 여러 가지 뜻으로 모호한 문장을 이루었다. 하여튼, 어떻게 읽든 오렌지를 먹는다.
코끝을 찡 울리는 시든, 시드는 향기다. 이는 오렌지를 설명한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오렌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독자께 맡긴 셈인데 그 무엇을 생각해도 어울리는 문장이다. 코끝을 찡 울리는 나이, 혹은 생명 아니면 마음이든 詩드는 향기며 시드는(點,萎) 향기다.
시인은 시든, 시드는 모든 것들이 시들면서 내뿜는 마지막 사랑이라 했다. 켰던 불 끄고 가려는 안간힘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대미를 장식하는 그 무언가를 두고 하는 얘기다. 사마천은 일찍이 구우일모九牛一毛라 했다. 인생을 하찮은 털끝에 비유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것도 소 아홉 마리 중 하나의 털이니 얼마나 가치 없는 일인가! 켰던 불은 우리의 인생을 제유한 것으로 보아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은 삶이란 언제나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때도 남아 있는 법이라 했다. 독자께 교훈적인 말이기도 하지만, 시인의 삶에 대한 통찰이다. 무슨 일이든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무엇을 풀든 또 무엇을 남겼든 혹은 독자가 무엇을 취했든 간에 그것은 모두 오렌지다. 그 오렌지는 바람에 날아가고 나는 내 사랑의 이로다. 이로泥路는 진창길이며 검버섯이 핀 늙은(犁老)이며 나이로 꽤 지친 것(羸老)을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이로泥路가 맞겠다. 시 쓰는 일은 순탄하지만은 않은 것이니까! 인생의 성찰은 시인에게는 혹독한 아픔이 베여있으니까 말이다.
네 속에 남은 한 줌의 삶 흔쾌히 베어 먹는다. 시는 사랑의 이로로 남은 별이라면 이 별빛을 보는 우리는 하나의 지표로 오래도록 남는 지침서로 자리매김할 지도 모를 일이다.
시인의 시집 마지막 시편 ‘꽃밭에서 쓴 편지’의 앞부분만 옮겨놓는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대가 떠난 뒤 나는 꽃들과 친해졌답니다. 그대가 좋아했던 꽃들. 그 꽃들과 사귀며 하루하루 새 꿈을 개발해내고 있답니다.
그대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안개꽃이었나요? 영원한 사랑. 그 꽃으로 그대는 나를 유혹하고 나를 버렸지요. 꽃밭 가득 그 꽃들이 다시 피어나고 있어요. 깊이를 잴 수 없는 꽃들의 욕망은 그 자체가 울부짓는 색깔 같아 그대 없이도 나는 그 꽃들을 숨막히게 안고 숨막히게 그 향기를 맡아요.’
시인이 남긴 시집 한 권은 안개꽃이라 해도 되겠다. 시인은 가고 없을지라도 시는 영원히 남아 우리 가슴에 남는다. 깊이를 잴 수 없는 꽃들의 욕망은 무엇인가? 사랑이 아니고서는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말이다.
시인의 시가 오래도록 남아 우리들의 인생 이로에 빛으로 남는다면 그렇게 고독한 것만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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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195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0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시집 ‘우린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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