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국총 / 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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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82회 작성일 17-05-26 13:38본문
지국총 / 황인찬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걸어간다 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물 위에서 노를 젓고 어떤 사람들은 물 위를 걷는 주말이다 물 위의 사람들은 신나 보이는군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공원의 모두가 은총 아래 있다 나란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노부부도 물 위를 홀로 걷는 고독한 남자도 모두 완전하다 나는 은총 아래 연인을 기다렸다 주말 오후의 빛이 공원을 비춘다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공원에 서려 있다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연인은 물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鵲巢感想文
시제 지국총은 배에서 노를 젓고 닻을 감는 소리다. 시인 황인찬의 시에서는 배에서 노를 젓거나 닻을 감는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물을 헤저으며 이상을 캐내려는 몸짓 같은 소리로 읽힌다. 그러한 물길을 헤젓는 배경은 호수 공원의 주변이다.
호수 공원이 갖는 여러 가지 특색을 살려 시로 맺었다.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거니는 장소가 호수 공원이다. 어쩌면 군중 속의 고독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고독을 영원히 묻어버리고 싶은 시인의 욕망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걷는 것은 시의 정립과 목적성을 두고 고민하는 시적 묘사다. 어떤 이상을 그려내지 못한 목적은 아이를 잃은 엄마다. 목적 없는 이상처럼 호수 공원을 배회하는 것은 아픈 일이다.
물은 세계관이다.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목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의 안목을 넓혀가며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보이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모두 호수 공원과 같은 사회에 있다.
나란히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노부부도 어떤 목적을 두고 걷는다. 그러므로 노부부는 완전한 것이 되며 은총을 받은 부부다. 물 위를 홀로 걷는 고독한 남자도 완전한 사람이다. 시의 끝에 이르면 물속에서 나올 줄 모르는 사람에 비하면 완벽한 시가 된다.
주말에 교회를 찾으며 안식을 취하는 시인이다. 세상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너와 나를 이을 수 있는 목적과 이상은 찾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은총 아래 있지만, 물 위를 걷는 사람은 신나 보이기만 한다.
시 ‘지국총’은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걷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는 엄마다운 사회를 그리며 나가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그렸다. 호수공원과 같은 사회에 소외계층은 없는지 따듯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소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웃과 더불어 하며 먼저 인사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민가의(與民可矣)라는 말이 있다. 더불어 일하는 리더가 성공한다는 말이다. 혼자 무엇을 하려고 끙끙 앓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도 함께 고민하며 풀어보는 것은 조직도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의 첫 행보로 대통령 집무실의 하나인 ‘위민관’을 ‘여민관’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시작했다. 국민을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과 더불어 소통하는 국정 운영의 철학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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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희지의 세계’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걸어간다 나는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물 위에서 노를 젓고 어떤 사람들은 물 위를 걷는 주말이다 물 위의 사람들은 신나 보이는군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공원의 모두가 은총 아래 있다 나란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노부부도 물 위를 홀로 걷는 고독한 남자도 모두 완전하다 나는 은총 아래 연인을 기다렸다 주말 오후의 빛이 공원을 비춘다 돌이킬 수 없는 평화가 공원에 서려 있다 호수 공원의 주변을 걷고 있었다 연인은 물속에서 나올 줄을 모른다
鵲巢感想文
시제 지국총은 배에서 노를 젓고 닻을 감는 소리다. 시인 황인찬의 시에서는 배에서 노를 젓거나 닻을 감는 상황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물을 헤저으며 이상을 캐내려는 몸짓 같은 소리로 읽힌다. 그러한 물길을 헤젓는 배경은 호수 공원의 주변이다.
호수 공원이 갖는 여러 가지 특색을 살려 시로 맺었다. 시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거니는 장소가 호수 공원이다. 어쩌면 군중 속의 고독을 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고독을 영원히 묻어버리고 싶은 시인의 욕망을 그렸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걷는 것은 시의 정립과 목적성을 두고 고민하는 시적 묘사다. 어떤 이상을 그려내지 못한 목적은 아이를 잃은 엄마다. 목적 없는 이상처럼 호수 공원을 배회하는 것은 아픈 일이다.
물은 세계관이다. 현실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안목이다. 어떤 사람들은 현실의 안목을 넓혀가며 삶을 개척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은 이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하여튼, 이들은 모두 행복하게 보이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모두 호수 공원과 같은 사회에 있다.
나란히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는 노부부도 어떤 목적을 두고 걷는다. 그러므로 노부부는 완전한 것이 되며 은총을 받은 부부다. 물 위를 홀로 걷는 고독한 남자도 완전한 사람이다. 시의 끝에 이르면 물속에서 나올 줄 모르는 사람에 비하면 완벽한 시가 된다.
주말에 교회를 찾으며 안식을 취하는 시인이다. 세상은 모든 것이 완벽하지만, 너와 나를 이을 수 있는 목적과 이상은 찾기 어렵다. 우리는 모두 주님의 은총 아래 있지만, 물 위를 걷는 사람은 신나 보이기만 한다.
시 ‘지국총’은 아이를 잃은 엄마가 엄마를 잃은 아이처럼 걷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와 함께하는, 엄마는 엄마다운 사회를 그리며 나가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그렸다. 호수공원과 같은 사회에 소외계층은 없는지 따듯한 사회를 이루기 위한 소시민의 역할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이웃과 더불어 하며 먼저 인사하고 모든 일에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여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민가의(與民可矣)라는 말이 있다. 더불어 일하는 리더가 성공한다는 말이다. 혼자 무엇을 하려고 끙끙 앓는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다. 어려운 일도 함께 고민하며 풀어보는 것은 조직도 안정을 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의 첫 행보로 대통령 집무실의 하나인 ‘위민관’을 ‘여민관’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시작했다. 국민을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과 더불어 소통하는 국정 운영의 철학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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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1988년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희지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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