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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행낭 / 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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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715회 작성일 17-06-11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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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낭 / 문신




    버스정류장에 낡은 가죽가방 하나 버려져 있다 /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의자 끝에 / 잣바듬하게 / 가방은 볕을 쬐고 있다

    맨발로 흙길을 걸어온 고행이 / 해탈하듯 벗어놓고 간 무거운 짐 같기도 하고 / 지도에도 없는 행선지 버스를 기다리는 / 그냥, 사람 같기도 하다 / 가방 옆에 나란히 앉으니 / 가방은 / 이제까지 짊어지고 온 연애인 듯도 하고 / 곧 짊어지고 가야 할 끼니인 듯도 하고 / 진작 내려놓았어야 할 문장인 듯도 하고 / 그 모든 것들로 심사가 복잡한 / 쉰 살 사내 같기도 하다

    푸줏간에서 더운 속을 다 내려놓고 가죽이 되었던 가방은 / 더는 내려놓을 것 없어 / 아예, 자신을 통째 부려놓은 것 같기도 하다

    가방처럼 / 버스정류장에 앉아 해질녘까지 기다리다보면 / 또 어떤 맨발이 / 내 뒷덜미를 불끈 둘러매고 해지는 쪽으로 걸어갈 것도 같다



鵲巢感想文
    행낭(行囊)은 무엇을 담는 주머니로 가방이다. 낭(囊)은 주머니라는 뜻이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도 있다.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사람들에게 알려짐을 이르는 말로 쓴다.
    하여튼, 가방과 시인 본인을 중첩한 詩다.
    버스정류장에 낡은 가죽가방 하나 버려져 있듯 나는 버스정류장에 있다. 정류장은 어딘가 가야 할 잠시 머무는 장소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나무의자 끝이라는 이 시의 한 행도 시인의 마음을 묘사한다. 세상사 이런저런 고행 끝에 선 인생 막바지에 이른 느낌이다. 잠시 쉬어가는 버스정류장에 버려진 가죽가방과 가죽가방처럼 나 또한 나무의자 끝에 앉아 볕을 쬐고 있다.
    시 2연은 시 1연보다 더 자세하게 묘사한다. 가죽가방이라는 이 속성도 이승의 삶을 한 번 거쳤다가 온 사물이다. 이 이승의 삶은 맨발로 흙길을 걷는 고행이었으며 해탈하듯 벗어놓고 간 무거운 짐 같은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시인의 삶이 그렇다는 얘기다. 가방이 아니라 사람 같고 연애처럼 어떤 동질감 속에 마음을 푼다.
    역시 가방처럼 짊어지고 가야 할 끼니며 진작 내려놓아야 할 문장이다. 그 모든 심사가 복잡한 쉰 살 사내와 비교해도 한 치 다를 것이 없다.
    이승의 삶을 원대로 풀어놓고 사는 시인이야말로 그리스도며 싯다르타며 마호메트다. 자기 삶을 풀어놓는다는 것은 비우는 일이다. 비우는 것만큼 홀가분한 것도 없다. 이 비우는 것을 두고 노자는 성인무상심聖人無常心이라 했다. 무상심이란 사사로운 감정을 일제 배제하는 것을 말한다. 사사로운 감정은 그 어떤 일도 바르게 행할 수 없으며 처리하거나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결국, 잘못된 길을 걷게 되니 비우라는 뜻이다.
    마치 푸줏간에서 더운 속을 다 내려놓은 가죽가방처럼 더는 내려놓을 것 없는 마음의 상태를 시인은 강조한다. 일상을 사는 우리는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절대 쉬운 일인 것 같아도 사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어렵다. 하지만, 이를 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시구다.
    가방처럼 인생은 흐른다. 해는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진다는 반복적인 시구로 익히 아는 이상의 시 ‘운동’처럼 깨달음은 어쩌면 내 시간을 내동댕이침으로써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성찰은 또 누군가의 깨달음으로 뒷받침할 것이다.

    마침 가방에 사연을 엮은 좋은 시조時調가 있어 소개한다.


    아뿔사 / 민병도

    기차는 천안 지나 대전이 지척인데
    아뿔사, 서울역 화장실에 두고 온 가방,
    속 태워 안달할수록 멀어지는 거리여

    십년 벼른 반지하며 지갑도 지갑이지만
    낯선 공포에 갇힌 낭패 앞에 생각느니
    나 또한 누군가 두고 간 빈 가방이 아닌지


    분명 목적지는 있었다. 그 목적을 다 하고 내려오는 길은 막막하다. 마치 가방을 화장실에 두고 온 것처럼 어떤 목적성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가 정한 어떤 목표가 달성하였다 하더라도 그 이후의 삶은 또 막연하다. 늘 새로운 꿈의 설정과 그 행로는 누가 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언제나 삶에 도전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삶이며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을 이 두 시편으로 감상한다.
    혹시 지금 우리는 목적을 다 한 가방처럼 버려져 있지는 않은지 다시금 생각하자. 가방처럼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가방처럼 무엇을 담으려고 애써야 하며 가방처럼 누군가에게는 덜어주는 애인 같은 삶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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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신 1973년 전남 여수 출생,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곁을 주는 일’

    노자 도덕경 49장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爲心, 善者吾善之, 不善者吾亦善之,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선자오선지, 부선자오역선지,
    德善, 信者吾信之, 不信者吾亦信之,
    덕선, 신자오신지, 부신자오역신지,
    德信, 聖人在天下, 歙歙, 爲天下渾其心, 聖人皆孩之.
    덕신, 성인재천하, 흡흡, 위천하혼기심, 성인개해지.

    민병도 1953년 경북 청도 출생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집 ‘바람의 길’ 2017.05.01

    운동 / 이상

일층(一層)우에있는이층(二層)우에있는삼층(三層)우에있는옥상정원(屋上庭園)에올라서남(南)쪽을보아도아무도없고해서옥상정원(屋上庭園)밑에있는삼층(三層)밑에있는이층(二層)밑에있는일층(一層)으로내려간즉동(東)쪽에서솟아오른태양(太陽)이서(西)쪽에떨어지고동(東)쪽에에서솟아올하늘한복판에와있기때문에시계(時計)를꺼내본즉서기는했으나시간(時間)은맞는것이지만시계(時計)는나보담도젋지않으나하는것보담은나는시계(時計)보다는늙지아니하였다고아무리해도믿어지는것은필시그럴것임에틀림없는고로나는시계(時計)를내동댕이쳐버리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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