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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극 / 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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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16회 작성일 17-06-14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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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비극 / 기혁




    변별력 없는 작별 인사를 좋아해.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正ㆍ反ㆍ合
    식사 예절을 좋아해.

    ‘논다’와 ‘놀고 있다’ 사이,
    도마뱀을 자른 꼬리는 비로소
    낙관주의를 배웠어요.
    우리가 껴안았던 인형은 모두
    살찐 포유동물뿐이지만,
    동생(同生)을 강아지라 부르는 건
    그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죠.

    이제 오늘 아까 모레 글피
    바다에 투신한 강물의 사인은 심장마비,
    수면을 떠받친 명료함들이
    돌고래의 초음파를 듣게 된 이후부터.
    그러나 당신은 흔들리는 모든 걸 사랑하고,
    서로의 과녁에 대하여 한없이
    원을 그리고. 그리고
    입에 문 상처들을
    석양의 맛이라며 내뱉어요.

    당신의 보호색은
    은폐보다 정곡(正鵠)에 어울리는군요.
    천적처럼 몸을 부풀리는 우리의 낌새들,
    구멍 난 애드벌룬을 빠져나온
    시큼한 헬륨 가슴의 긴 혓바닥들.



鵲巢感想文
    시제 희비극(喜悲劇)은 희극과 비극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기도 하고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연극을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다. 변별력辨別力이란 사물의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줄 아는 능력이다. 변별력 없는 작별 인사를 좋아해. 마침표를 찍고 있지만, 마치 반어적으로 도로 물어보는 것 같이 읽힌다. 그러니까 변별력 없는 작별 인사는 좋아하지 않다는 얘기다. 詩를 이해하지 못하고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님을 강조한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의 正ㆍ反ㆍ合 이란, 윗입술은 시인을 아랫입술은 책상 위 얹어 놓은 시집이나 시인이 쓰는 글로 보면 좋을 것 같다. 여기서 시인은 헤겔의 변증법에 의한 정반합 이론을 제시한다. 사과장수를 예를 들어보자. 正(사과장수): 사과 한 개 천원입니다. 反(소비자): 사과 너무 비싸요. 500원 해 주세요. 合(사과장수): 물가가 너무 올라서 말입니다. 800원에 해드릴게요. 이렇게 하여 소비자가 사가져 가면 정반합 이론은 성립하는 것이 된다.

    ‘논다’와 ‘놀고 있다’ 사이, 도마뱀을 자른 꼬리는 비로소 낙관주의를 배웠어요. ‘논다’라는 동사는 ‘놀고 있다’는 것보다는 좀 더 프로의 세계에 가깝다. 아직 시인은 더 나가, 詩를 배우는 우리는 모두 ‘놀고 있다’가 맞겠다. 이 경계에서 변화무쌍한 도마뱀 같은 문장을 파헤치는 우리는 그 꼬리에 불과하다. 그나마 꼬리로서 그 머리를 들여다보는 것은 일말의 희망을 제공한다.

    우리가 껴안았던 인형은 모두 살찐 포유동물뿐이지만, 동생(同生)을 강아지라 부르는 건 그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죠. 여기서 인형과 살찐 포유동물은 같은 물질이다. 인형은 사람의 모형을 본뜬 장난감이다. 근데 이것은 살찐 포유동물이라 했다. 포유동물은 젖을 먹이는 동물이다. 우리는 매일 젖을 먹듯 시집을 읽는다. 더욱 살찐 젖통을 들고 매달려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詩로서 펀(fun)에 가까운 얘기를 하지만, 시인은 다른 쪽 세계를 그렸음은 분명하다. 문장은 언제나 다의적이므로 필자는 다만, 도마뱀을 자른 꼬리에 지나치지 않는다.

    바다에 투신한 강물의 사인은 심장마비, 수면을 떠받친 명료함이 돌고래의 초음파를 듣게 된 이후부터. 중략, 입에 문 상처들을 석양의 맛이라며 내뱉어요. 바다와 돌고래가 한 축이라면 투신한 강물과 수면을 떠받친 명료함은 또 한 축이다. 석양을 바라보며 그 맛을 느껴볼 수 있다면, ‘논다’의 세계에 있겠다.

    여기서 우리는 한 편의 희비극이라는 보호색을 읽었다. 이는 은폐보다는 정곡(正鵠)에 어울린다. 이 간결한 문장은 분명했지만, 마치 천적처럼 몸을 부풀리며 엉뚱한 생각과 엉뚱한 세계에 처하지는 않았는지, 또 이러한 낌새야말로 어쩌면 시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구멍 난 애드벌룬을 빠져나온 시큼한 헬륨 가스의 긴 혓바닥처럼 정신없이 분산될지언정 말이다.

    끝으로 맹자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많으면 천하가 순종하며 따른다(多助之至 天下順之)’고 했다. 지금은 놀고 있다. 놀고 있는 측면이 오히려 희망을 품고 내일을 기대하는 맛이 더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논다’는 측면은 산을 만드는 쪽이다. 없는 봉오리를 저 스스로 만들어서 홀로 올라가는 격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세계에 있든 그 봉오리에 올라가 보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孟子의 말씀처럼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누군가? 엮은 글, 한 첩씩 진정 내 것으로 만들 때 우리는 벗하며 이로써 창의적이며 늘 웃음 머금는 울림으로 내일을 품을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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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혁 1979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다. 2010년 ‘시인세계’ 신인상 201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평론) 등단
    시집 ‘모스크바예술 극장의 기립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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