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아닌 것 없다 / 복효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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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223회 작성일 17-09-02 23:34본문
꽃 아닌 것 없다 / 복효근
아무리 바빠도 시집 한 권 읽자고 다부지게 마음먹는다. 한 권의 시집이 금액이야 얼마 하겠는가마는 마음의 위로 그러니까 마음을 다스리는 데는 이것만한 것도 없지 싶다.
시인 복효근 선생의 시집은 전에도 몇 권 읽었지만, 이번 시집은 모두 단시다. 아주 짧게 쓸려고 하는 시인의 노력이 엿보이기도 하고 그렇다고 시가 의미가 없거나 읽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로 이 바쁜 생활에 짧고 간결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맛에 요즘 젊은이들 책 읽지 않는 마음마저 친절히 살피듯 하다.
결근 사유 / 복효근
목련꽃 터지는 소리에
아아,
나는 아파라
鵲巢感想文
시인의 시 ‘결근 사유’의 전문이다. 목련 꽃의 색상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시간은 목련 꽃 필 무렵일지도 모르겠다. 하얗게 침묵하는 것보다 터트리며 살아야 사는 맛이지만, 이는 아픈 일이다. 그러므로 시인이다. 밤새 자서전 같은 시는 결근 사유가 될 수 있겠다. 이 시는 시인의 마지막 시로 시집의 종시다. 그러면 서시를 들여다보자.
별똥별 / 복효근
생生과 사死를 한 줄기 빛으로 요약해버리는
어느 별의 자서전
鵲巢感想文
시인의 시 ‘별똥별’의 전문이다. 이 시의 첫 행에 한 줄기 빛에 눈이 오랫동안 머물게 한다. 어느 별이든 빛이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구태여 한 줄 쓴 것이라면 자서전이겠다. 우주에 나는 오랫동안 머물렀을지는 몰라도 마지막은 그 한 줄기 빛으로 요약한다. 이 시를 읽는 마음은 이 시집 전체를 보지 않아도 아득하게 닿는다.
꽃가지 / 복효근
‘꽃가지’ 발음하다가
때아니게 눈시울이 시큰거린다
‘꽃’과 함께 발음하면 ‘가지’는 ‘까지’가 된다
꽃가지도 예쁜데
꽃까지는 얼마나 지극한 경지냐
내 가지는
내 손과 발, 내 자지는
꽃까지 얼마나 멀었느냐
鵲巢感想文
때로는 속된 언어인 것 같아도 구수하게 읽히는 것은 앞뒤 맥을 잇는 의미에 있다. 성기를 부르는 것은 사람이 가볍게 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나, 시에서 보는 맛은 그 의미가 새롭기까지 하다. 시인은 ‘가지’에서 소리언어로 ‘까지’로 읽는다. 그 가지가 ‘까지’로 이르는 데는 지극한 경지다. 가까운 것도 이리 없을 것이지만 꽃에 이르는 데는 그 얼마나 멀었을까! 중년 부부면 대부분 느끼는 시 한 편이다. 안 그러는 부부도 많겠지만 말이다. 이제는 벽도 허물어야 할 일이지만 허문다하여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숨만 차다.
족적 / 복효근
마을 어귀 시멘트 포장길에
개 발자국 몇 개 깊숙이 찍혀 있다
개는 덜 마른 시멘트 반죽 위를
무심코 지나갔겠으나 오래도록
‘개새끼’ 소리에 귀가 가려웠겠다
선승이나 개나 발자국 함부로 남길 일 아니다
鵲巢感想文
한때 본점 지을 때 일이다. 바닥 미장을 깔끔하게 하고 하루 마감했다. 다음 날 고양이 발자국이 아주 선명하게 보였는데 그때 이후로 바닥은 고양이 발자국만 보였다. 처음은 마음의 상심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시간 지나서 보니 오히려 이것은 하나의 디자인 미를 갖추게 되었다. 물론 시는 비유다. 개 발자국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이 글(감상문)도 어쩌면 개 발자국과 다름없는 일 아닌가! 세상 욕 얻을 먹을 일은 아닌가 하면서도 이리 족적을 남긴다. 물론 이것뿐만은 아니겠다.
무명 3 / 복효근
그 낯선 소도시 서점에 가서 내가 한 일이란 내가 펴낸 시집이 있는지 물어본 것이었다 몇 군데를 가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사지도 않을 내 시집을 살 것처럼 주문을 하고 온 적이 있다 한밤중에 깨어 어둠 속에서 내가 내 볼을 만져보는 것처럼 쓸쓸한 날이 많았다
鵲巢感想文
시인의 마음은 모두 같은 마음이다. 처음 데뷔작이었던 ‘커피 향 노트’를 내고 그냥 무덤덤하게 보냈다. 그나마 시집이 아니라서 읽고 찾아오시는 독자를 참 많이 만나 뵈었다. 나의 복이었다. 그 뒤 시집이나 에세이를 또 낸 적 있지만, 그 반향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근래에 낸 ‘카페 확성기 1,2’를 내고 여기서 가까운 이-마트 내에 영풍문고에 가서 확인하기까지 했다. 구석진 자리 그 아래에 꽂혀 있는 내 책을 보며 고객의 시선에 잘 보이는 서재에다가 조심스럽게 꽂아두고 나오곤 했다. 물론 그 책은 팔렸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내 책을 좋아하는 분은 따로 있었다. 확성기를 읽고 정말 괜찮은 책이었다며 한 마디 해주신 분은 멀리 있지는 않았다. 그 한 분의 독자 때문일지는 모르겠다. 책 쓰는 맛을 느끼는 것은 말이다. 지금은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은 추호도 없다. 거저 개인의 역사도 역사라면 하루 일 마감하며 적는 일기로 세월을 묶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글이겠다는 마음 하나로 산다.
시인 복효근 선생께 다시금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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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효근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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