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둔 말 / 신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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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631회 작성일 17-09-28 22:14본문
숨겨둔 말 / 신용목
신은 비에 빗소리를 꿰매느라 여름의 더위를 다 써버렸다.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 하나를 구하기 위하여 안개가 바닥을 어슬렁거리는 아침이었다.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
그 돌에게 나는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다. 아무도 내 발자국 소리를 꺼내가지 않았다.
鵲巢感想文
어느 신문에서 읽었다. 이참에 감상한다. 시제가 ‘숨겨둔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 수는 없다. 詩 문장에서는 비와 빗소리, 실수로 떨어진 빗방울도 그렇고 안개는 비가 되지 못한 어떤 물방울의 입자라 이 모두가 말을 치환한다. 여기에 대치되는 것이 발자국이다.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는 시인의 말, 이 은유의 문장 하나가 시를 읽는데 곱씹게 한다. 역으로 돌멩이 하나가 물이 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출판문화를 보더라도 얼마나 많이 쏟아지는 언어의 샤워를 우리는 대하는가 말이다. 아침마다 읽는 신문은 어떻고 라디오에 흐르는 정치 뉴스는 또 어떤가! 숨 돌릴 수 없을 정도로 언어의 바다에 폭 빠져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우리는 어쩌면 벙어리처럼 사는 사람도 꽤 많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런 세상에서도 수많은 말을 내뱉어 건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돌처럼 비만 맞고 있는 사람도 있다.
돌이 비가 될 때까지 자기 수양이다. 한 천년이나 만년쯤 흐르면 어떤가! 비처럼 흘러간 순간의 찰나였다. 하루가 있고 그 하루를 성찰하며 다음 하루를 곱게 쓰고자 뉘우치며 사는 것이 인간이다.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고 돌처럼 굳어가는 것이 인간이지 않은가! 그러니 비처럼 맞아도 싼 것이다. 어느 날 하구에서 빗방울 하나를 주워들었건만, 발자국 소리는 먼 이승의 소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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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1974년 경남 거창 출생, 2000년 작가세계 신인상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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