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문 / 이용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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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92회 작성일 18-02-14 05:17본문
비밀의 문 / 이용헌
나무 위에도 문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한 사내가 제 몸을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하늘로 떠났다
주머니에선 하늘로 가는 기차표 대신 한 장의 쪽지가 발견되었다
쪽지에는 그가 사랑했던 이름들과 뜻 모를 숫자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몸만 남겨 두고 영혼은 사라진 문의 비밀번호가 궁금하다
날이 밝기 전 사내는 아무도 모르게 집을 나섰을 것이다
일생을 열고 닫았던 문과 문마다 그의 지문이 파문을 그렸을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택시 문을 닫을 때까지만 해도
그가 지상의 마지막 문을 닫았다는 걸 안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왜 소리마저 다 걸어 잠그고 하늘로 갔을까
날개를 잃은 새는 하늘을 날 수 없어도
몸뚱이를 잃은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법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돈과 사랑을 선택했듯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절망과 배신 앞에 생을 접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열리지 않는 미명의 문 앞에서
스르르 열 수 있는 비밀번호를 남기며 나뭇잎처럼 몸을 떨었을 것이다
말을 걸어 잠근 하늘마다 소문들이 매달려 있다
문설주 없는 문을 지나 어둠의 저쪽을 건너가면
별빛 푸른 그곳에서도 나무들은 자랄 테고
뿌리에서 둥치를 거쳐 우듬지에 이르기까지
나무엔 한 사내의 비밀이 손금처럼 환희 요약되어 있을 것이다
# 감상
- 날개를 잃은 새는 하늘을 날 수 없어도
- 몸뚱이를 잃은 사람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법
죽음에 대한 담담한 진술의 시를 읽으면서 이테리 대시인 단테의 서사시
신곡이 퍼뜩 떠오른다
단테는 반대파들의 박대와 숙청으로 국외로 추방 되어 방황 했다, 이 시절
을 모티브로, 단테의 18살 때의 연인 베아트리체(영원한 구원의 여인 상)의
주선으로 죽서만 갈 수 있는 죽음의 세계를 여행하는 형식으로 시를 썼는데
지옥편 5년 동안 34곡, 연옥편 6년 동안 33곡, 천국편 9년 동안 33곡 도합 20년
동안 100곡의 대서사시를 썼다
나로 하여금 여러 해 동안 야위게 할 정도로
하늘과 땅을 손잡게 하였던
거룩한 시가, 저들에게 싸움을 거는 이리들을
내가 원수로 여기며, 어린 양으로 잠자던
저 아름다운 양우리 밖에서 나에게 빗장을
걸던 포악함을 이겨낼 수 있는 일이 생기거든,
나는 벌써 다른 목소리와 다른 머리털을
지닌 시인으로 돌아갈 것이며, 내 영세의
우물에서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천국편>25곡 중에서
우리네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나는
어두운 숲 속에 처해 있었다.
아, 거칠고 사납던 이 숲이
어떠했노라 말하기 너무 힘겨워
생각만 하여도 몸서리쳐진다!
<지옥편> 1곡 중에서
시편 곳곳에 자기를 추방한 반대파들에대한 분노가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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