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 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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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34회 작성일 18-03-17 03:11본문
새 / 고영
미인이 다녀갔다
미인이 앉았던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눈동자가 붉은, 그래서 슬픈 꽁지를 끌고
뒷모습의 표정만을 남긴 채
공중의 한 부분을 베어내듯 그렇게 그렇게
미인이 다녀갔다
미인이 흘리고 간 뒷모습의 환영은
오래 황홀했지만,
환영이란 결국
뒤집어볼 수 없는 달의 이면, 그 너머에 누군가 꽂아놓은
허멍한 깃발 같은 것
그런데 미인들은 왜 다들 달의 그늘 속으로 사라지나
그곳엔 어느 은자(隱者)가
살고 있나
은자여, 미인을 데려가지 마오
씻을 수 없는 여운에 기대
살아 있는 날개를 꺾어 깃발을 만들지 마오
저 차디찬 공중에 펄럭이는
뒷모습의 환영이, 공중의 한 부분을 베어내듯
오래 아주 오래
각인이 되어 흐를 때까지
은자여, 미인을 데려가지 마오
# 감상
새와 미인과 은자는 어떤 공통 관념이 닿아 있는듯 한데,
그것이 무엇인지 잡힐듯 하면서도 자꾸 미끄러진다
잊을 수 없는 누구와의 추억? 아니면 화자 생애에 찍힌 火
印 같은 흔적? 애뜻하고 신기하지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
듯 더듬을 수 밖에 없다
머리 하얗도록 기다렸는데, 허리 꺾이도록 견디었는데 은자
는 끝내 슬픈 꽁지를 끄는 미인을 데려가고 말았네
- 은자여, 미인을 데려가지 마오
어느 시절이 지나간 후의 그 그리움의 환영에 이끌려 화자는
절규 하고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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