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포도주 /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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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9회 작성일 18-05-09 03:53본문
붉은 포도주 / 김진수
바이올렛 향이 난다.
내 추깃물에서,
노을이 된 내 혀에서,
지롱드 강을 짜내고 푸르른 들판을 걸러낸다. 내 피는
보르도, 백악기 공룡의 화석에서 숙성된 비명이다.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다가
바람을 흡입한 나는 바람의 알갱이.
번지는 바람의 피는 참나무 숲을 물들인다,
어두 컴컴한 호수, 바닥에는 먼 시간을 여행해 온,
나이테들이 얄팍해진 해를 끄집어내어 얇게 저민다.
발가락 사이에서 빠져나온 까마귀의 부리,
들판을 얽어맨 내 혈관을 쫀다.
어둠에 촉을 꽂는 한 줄기 빛,
기도와 만종소리를 끌고 노을을 지우듯 쓸고 간다,
'신의 물방울' 탐하고 취하고 갇힌다.
고향, 나는 서서히
햇살을 풍미와 바람의 향기, 땅이 빛깔이 되어가고
검은 체리의 맛이 묵직하다.
내가 죽은, 죽어 내가 산
피를 남기고 간다. 내 피는
날카로운 향기와 매혹적인 색깔로 너의 입술을 녹여 낼 수 있을 지라도,
가슴을 태우고 빠져나가는
촛불에 맺히는 한 방울, 그윽한 눈빛이 된다.
노을을 접어 날린다.
이 잔 저 잔 옮겨 다니는,
해의 끝자락을 문 까마귀, 숲에 내려 앉아 다시 짐을 꾸린다.
나는 여행을 멈추지 않는다
브랜딩 하지마세요.
싫어요, 나는 나예요
어둠에 갇힌 노래로 습하고 눅눅한 시간 속을 걷는다
나를 찾아서,
# 감상
화자는 2016년 <시와 세계> 신인상 당선자로서 본 시를 통해서 프랑스 특유의 에술과
낭만을 우리 풍을 곁들여 멋들어지게 전개하고 있다
시는 압축 보다는 함축성이 있어야 하고 추측 가능한 모호성과 미적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고 하는데 본 시에서 이를 느껴 볼 수 있다
나는 붉은 포도주 프랑스 지롱드강을 배경으로 태어났다
푸른 들판과 보르도, 백악기 공룡 화석에서 숙성된 한 줄기 짜릿한 비명이다
나는 참나무 숲을 물들인 바람의 자식, 어두컴컴한 호수, 까마귀 부리, 먼 시간을 여행해
온 나이테, 어둠에 촉을 꽂는 불빛등은 나의 즐거운 변신이다
밀레의 저녁종 풍경이 기도와 만종의 종소리를 이끌고 노을을 지우듯 한 줄기 빛을 꽂는다
나를 상품화 하지 마세요, 나를 그냥 찬양하세요, 나를 그냥 즐기세요, 그져 지구 곳곳을
여행하며 나를 뽑내고 싶을 뿐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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