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천 / 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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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06회 작성일 18-07-11 02:50본문
불광천 / 홍일표
조등처럼 서 있는 백로가 어둠의 한 방향만 바라본다
불 꺼진 시간의 흉벽에 구멍이 뚫리고 그 너머 오래전 지나온 자궁이
다만 그렇게 컴컴한 적막이다
목이 긴 여자가 제 몸을 조용히 몸속에 구겨 넣는다 새가 새를 지우고 한 그루 나무로 진화하는
비애 지금 어디쯤일까 당신은
얼굴을 가린 물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흘러가는
밤의 심중
검은 울음이 천변의 억새 덤불로 밝아져 꽁지 흰 새로 날아오르거나
떠나지 못하고 물속에 뿌리 내린 시린 마음이거나
소주병과 뒹구는 한 남자의 밤이 있다 죽음 가까이서
억새의 뼈를 쪼개고 나온 빛으로 밤을 통과하는 물
벤치에 앉아 백로를 바라보던 남자가 백로 안에 들어가
잠든다 가끔 퍼덕거리며 날기라도 하는지
헛손질 헛발질을 하면서
사라진 한쪽 얼굴을 지우지 못하고 매일 태어나는 달
구름을 억새로 번역한 불광천은 날아기 않는다
* 홍일표 : 1958년 충남 천안 출생, 1988년 <심상> 신인상,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매혹의 지도>외 다수, 평설집 <흘림의 풍경들> 등
# 감상
화자의 내공 깊은 시 뿐만 아니라 기개 넘치는 평설도 좋아해서 화자의 작품이라면
모두 읽고 싶어 진다
강물은 조용히 늦은 저녁 속에 흐르고 어두운 강변에는 백로 한 마리 깃 속에 머리
박고 잠자는 듯 고고히 서 있다(외발?)
어둠 속에서 자기를 지우며 한 그루 나무로 서 있는 백로의 모습에서 화자는 목이 긴
여인을 생각 해낸다
- 검은 울음이 억새 덤불로 밝아져 꽁지 흰 새로 날아 오르거나
- 떠나지 못 하고 물속에 뿌리 내린 시린 마음이거나
벤치에 앉아 백로를 바라보던 남자 술 취해 헛손질 헛발질 하면서 백로 안에 들어가 잠들고
어둠 속에 흐르는 구름이 억새 무리로 보이는 아름다운 불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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