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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각시푸른저녁나방 / 권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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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36회 작성일 18-08-18 10:48

본문

각시푸른저녁나방 / 권규미

 

 

 

 

     달을 한 마리 열대어라 믿는 나라가 있었다 모래바람 흩뿌리는 별들을 걸어와 마른 뼛조각 흔드는 나무들이 자랐다

 

     ‘푸른이란 어느 적막의 다정한 허사虛辭였다 실패한 마술사의 생생한 수염이 빗방울에 매달려 동그란 시간의 발을 생각했다 고삐에 매인 염소처럼 밤은 자꾸만 되돌아왔다

 

     그게 무슨 역이었는지 모르겠다 끝없이 갈라지는 길 위로 하염없이 물을 긷는 소녀가 있었다 찬물 한 모금,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각시푸른저녁나방이 날개를 접고 제 가슴 안쪽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있다

 

     푸나무 한 짐의 아버지처럼, 슬하의 가난을 끌고 주춤주춤 기척도 없이 안개는 차고 상한 모서리마다 수런수런 날개가 돋았다

 

     한때 나는 추운 나라의 나방이었다 때때로, 한기(寒氣)처럼 쏟아지는 저녁이 있다

 

 

 

鵲巢感想文

     이 시를 읽으니 예전에 읽은 詩人 사윤수의 청자상감매죽류문'장진주'명매병의 목독 靑磁象嵌梅竹柳文'將進酒'銘梅甁木牘’*이 생각난다. 참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다. 어떤 사물에 작가의 마음을 이입하는 방법으로 쓴 글쓰기다.

     달을 한 마리 열대어라 믿는 나라가 있었다. 달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뒤에 나오는 한 마리 열대어는 긍정적이며 희망을 내뿜는다. (-moon)은 시인에게는 완벽한 존재, 이상향, 목표 같은 것으로 많이 비유를 들곤 하지만, 어떤 변화의 상징으로 간혹 쓸 때도 있다. 보름달처럼 완벽한 것도 있겠지만 삭이나 초승달 혹은 그믐달 같은 것도 있으니까 말이다.

     열대어熱帶魚는 열대어熱帶語로 보는 것도 좋겠다. 일종의 언어유희다. 우리말은 한자어 표기가 많아 또 어쩌면 한자어로 표기해도 대충 뜻과 의미가 통할 때도 있다.

     모래바람 흩뿌리는 별들을 걸어와 마른 뼛조각 흔드는 나무들이 자랐다. 주어는 나무들이다. 복수다. 가족의 일원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모임을 제유한 것으로 보아도 좋겠다. 마른 뼛조각은 희고 굳고 생명이 없는 어떤 특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자체로 충분한 의미를 내포한다.

     모래바람 흩뿌리는 별들을 걸어왔다. 모래는 한자로 표기하면 세사細砂. 세사細砂가 세사世事로 보인다. 세상 사 모든 일을 흩뿌리는 별들을 걸어왔다. 별이 단수형이라면 별들은 그 무리를 표현한다. 제군이다.

     ‘푸른이란 어느 적막의 다정한 허사虛辭였다. 허사는 虛言 즉 거짓말이다. 詩人이 본 그 세계는 푸름이라는 곳이었다. 하지만, 적막함과 또는 다정함도 있는 것 같고, 이러한 모든 것은 거짓으로 보인다는 말이다. 사실 의 세계는 그러하다. 읽기 나름이니까,

     실패한 마술사의 생생한 수염이 빗방울에 매달려 동그란 시간의 발을 생각했다. 여기서 수염의 색상과 특징을 보자. 곧고 까맣다. 시인은 생생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실패한 마술사의 기교다. 빗방울은 완벽한 모형을 형상화한다. 어쩌면 수순함과 맑고 티 없는 세계를 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위태롭다. 빗방울이라는 특징은 곧 떨어질 것 같은 위기감을 조성한다. 동그란 시간의 별은 이상향이자 시인이 동경하는 世界觀이다.

     고삐에 매인 염소처럼 밤은 자꾸만 되돌아왔다. 자기 구속력을 제유한 문장이다. 염소의 순종적인 특징과 고삐와 밤은 구속력을 대변한다. 염소의 종류도 여러 있겠지만, 여기서는 대체로 흑염소로 보는 것이 좋겠다. 지금 우리는 단도 이도를 위한 채도만을 생각한다. 흰 돌과 까만 돌, 백목련과 당나귀 뭐 이런 것들이다.

     그게 무슨 역이었는지 모르겠다. 주객이 전도되거나 처지가 바뀌는 일이 허다한 일이므로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 詩人은 이를 줄넘기하는 아이의 발목 없는 그림자가 떠 있는 오후*라 묘사하기도 했다.

     오후라는 말도 재밌다. 오후午後가 아니라 오후吾後로 보는 것도 괜찮다. 를 생각하면 독립선언문이 생각난다. 오등吾等은 자에 아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매천야록을 쓴 조선 말기 유학자 황현이 쓴 오하기문梧下記聞도 생각난다. 필자는 이 책을 읽어 보았다. 여기서 오는 오동나무라는 표기상 뜻이지 오로 보는 것이 좋겠다. 오동나무 아래서 들은 바를 적다 뭐 이런 뜻이지만, 결국 내가 들은 바 그대로 적다다.

     끝없이 갈라지는 길 위로 하염없이 물을 긷는 소녀가 있었다. 이 문장을 보면 를 쓰는 주체는 역시 여성임을 알 수 있다. 소녀다. 끝없이 갈라지는 길, 수많은 사색을 묘사하는데 다족류로 은유하는 시인도 있으며 구체적으로 문어나 오징어, 지네, 등 여러 가지가 있겠다. 실타래처럼 엉킨 사색이다.

     찬물 한 모금,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의 전체 맥락에서 어떤 진실 하나가 드러나는 순간이다. 솔직히 가족에 대한 아픔을 얘기할 수도 있으며 모체에 대한 깨우침으로 묘사한 것일 수도 있다. 는 읽는 독자의 몫이기에 그 어떤 것을 상상해도 무관한 일이다.

     각시푸른저녁나방이 날개를 접고 제 가슴 안쪽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있다. 자아성찰이다. 날개를 접는다는 것은 순탄한 비행과는 멀어 보인다.

     푸나무 한 짐의 아버지처럼, 슬하의 가난을 끌고 주춤주춤 기척도 없이 안개는 차고 상한 모서리마다 수런수런 날개가 돋았다. 푸나무는 풀과 나무다. 아버지가 지고 가야 할 의무다. 그것을 무엇을 제유한지는 독자의 몫이겠다. 당연히 아버지니 자식과 그 무엇이겠다. 詩人은 옛 기억을 살핀다. 안개처럼 희미하지만, 가난했고 아픔이 있었다. 나방처럼 그 기억이 수런수런 날아든다.

     한때 나는 추운 나라의 나방이었다. 소싯적 아픈 기억은 추운 나라에 소재한 나의 방(나방)과 다름없다. 때때로, 한기(寒氣)처럼 쏟아지는 저녁이 있다. 뼛골이 서늘하게 이 아픔이 밀려온다.

 

     각시푸른저녁나방이라는 특유의 제목과 詩人의 아픔 기억을 시적묘사와 중첩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마음을 볼 수 있었고 문장의 묘미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 잘 감상했다.

 

     옥골설부玉骨雪膚에 아미세요蛾眉細腰를 보듯 깔끔한 시 한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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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규미 경북 경주에서 출생 2013년 월간 유심으로 등단

     * 필자의 책 카페 확성기 2224p

     **필자의 책 카페 확성기 2190p

     줄넘기하는 아이의 발목 없는 그림자가 떠 있는 오후=어떤 선을 넘으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 시에 대한 접근과 실체파악에 대한 노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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