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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포리즘이 더 필요한 시대] 접는 다는 것/ 권상진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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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29회 작성일 18-08-22 09:58

본문

*아포리즘이 더 필요한 시대

 

접는 다는 것/ 권상진

반성하는 호박/ 김성신

낮술/ 김종헌

 

 

시를 포함하여 모든 글, 또는 문장에는 아포리즘이 있다. 아포리즘은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내면적 세계관과 더불어 각성이나 성찰의 화두를 간결하게 표현한 글이라고 정의해도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포털 다음 백과사전에 등재된 아포리즘에 대한 정의를 인용해 본다.

 

삶의 교훈 등을 간결하게 표현한 글. 대개 문장이 단정적이고 내용이 체험적이며 그 표현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이다. 속담이나 격언 등과 유사하나 그것들이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작자가 분명하지 않은 데 비해 아포리즘은 작자의 고유한 창작이라는 점에서 속담과 구별된다. 광고에서도 아포리즘 표현을 응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회의 가치나 규범 혹은 인간의 덕목 등을 독특하게 제시하면서 상품을 우회적으로 소구하는 식이다. 대표적으로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만나고 싶다"(동서식품 맥심, 1989)를 들 수 있다. 「다음 백과사전」 인용

 

일종의 속담이나 격언, 명언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포리즘이라는 용어는 익히 알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의 [아포리즘 Aphorism]에서 처음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에서는 격언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시 작품에서 아포리즘이 없는 시는 없을 것이다. 화자가 체득한 삶의 한 단면 내지는 어느 부분에서 성찰하게 된 심득을 시라는 형태를 빌어 공감의 메시지를 던지는 알맹이 없는 시는 없기 때문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시 속의 아포리즘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생각과 관찰의 산물이며 단순한 감정의 이입이나 발산의 결과물은 아니라는 것이 시를 정확히 보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글제를 아포리즘이 필요한 시대라고 발제한 것은 좀 더 다양하고 더 많이 성숙한 아포리즘이 필요한 시대라는 점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싶기 때문이다. 섣부른 아포리즘은 성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많이 부족할 것이며 그 부족의 한계는 공감을 이끌어 내기 어려운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아포리즘에 관한 몇 시인의 생각을 인용해 본다.

 

시는 언어예술이기에 시인은 말을 잘 부릴 줄 알아야 한다. 또한 시는 진실을 추구해야 한다. 이른바 진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시는 새로워야 한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참신해야 한다. 그래서 기존의 시와는 다른 목소리와 모습을 지녀야 한다. 그런 것들이 또 다른 시와의 변별성이며 개성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의 모험을 해야 한다.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이 시의 독창성이며, 시의 진실이며, 시의 감동이며, 시의 진정한 모습으로 시를 시답게 하는 것이다.

「제13회 <시와 사람> 신인상 심사평 중에서/강인한」

 

요즘 읽는 시들 중 많은 것은, 비록 말장난의 시라도 말할 수 없는 것까지도, 표현이라는 개념도, 대화라는 개념도 없다. 중언부언 도대체 요령부득인, 그래서 안이하고 탄력 없는 시가 새로움이란 가면을 쓰고 난무한다.

「신경림, 시집<뿔>에 실은 '시인이라 무엇인가' 중에서」

 

시를 쓰는 것은 일종의 창조행위다....따라서 시를 구성하는 데 다른 사람들이 한번은 써먹었음직한 상식적 언술의 사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작품 중에는 산문체시를 즐겨 사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유행처럼 관례화되어 시의 긴장감과 응축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행 구분을 하지 않고 산문시 스타일로 이어가는 것은 병폐라 아니할 수 없다. 형식의 절제가 필요하다. 긴 시행은 반으로 줄이고 시행의 수도 삼분의 이로 줄여보라. 시는 서정이지 서사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하고 시상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잔가지를 쳐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있었다>라든가 <-했네>등의 과거형 어사를 남발하는 것도 시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이숭원 시인」

 

위에 인용한 주장과 아포리즘에 상관관계에 대하여 갸우뚱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시의 일부분은 정확한 아포리즘을 구현하는 방법적 문제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아포리즘은 간결하게 표현한 문장이라는 서두의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필자의 관점에서 볼 때, 문장은 문장이기 이전에 시인 자신의 철학과 사상, 이념, 각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정확히 발현될 때 문장은 문장 이상의 가치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시 한 편에 너무 많은 비유는 본질을 흐리게 하며, 시 한 편에 너무 많은 아포리즘은 시를 횡설수설하게 만든다. 요체는 시인 자신의 말에 대한 본질을 망각하거나 주제가 실종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것을 담고자 하면 너무 많다는 점이 시를 독자에게서 멀어지게 할 경향이 짙다는 점이다. 문장이 길고 복잡한 복선을 깔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담고 있는가를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생각은 깊을수록 좋고 표현은 간결할수록 좋다.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위하여 좀 더 많은 생각을 해야 하며 그 생각의 깊이를 아포리즘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단순하게 아포리즘을 격언, 명언, 잠언이라는 등식으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시인의 성찰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듯하다. 시는 대상물에 대하여 끊임없는 관찰과 해부를 통한 시인만의 독특한 해석이 필요하다. 독특한 해석은 체험적이고 경험적이며 공부에서 비롯된 것이라야 제맛을 낼 수 있다. 체험을 벗어나 너무 사변적인 옷을 덧입힌 시는 인위적인 냄새를 지울 수 없다. 인위적이라는 말은 감동과 거리가 제법 멀다. 물론 문장이라는 것 자체가 거시적으로 볼 때 인위의 한계를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대한 인위를 지우고 그 자리에 시인의 감성과 사유의 깊이를 보태야 시적 생명력을 좀 더 갖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위 인용한 이숭원 시인의 말처럼 시상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잔가지를 쳐내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며 그것은 문장 이전에 생각이나 사고에 대한 부분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그것이 좀 더 필요한 시대가 작금의 현대 시에 아포리즘이 필요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고유한 언술 방식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고유한 언술 방식은 표현적인 부분과 사유적인 부분의 두 가지로 해석 할 수 있다. 생각의 방식조차 고유한 로직이 없다면 표현적인 부분에서도 같은 형태의 실수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시는 방정식이 아니며 수학 공식이 아니다. 모두 같은 형태의 정답만을 요구하게 되면 시인인 많을 필요가 없을 것이며. 시 역시 많은 종류의 시가 필요 없을 것이다. 시인이 많은 시대다. 통계에 의하면 약 삼만여 명의 시인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자신만의 제대로 된 아포리즘을 구현하는 시인의 수는 과연 얼마나 될지?

아버지, 어머니라는 단어 한 줄에 그분들의 삶을 아프게 체험하고 고뇌하고 이해하며 토해내는 그리움의 깊이는 모두 다를 것이다. 아픔을 공감하고 아픔을 체험하고 아픔을 깊숙이 고민하고 아버지, 어머니를 쓸 때 같은 단어이지만 구조적인 시대의 아픔을. 아버지, 어머니의 아픔을 시인 자신의 아포리즘이라는 그릇에 담을 때 비로소 시는 완성된 작품이 될 것이다. 시는 깊어야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우물이어야 한다. 우물은 하늘을 비추고 있을 뿐, 하늘을 담고 있지는 않다. 시인 자신이 우물이 되어야 하늘의 깊이와 풍경을 제 가슴에 담아야 시의 진정성을 획득하게 되듯, 문장 속엔 문장 이전의 깊이를 측량하는 공부가 필요한 법이다.

 

모던 포엠 9월호 에서는 이런 관점에서 시 세편을 선정하여 같이 감상해 본다. 첫 번 째 작품은 권상진 시인의 [접는다는 것]이다.

 

접는다는 것

 

권상진

 

읽던 책을 쉬어 갈 때

페이지를 반듯하게 접는 버릇이 있다

접혀진 자국이 경계같이 선명하다

 

한 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나를 접었어야 옳았다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접었던 책장을 펴면서 생각해 본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같은 대본을 쥐고서 우리는

어째서 다른 줄거리를 가지게 되었을까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우리의 페이지 속에는 가득하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를 변용

 

책을 읽으며 중간중간 읽은 부분을 접게 마련이다. 물론 책장이 접히지 않도록 무언가를 붙이는 사람도 많지만, 대개 귀퉁이 한 부분을 접게 마련이다. 시인은 그 접는 행위에서 성찰을 하였다. 접힌 부분을 경계하고 생각했다. 그 경계는 너와 나, 우리 사이의 연속성에서 잠시 쉬어가는 부분이기도 하고, 삶이라는 정해진 종말을 향해 가는 우리 인생의 어느 부분과 부분의 경계이기도 할 것이다.

 

한 때 우리 사이를 접으려 한 적이 있다

사선처럼 짧게 만났다가 이내 멀어질 때

국경을 정하듯 감정의 계면에서 선을 그었다

골이 생긴다는 건 또 이런 것일까

 

하지만 경계가 경계에서 끝난다면 경계는 경계 자체로의 기능만 존재할 뿐 미래지향적 가치를 잃게 된다. 골이 생기고, 감정의 계면에 선을 긋고, 다만 그것에서 종료된다면 접힌 부분의 의미는 단절로 귀속되는 다만 그것뿐이다. 시인의 아포리즘은 3연에 부각된다.

 

잠시 접어두라는 말은

접어서 경계를 만드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포개지라는 말인 줄을

읽던 책을 접으면서 알았다

 

경계를 그은 것에 대한 반어적인 의미, 경계는 경계를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경계 이후를 생각하라는 선험적 교훈이다. 앞 장과 뒷장이 같이 포개지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해와 간구를 요구하는 것이며 다음 장을 위한 [쉼]이라는 것을 시인을 말하고 있다. 4연에서는 3연의 주장을 합리적인 관점에서 부연해 설명해 주고 있다.

 

아직 말하지 못한 내 뒷장을 슬쩍 보여주는 일

실마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던 거다

 

모든 경계의 선을 긋는 행위는 어쩌면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는 자기반성에 그 요체가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내 몫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내 몫이라는 말 속엔 중심이동이 나로부터라는 말이 내재하여 있으며 반성이 더해져 있다. 내 몫이 아닌 네 몫에서 원인을 찾을 때 모든 문제는 더 커지며 더 많은 문제를 반드시 만들게 되어있다. 너와 나라는 말은 우리라는 말과 같다. 우리라는 말은 좀 더 포괄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말한다. 삶이라는 말이다. 변명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변명 속에서 반성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다.

 

다시 펼친 기억들이 그때와 다르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는* 진실들이/

 

이미 읽은 너의 줄거리를 다시 들추는 일보다/

 

위 세 부분은 객관적인 개연성을 담보하고 있다. 그 부분들이 시적 아포리즘의 날을 더 세워 시를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 작품은 김성신 시인의 [반성하는 호박]이다. 시제부터 눈길을 끄는 작품이며 글의 전개 과정이 매우 흥미롭고 지향하는 시사점이 시인의 고유한 언술 행위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반성하는 호박

 

김성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심장이 파인 다음

곰곰 고아지는 일에 대해

 

이웃들이 함께 테이블 앞에서 읽히면

쉽게 끓어오르지

빛, 이자, 독촉장이 큰 통에 고아질 때

오감을 오래전 땅에 묻었을지라도

밤은 이럴 때 자라나서 캄캄해졌지

 

바람이 주는 통증에 둔감했던 이파리며

결실을 독촉 받던 노란 꽃,

될 대로 되기만 바랐던 내가

수령, 납부, 당첨 같은 말들을 자꾸 되뇌다 보면

눈물 대신 앙다문 파리한 입술이 지워질까

 

눈꺼풀이 사라져버렸어

묵묵히 갚아내야 하는 것들 끼니로 채워주면

허물 벗듯 난 다시 물이 될까

툭툭 보글거리다 밀어 올리는 동그라미

 

구절양장 九折羊腸으로 한 시절 꺾이며 내려가다

물기에 젖어 혹은 썩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기차 소리를 발뒤축으로 밟는 일이다

 

식욕이 무덤이 되는 일에 대해서

울적해질 때

나는 남은 호박 줄기들을 다시 모아 햇빛 쪽으로 간다

꽃이 핀다 모르는 척

 

 

필자는 이 작품에서 시적 전개 방식의 표준을 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시의 기본을 말할 때 정답은 없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기본은 비유와 은유가 자연스러워야 하며 비유와 은유의 흐름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성찰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생경하거나 채집된 단어의 조합이 어불성설이거나 시적 흐름에 저해가 된다면 중언부언이 되며 시적 내용이 아무리 곡진하다 해도 전달되는 경로의 문제로 인하여 독자에게 오면 전혀 다른 내용으로 이해를 하게 될 오독의 여지도 많게 된다. 김성신의 작품은 촘촘하게 엮은 그물을 연상하게 한다. 첫 연에서 마지막까지 문장의 행보가 내밀하다. 또한, 앞뒤 문장과 사고의 개연성이 합리적이다. 호박이 나고 자라서 식탁 위에서 조리되는 과정과 자신의 삶을 비교한, 단순히 비교에 그친 것이 아닌 성찰의 결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봐

심장이 파인 다음

곰곰 고아지는 일에 대해

 

첫 연부터 눈길을 잡는다. 심장이 파인 다음 곰곰 고아지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상상이라는 공감을 쉽게 확보하고 시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놓아두고 시작한다.

 

빛, 이자, 독촉장이 큰 통에 고아질 때/

 

밤은 이럴 때 자라나서 캄캄해졌지 /

 

결실을 독촉 받던 노란 꽃,/

 

자신의 삶과 대입한 고아지는 호박과의 개연성이 매우 자연스럽다. 또한, 3연의 단어 선택을 매우 탁월한 시인성을 갖게 만든다.

 

수령, 납부, 당첨 같은 말들을 자꾸 되뇌다 보면/

 

수령, 납부, 당첨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게 드러난다. 삶에 고민한 것이 아니라 시적 개연성에 고민한 흔적이라는 말이며 동시에 반성이라는 것의 반어적 표현 방식을 따르고 있다.

 

허물 벗듯 난 다시 물이 될까

툭툭 보글거리다 밀어 올리는 동그라미

 

4연에서 보여주는 시인의 감성적 메시지에 짙은 공감을 하게 된다. 의뭉하게도 시인은 5~6연에서 매우 탁월한 언어적 감각을 시적 아포리즘에 바탕을 두고 적절하게 표현해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기차 소리를 발뒤축으로 밟는 일이다/

 

식욕이 무덤이 되는 일에 대해서

울적해질 때

나는 남은 호박 줄기들을 다시 모아 햇빛 쪽으로 간다

꽃이 핀다 모르는 척/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한 듯, 결국 생의 한 부분이라는 듯, 너와 나는 별개가 아니라는 듯, 별개는 별개가 아니라는 듯, 시를 잘 응축해냈다. 기차 소리를 발뒤축으로 밟는 일은 발뒤축으로 밟아 본 사람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다. 일종의 체험적 고뇌가 문장화한 것이라는 생각이 짙게 든다. 절창이라고 하고 싶다. 시인이 부른 노래는 흉내 내기 어려운 음정과 박자를, 고유의 음색을 갖고 있다.

 

마지막 작품은 짧지만 강렬한 김종헌 시인의 [낮술]이다. 매우 짧은 순간의 한 부분에서 시인이 본 삶의 단면과 그 단면에 대한 시인의 공감이 어우러져 강한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고 있다.

 

 

낮술

 

김종헌

 

바람 부는 길가

낮술에 취해 주저앉은 사내

가로등 기둥을 부여 안고

일어나려고

다시 일어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평생 발목을 잡아 온

고된 노동과 무거운 삶이

사내의 바지가랭이에 걸려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낡고 해진 바지를 걸레 삼아

더러워진 세상을 닦고 있다

 

해설할 필요조차 없다. 읽히는 대로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문장가는 대로 문장이 말하는 대로 그대로 공감하면 된다. 반복되는 문장을 사용해 강조 한 것도 백미라고 볼 수 있다.

 

가로등 기둥을 부여 안고

일어나려고

다시 일어서려고

 

 

우리 삶이 그런 것이다. 일어나려고 다시 일어나려고 애쓰다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다. 현대사회의 단면? 아니면 전체? 아마 누구도 부인하거나 정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키만 한 그림자를 어깨에 지고 사는 것이 삶이기에.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사내는 사내이기도 하며 나이기도 하며 우리 이웃이기도 하며 우리가 사는 세상이기도 한 것이기에 시를 읽는 내내 무겁다. 아프다. 줌인 줌 아웃을 아무리 해 봐도 누구나 거기서 거기라는 것에서 자유롭지 않기에 시적 아포리즘의 내게 인을 박는 것인지도 모른다.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낡고 해진 바지를 걸레 삼아

더러워진 세상을 닦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이나 의복으로 무엇을 닦고 있을까? 세상을? 나를? 살아온 행위를? 위선과 가식으로 점철된 세상의 모든 진리라는 것을?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낮술이라는 태양의 권한 술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견뎌내며 사는 것은 아닐까?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자라는 말의 본질이 무엇일까? 깊이 생각해 보게 만드는 매우 간결하면서도 탁월한 작품이다.

 

올해는 유독 더위가 무겁고 깊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은 견디는 것이다. 누군가 술자리에서 농처럼 이야기했다. “여름은 갑니다. 반드시 갑니다.” 팔월도 간다. 아마도 겨울의 중간쯤 우린 이 여름을 지독하게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독자 제현의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 한다.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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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정석촌님의 댓글

profile_image 정석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뼈에  새겨도  고마울  행과 행을  살펴
돌머리 사이에  옮겨 심습니다

金離律선생님  처서 지난  날머리 여름날  평안하옵시길  빕니다 
감사드립니다
석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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