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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치료 poetry therapy / 울음 공식/윤준경 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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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離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22회 작성일 18-09-27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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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치료 poetry therapy

 

- 글/ 김부회 시인, 평론가

 

사고현장/ 김완수

골목/ 손석호

울음 공식/ 윤준경

 

 

치료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Therapy라고 한다. 한동안 세간에 유명한 Music Therapy, **Therapy 등등 병의 원인 중 정신적인 것에서 기인한 병증을 치료하는 수단 혹은, 방법을 이야기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Music Therapy는 예술치료의 한 분야이며 음악을 매개로 심상을 치료하는 것을 말한다. 이전에는 뮤직 테라피가 치료의 목적으로 활용되었지만 근래 들어 예방의학 분야에서도 활용되듯 그 범위는 광범위하다고 볼 수 있다. 필자의 짧은 의학 지식으로 어쩌면 만병의 근원은 육체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의 두 가지가 아닐까 싶다. 현대의학에서 아직 정복하지 못한 병들 대부분은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한다. 스트레스는 다소 어려운 말로 어떤 물체가 외부의 힘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 또는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나 조건에 있을 때 느끼는 심리적 혹은 신체적 긴장 상태를 말한다. 현대사회의 복잡하고 다변화 된 삶은 어쩌면 스트레스와의 전쟁이라고 일컬어도 될 듯하다.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우리는 부단하게 방법을 찾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을 한다. 적당한 수면과 규칙적인 운동 긍정의 힘과 같은 자정의 노력을 하는 것은 현대라는 거대한 병동에서 살아남기 위한 현대인의 자연스러운 치유 행위일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과 사고와 의념을 버리고 안정을 모색하는 것은 분명히 정신적인 안정과 더불어 신체적 긴장의 이완을 가져오게 되며 재충전의 안식이 될 것이다. Healing은 다른 말로 치유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치료를 받아 낫게 되는 것을 치유라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볼 때 육체적인 병보다 정신적인 병이 더 큰 사회문제를 발생시키고 개인에게도 스스로 몰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환부는 도려내면 될 것이나 보이지 않는 정신의 환부는 점진적이며 오랜 기간의 치료를 필요로 한다. 급격하게 늘어난 조울증 환자, 병리학적으로 충동에서 비롯된 모든 병증은 우울한 감정이 문제가 아닌 충동적인 태도가 더 큰 문제라고 한다.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내 안에서 찾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게 되거나 자위하듯 변명이나 합리화를 자신에게 하게 될 때 그런 태도가 병을 키우고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문학이라는 장르, 좀 더 좁히면 ‘시’라는 장르는 현대의 정신적인 병증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처방이라는 생각이다. 쫓기는 듯한 생활 속에서 잠시 뒤를 돌아보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목적성이나 방향성을 잃었을 때 한 편의 시를 쓰거나 읽는다는 것은 매우 훌륭한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을 휘돌아(후략)”는 익히 아는 정지용 시인의 ‘향수’라는 시다. 삶에 지쳐 방황하는 어느 가을의 벌판에서 이 시를 다시 읽어보면 가슴 한 가운데를 흐르는 고향의 실개천이 느껴질 것이며 벌판 가득 숨차게 뛰어 달리던 유년의 한때가 코끝을 적시게 될 것이다. 기억보다 오래된 그 향수에 스스로를 위안하거나 위안받거나 저물녘의 잠시를 보낸다면 어쩌면 그다음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재충전의 동기가 될지도 모른다.

 

시는 힐링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자신에게 숨어있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이며 곁에 숨어있던 주변을 발견하는 일이다.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인해 발전하고 각성하고 위안하고 더불어 살아갈 때 가장 인간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자기 반성이며 성찰이다. 세상에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눈을 뜨면 보이는 것이 세상이고 누군가의 뜬 눈앞에 나 역시 세상의 일부분이 된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자신을 공고하게 가다듬는 것은 성찰이다. 좋은 사람을 만나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슴이 따듯한 사람을 만나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가슴이 따듯해야 한다. 시가 그렇다는 말이다. 먼저 자신의 가슴을 따듯하게 만들거나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은 문학, 그중에서도 시라는 장르 속에서 영약을 찾게 되는 것 아닐까?

 

시는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모두를 힐링하는 매력이 있다. 어떤 형식의 시라도 상관이 없다. 아니 형식 자체보다는 글 속에 숨어 있는 성찰의 세계를 공감하고 인식하면서부터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이미 절반 이상의 치료과정을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강태승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 시는 자신의 살과 피, 영혼을 갈아서 만든 시원한 감로수와 같다.” 시는 종교적 관점의 ‘기도’와 같은 행위이다. 고해성사다. 힘들 때 한바탕 울고 나면 가슴이 시원해진다. 기도, 고해성사, 울음의 모든 행위는 시라는 말고 귀결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사람을 좀 더 사람답게 만드는 치료행위하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현대시에 대한 시정신의 의미를 김완하 시인의 말을 인용해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

 

시인들은 고통스러운 세계로부터도 상상력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의 정신을 펼쳐내기 위해서 ‘피를 잉크 삼아’ 쓰고 또 쓴다. 그들은 대량 복제의 규격화된 사회에서도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에 촛불을 밝히고 시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인들이 ‘백지의 공포’와 싸우는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루이스도 참된 시인이라면 그들은 자만에 떨어지지 않고, 어디까지나 보다 더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여느 사람들이라면 직업이나 일을 그만두고 여생을 즐길 나이에도 시인들은 그가 숨을 거두기까지 그의 몸에서 최후의 한 방울의 시라도 짜내고자 마냥 고된 작업을 계속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인들이 이렇게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 가면서도 시를 쓰는 이유는 결코 자신만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다. 시인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세계와의 싸움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들은 자신의 절망과 어둠을 넘어서는 용기와 결단을 통해서 이 세계의 절망이나 어둠과 대결하는 지혜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하여 시인들은 한 시대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인식하며 그것들 사이의 조화를 꾀하며 새로운 세계로 도약해 가려는 꿈과 의지를 펼쳐 보여 주는 것이다.

 

시인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부재 하는 불확정성의 시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극도로 상실되어 가는 세계 속에서도 새로운 시적 가치를 추구하며 꿈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들은 이미 상투화, 자동화, 일상화된 자아와 세계 사이에 시 정신을 주입시켜 낡고 분열된 세계를 새롭게 정립시킨다. 그들은 모순된 상황을 해체시키고, 갈고 닦은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창조적 이미지의 공간을 축조해낸다.

 

이는 혼돈과 무질서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참다운 일이면서, 그 생명이 생명답게 발휘될 수 있도록 꿈의 세계를 그려 보여주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계간지의 신인공모에 응모된 시작품을 심사한 결과 거기에는 수천 편에 달하는 작품이 응모되어 있었다. 단지 2-3 편의 시를 투고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동안의 습작을 통해 갈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걸러진 작품 10편 이상을 정성들여 묶어 보낸 20대의 젊은이들로부터 50대나 60대 장년에 걸쳐서까지 끊임없이 언어와의 고독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 예비 시인들을 대하며 시를 쓴다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거듭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들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시정신이고 시가 이 땅에서 쓰여지게 하는 힘일 터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시를 쓴다는 일은 물질적 욕구나 권력에 대한 관심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면서 더 큰 고뇌와 절망의 깊이에서 차오르는 빛으로 이 세상을 비추는 촛불 한 자루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생의 온기와 사랑의 빛을 잃지 않으려는 시정신인 것이다.

 

「현대시와 시정신의 의미/ 김완하」 일부 인용

 

인용한 김완하 시인의 말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치열하게 시를 쓰는 이유가 스스로를 치유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으며, 그 치료의 결과물들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방법으로 치유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쓴다는 것과 읽는다는 것이라는 방법의 차이일 뿐, 시는 혹은 시 정신은 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한 매우 탁월한 선택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모던포엠 10월호에서는 시 치료, 시 테라피 관점에서 세 편의 시를 선정하여 시인이 자신을 치료하는 것과 그 결과물이 다른 이를 치료하는 과정을 짚어본다. 첫 작품은 김완수 시인의 [사고 현장]이라는 작품이다. 교통사고 현장을 보고 느끼는 시인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사고 현장

 

김완수

 

누구의 소리가 쓰러진 자리일까

불볕이 점거한 도로 한가운데에

흰색 스프레이가

새된 소리 뭉텅이를 붙들고 있다

아픔의 정황인데

소리는 삐쩍 말랐다

 

전갈처럼 독 번쩍 치켜들고

횡단보도 건너는 길

익숙한 독침끼리 닿아도

우리는 스프레이에 잡힐 것 같다

 

무단 無斷의 소리여서인지

도로 위의 정황은 외면받는다

한길에서 물러난 쪽방같이

몸 하나 간신히 쪼그릴 자리

시간의 바퀴를 되돌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

 

길 다 건너 돌아보도록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사고 현장

소리는 곧 아픔을 훌훌 털고 일어나리라

스프레이가 엄습한 소리더라도

새의 첫 비행처럼 푸드덕거리며

 

길을 가다 보면 도로에 스프레이로 표시된 부분이 있다. 사람의 모습으로 혹은 오토바이의 모습으로 혹은 그림자처럼 보이는 사고 현장. 절박한 가장의 마지막 그림자이거나 미처 피어나지 못한 꽃다운 나이의 아가씨거나, 해맑은 아이의 안타까운 흔적일 수 있는 사고 현장. 하지만 당사자 이외 국외자에게는 어쩌면 그 사고 현장은 다만, 사고 현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고의 이유는 스프레이만으로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그런 일이 있다는 것 외에 횡단의 배경과 배후와 이유와 사실은 알 수 없고, 또한 알고 싶지도 않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호기심이라는 것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사고 현장. 어느 가장의 삶과 아가씨의 무한하게 남은 시간과 아이의 밝은 미소가 더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우리가 사는 것엔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고 현장이기에 사고 현장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슬프다.

 

누구의 소리가 쓰러진 자리일까

불볕이 점거한 도로 한가운데에

흰색 스프레이가

새된 소리 뭉텅이를 붙들고 있다

아픔의 정황인데

소리는 삐쩍 말랐다/

 

새된 소리를 뭉텅이를 붙들고 있는 흰색 스프레이라는 표현이 아릿하다. 그 스프레이가 가둬두고 있는 소리의 근원, 도로 한가운데 비쩍 말라가고 있는 소리의 근원은 무엇일지? 좀 더 환유하면 삶의 한 가운데를 점거하고 있는 현대사회라는 거대한 스프레이 바깥의 우리는 정작 스프레이의 안쪽에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무단 無斷의 소리여서인지

도로 위의 정황은 외면받는다

한길에서 물러난 쪽방같이

몸 하나 간신히 쪼그릴 자리

시간의 바퀴를 되돌리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 소외라는 단어를 겹겹이 두르고 사는 사람들, ‘오타쿠’의 문을 걸어 잠그고 사는 사람들, 도로 위의 정황은 내 일이 아닌 듯 내 일인데, 시간의 바퀴를 아무리 돌려도 일어나지 못하는 스프레이 속 어떤 그림자는 거대한 스프레이 속 우리와 겹쳐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우리는 모두 스프레이 바깥의 스프레이 속에 살면서 스프레이 속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시인이 의도했든 안 했든 현대사회의 도로는 아래의 표현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길 다 건너 돌아보도록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사고 현장

소리는 곧 아픔을 훌훌 털고 일어나리라

 

우리는 길을 건너는 사람이며 동시에 스프레이 속의 사람이며 가두어진 소리는 좀 더 가두어져 인식하지 못하는 ‘가두어짐’ 속의 우리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현대사회는 사고라는 개연성을 매 순간 안고 사는 우리들의 사회라는 생각이 드는 좋은 작품이다.

 

두 번째 작품은 손석호 시인의 [골목]이다. 삶의 어느 한순간을 골목에 빗대 자신의 마음 상태를 관조하며 성찰하는 작품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숨겨둔 감정에 가끔은 슬플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골목

 

손석호

 

사는 게 골목이라면

빨리 걸어 들어가도,

아주 천천히 돌아 나올 수도 있겠지

힘들 때 한 번쯤 열린 대문 앞에 걸터앉아 쉴 수도 있고

어디쯤일까

물어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기웃거렸던 마흔 즈음의 낯선 골목들

걸음마다 삐걱거리며

너라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라는 골목에서 늘 너만 빠져나갔다

힘겹게 구부러질 때마다

바람도 돌아나가는 막다른 어느 모퉁이

목구멍에 걸린 무언가를 억지로 뱉어내기 위해

선 채로 컥컥거렸다

후미진 골목 같은 나를 삐뚤빼뚤 돌아 나오며

어느 골목이든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 있고

그곳에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고장 난 가로등이 있는 이유를

고장 난 가로등의 꺼진 시간이 더 긴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시는 매우 담백한 어조로 어느 순간을 이야기한다. 어느 순간은 과거의 어느 한때이기도 하며 동시에 현재의 어느 한때가 되기도 한다. 되돌아보면 과거는 어쩌면 현재의 또 다른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거가 정말 과거일까? 라는 개념을 대입해서 시를 읽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다.

 

사는 게 골목이라면/

아주 천천히 돌아 나올 수도 있겠지/

어디쯤일까

물어볼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었지

 

삶이 골목이라면 입구로 들어갈 땐 매우 빠른 걸음으로 들어갔더라도 천천히 돌아 나올 수도 있을 텐데, 방향을 잃어버리면 여기가 어디쯤인지 물어볼 수 있을 텐데 아쉽게도 삶은 골목이 아니다. 직진이며 막다른 곳이다. 가끔 쉰다거나 가끔 천천히 간다거나 가끔 멈춰 하늘을 본다거나 하면 좋을 텐데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로 인해 혹은 계속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직진하거나 하게 되는 이상한 골목이다. 삶은

 

걷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기웃거렸던 마흔 즈음의 낯선 골목들

걸음마다 삐걱거리며

너라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나라는 골목에서 늘 너만 빠져나갔다

 

마흔 즈음의 낯선 골목/ 너라는 골목/ 너만 빠져나갔다

공감이 가는 표현이며 동시에 이즈음의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즈음의 ‘우리’와 같다는 생각이다. ‘너’와 ‘나’를 ‘나’로 치환하면 선명해진다. 실존, 실체, 존재감, 관계 속의 나와 관계 밖의 나, 모두를 합체하면 골목의 어디쯤에서 어디쯤일까를 묻지 못하고 직진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어쩌면 우리는 ‘나’로 태어나 누구의 무엇이라는 것으로 삶을 마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친구, 누구의 며느리, 누구의 유권자, 누구의 애청자로 살게 되는 삶이라는 골목은 길 듯 짧은 골목이며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막다른 지점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곳이다.

 

어느 골목이든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이 있고

그곳에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는 고장 난 가로등이 있는 이유를

고장 난 가로등의 꺼진 시간이 더 긴 이유를,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시인이 느껴진다. 시인의 들키고 싶지 않은 눈물과 가로등을 바라보는 서글픈 눈매와 어느 막다른 모퉁이에서 컥컥거리는 그 욕지기, 우리는 늘 후미진 곳에서 가서야 그곳이 후미진 곳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후미진 나도 같이 발견하게 된다. 고장 난 가로등의 꺼진 시간이 더 긴 이유를 알게 될 때쯤 더 이상 골목은 들어선 날의 첫 기억을 필요로 하지 않고 돌아 나갈 이유도 필요로 하지 않고, 어디쯤인가 물어볼 필요도 없게 된다. 왜? 안타깝게도 내가 멈춘 곳은 후미진, 그것도 아주 후미져 가로등조차 꺼진 골목의 종점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샛길도 옆길도 다른 골목도 돌아 돌아 돌다 보면 모두 종착점은 이곳이라는 것을 지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가 참 아릿하다.

 

마지막 작품은 윤준경 시인의 [울음 공식]이다. 공식이라는 말은 연산의 방법, 수학적 정리 등을 문자와 기호를 써서 일반화하여 나타낸 식을 말한다. 쉬운 말로 틀에 박힌 일정한 형식이다. 울음에 어떤 공식이 있을까? 울게 되기까지 1에 3을 더하고 2를 빼야 한다면 그것은 울음이 아닐 것이다. 우는 연기가 될 것이다. 어쩌면 윤준경 시인의 울음 공식은 철저하게 공식을 배제한 울음의 방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울음 공식

 

윤준경

 

마흔 즈음이었다

무서운 나이였다

밤이 슬펐고

질금질금 눈물이 샜다

눈물이 많은 걸 해결해 주었다

 

여러 번 해가 바뀌었다

일흔 즈음이었다

무서울 게 없는 나이였지만 그런 내가 무서웠다

인생의 여러 철을 넘기고도 좀체 철들지 않았다

울어야 할 일은 갈수록 넘쳤지만

울어도 되는 나이가 아니었다

 

 

앞서 언급한 손석호 시인의 시 [골목]의 상황적 배경도 마흔 즈음이었다. 윤준경 시인의 시 역시 마흔 즈음으로 시작한다. 마흔이라는 것. 어쩌면 마흔이라는 나이는 시 태라피를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겹친다. 묘한 일치다. 마치 양희은 가수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가 지금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마흔이라는 스프레이 밖에서 마흔이라는 스프레이 속을 물끄러미 혹은 길 다 건너도록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사고 현장을 보고 있는 것처럼.

 

윤준경 시인의 마흔은 무서웠다. 생의 절반쯤 살아보면 모든 것이 무서울지도 모른다. 지나간 시간이 무섭고 다가왔다 곧 사라질 시간이 무섭다. 마치 팔십의 나이가 아무것도 무섭지 않는 것처럼 마흔의 시간은 두려울 수 있는 시간이다.

 

눈물이 많은 걸 해결해 주었다

 

 

곰곰 생각해 본다. 눈물은 많은 것을 해결했지만,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눈물에 초점을 맞추면 많은 것을 해결했지만 동시에 더 많은 눈물을 예비하기 위한 눈물이라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더 많은 눈물은 어쩌면 눈에서 흐르지 않을 것 같다. 보이는 눈물을 많이 흘릴수록 삶의 후반부로 갈수록 더 많이 흐르는 눈물은 가슴 속에서만 흐를 것 같다.

 

여러 번 해가 바뀌었다

일흔 즈음이었다

무서울 게 없는 나이였지만 그런 내가 무서웠다

인생의 여러 철을 넘기고도 좀체 철들지 않았다

울어야 할 일은 갈수록 넘쳤지만

울어도 되는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 내가 무서웠다/ 인생의 여러 철을 넘기고도 좀체 철들지 않는/

울어도 되는 나이가 아니었다/

윤준경 시인의 시는 가슴으로 피로 영혼으로 쓴 시라는 생각이 든다. 과민한 수사나 좀 더 예민한 펜이나 날카롭게 벼린 ‘전위’의 문장이 아니다. 시를 읽으며 노사연이라는 가수의 노랫말 중 이런 부분이 번쩍 떠올랐다. “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입니다.” 시가 그렇다는 말이다. 가슴 속에 가득 차 있던 무언가를 익히고 익혀 세상에 내어놓을 때 그 맛은 농익은 간장 맛이 난다. 하늘을 온몸에 포용하고 있는 투명한 검은 색, 투명한 검은 색은 문법적인 공식에 맞지 않을 것 같다. 어법에 안 맞는 문장일 것 같다. 하지만 울음에 공식이 없듯 가슴으로 쓴 시는 공식이 없다. 감동만 있다. 꿰맞춰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해석상의 오류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 마흔을 돌아보게 한다. 다가올 칠십을 조망하게 된다. 준비하게 된다. 그 허허로움과 상실의 시대를 이겨 낼 힘을 비축하게 한다. 그것이 poetry therapy, 시 치료의 주사 처방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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