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浩初上人同看山寄京華親故 / 柳宗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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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40회 작성일 18-10-30 01:12본문
與浩初上人同看山寄京華親故 / 柳宗元
海畔尖山似劍鋩 秋來處處割愁腸
若爲化得身千億 散上峰頭望故鄕
해반첨산사검망 추래처처할수장
약위화득신천억 산상봉두망고향
바닷가 뾰족한 산들이 칼끝만 같아
가을은 오고 곳곳 근심만 어리는데
이 몸이 천개나 억 개쯤으로 변한다면
산마다 봉우리에 흩어져 고향 바라보겠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왕조시대다. 詩를 보아도 대충 어떠한 상태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바닷가에서 검망劍鋩과 같은 첨산尖山을 보는 시인, 가을은 이미 와서 그 정취가 곳곳 안 스미는 곳이 없고 갈기갈기 찢는 그 마음을 若爲化得身千億이라 했으니 소원이라면 고향 한 번 보고 죽는 것이다.
詩人 유종원의 詩는 전에 詩 江雪로 한 번 만난 적 있다. 중국 당나라 때 사람이라 이에 대한 정보가 미천해서 자세히는 적을 순 없지만, 그의 詩가 어느 전문가의 손에 다듬어진 것이 있어 아래에 덧붙인다.
당(唐) 덕종(德宗) 정원(贞元) 21년(805) 유종원(773-819)은 정치개혁을 단행하고자 했던 한림학사 왕숙문(王叔文) 일파의 영정혁신(永貞革新)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영주사마(永州司馬)로 폄적 되었다.
거의 10년 만에 면책을 받고 서울로 돌아오던 중, 다시 유주자사(柳州, 지금의 광서장족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유주시(柳州市))로 보내져 그곳에서 객사하였다. 유주에서 지내는 동안 호초(浩初) 스님이 찾아와 그 회환을 함께 한 詩이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은 더 이상 한여름의 것이 아니었다. 더위를 달래주던 바닷가, 시원한 녹음을 전해주던 그 산은 별안간 시퍼런 칼날을 들이대는 듯하고, 시야에 들어오는 온갖 추색(秋色)은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서글픔을 안겨주었다. 돌아갈 날이 희박한 현실 앞에 詩人은 애통한 心情으로 고향을 떠올린다.
이 몸을 조각조각 쪼갤 수만 있다면 당장 뭇 봉우리로 올라가 어딘가 있을 고향땅이라도 실컷 바라보고 싶다고 하소연한다. 제1구에서부터 제4구까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보다 더 간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호초상인浩初上人은 담주(潭州, 지금의 호북성湖南省 장사長沙) 사람. 上人은 스님에 대한 존칭. 임하(臨賀)에서 유주(柳州)까지 유종원을 찾아왔었다고 한다.
京華경화는 서울. 여기서는 장안(長安)을 가리킨다.
親故친고는 오랜 친구다. 海畔해반은 바닷가. 劍芒검망은 칼날. ‘劍鋩’과 통한다.
변죽만 두드리는
가난한 나의 섹스는
목쉰 곡비哭婢의 메마른 울음소리
어제도
점자를 읽듯
흰 살결만 더듬었다
-허열웅 ‘짧은 시’ 全文-
변죽은 그릇이나 세간, 과녁 따위의 가장자리다. 변두리의 방언으로도 쓰이기도 한다. 곡비哭婢는 양반의 장례 때 주인을 대신하여 곡하던 계집종이다. 詩가 참 재밌다.
시 공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반성케 한다. 경기는 좋지 않아도 뚜렷한 타개책은 있어야 한다는 동인의 말씀이 있었다. 온 나라가 불경기인데 특출 난 재능이라고는 있을까! 매일 흰 살결만 더듬다가 곡비의 울음소리도 내지 못했다.
모두 큰일이다.
허열웅의 ‘짧은 시’는 시조다. 초장, 중장, 종장의 형태만 좀 다르다. 그 음보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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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홍혜진의 '漢詩 산책'- 與浩初上人同看山寄京華親故
200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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