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루 /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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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湖巖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22회 작성일 18-11-01 01:39본문
연루 / 안희연
당신에게는 사슴 한 마리가 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사슴은 오래전 당신을 찾아왔고 당신 곁에서 죽을 것이다
사슴은 색이 없고 무게가 없지만 자주 붉은 사슴이 되어
며칠씩 사라졌다 돌아올 때가 많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 같다
오늘도 사슴은 홀로 잡목 숲을 떠돌고 있었다 숲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고
이윽고 사슴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먼 곳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쇠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그곳에 무언가 있다는 듯이
처음이 아니라는 듯이
그 순간 당신은 비에 대한 낯선 기억 하나를 갖게 된다
소매엔 까닭 모를 흙이 묻어 있다
덫에 걸린 사슴의 발이 검게 썩어 들어갈 때
당신은 수없이 지나다니던 방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붉을 대로 붉어진 사슴이 발을 절뚝이며 당신에게로 돌아올 때
당신은 수백 개의 신발이 강물에 떠내려 오는 꿈을 꾼다
당신이 잠에서 깨어날 때 사슴은 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아침 햇빛을 보면 자주 무릎이 꺾인다 자꾸만 무언가를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 안희연 : 1986년 경기도 성남 출생, 2012년 <창작과 비평> 등단,
시집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등
< 감 상 >
당신과 사슴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운명적으로 연루되어 있다
화자의 사유 폭이 넓고 깊기 때문에 독자로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애정, 고난, 순정등 일상 생활의 어떤 정념을 함께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의미의 다양화는 독자의 호기심을 부추켜 깊은 사색에 빠지게 하는데,
- 덫에 걸린 사슴의 발이 검게 썩어 들어갈 때
- 당신은 수없이 지나다니던 방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 붉을 대로 붉어진 사슴이 발을 절뚝이며 당신에게로 돌아올 때
- 당신은 수백 개의 신발이 강물에 떠내려 오는 꿈을 꾼다
운명적 연루는 동질적 고난으로서 당신은 알지 못하지만 한생 동안 함께
하리라
시인들이 고안해서 생산해 내는 수수께끼 같은 네러티브를 호기심스럽게
읽어 본는다는 것은 독자로써 줄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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