菊花煎국화전 / 海東竹枝해동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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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16회 작성일 18-11-08 23:22본문
菊花煎국화전 / 海東竹枝해동죽지
采采東籬菊有芳 招呼詞客侑壺觴
腹中不蓄腥臊氣 能吸秋來一種香
채채동리국유방 초호사객유호상
복중불축성조기 능흡추래일종향
동쪽 울타리에 향기 머금은 국화 따다가
글 친구 불러서 술대접도 한다네
배 속에 비린내는 남겨두지 않고
능히 가을바람 마시며 함께 국화 향 즐기네
시제 국화전菊花煎은 국화 하나 놓고 마음 졸이며 읊은 시다. 작자가 최영년崔永年(1856∼1935)이다. 그가 쓴 해동죽지海東竹枝라는 책에 이 시가 있다. 최영년은 조선 마지막 서리 출신의 가난한 시인이었다. 삼현금을 잘 탄 풍류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선인들이 지은 가을에 관한 시를 읽으면 유독 국화가 많다. 카페를 운영하는 필자도 아내가 심은 국화가 있어 무심하게 보다가도 시를 읽으면 한 번씩 그 향을 맡아보기도 한다. 향이 참 그윽하다. 꽃향기에 심취할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 하지만, 마치 가을 서리에 맞은 배추처럼 요즘 원기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고 보면, 옛사람은 향유할 문화적인 측면은 지금보다 복잡하지 않으니, 유독 국화라도 참 귀하게 여겼다. 그러나 선인이 남긴 이 국화에 나는 잠시 또 취하고 있으니 굳이 꽃이라도 아니라도 심취할 여유를 가졌다.
이제는 짤막한 시 한 줄에 이 여유를 가지는 것도 잠시나마 갖는 행복이다.
아득한 중심 / 서숙희
과녁에 박힌 화살을 뽑으며 알았네
섬뜩하도록 탱탱한 손 끝에 닿는 전율은
제 몸에 깊숙이 꽂은
뜨거운 비명임을
중심에 닿는다는 건
스스로를 관통하여
운명의 입속을 향해
자신을 쏘는 것
아, 그대
먼 과녁이여
내 아득한 중심이여
한 순간의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실로 과녁처럼 닿은 마음도 그 과녁에 와서 박힌 화살도 동기가 있고 과정이 있다. 제 몸에 깊숙이 꽂은 것이라면 영원히 잊히지 않는 일이겠다. 그 중심에 닿은 것은 나를 뚫고 지나간 것이다. 운명이다. 이 운명 같은 일은 비단 사실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사실을 바탕으로 詩 쓰는 것은 그 운명을 다시 입속을 향해 자신을 한 번 더 쏘는 일이다. 먼 과녁에 내 아득한 중심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일이다. 그러니 두개골에 깃대를 꽂듯 저릿한 일이거나 고통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詩는,
국화 같은 글맵시가 있다. 사람은 그 모양만 각기 다른 것이 아니라 그가 품은 향도 각기 달라서 마치 국화 같은 어느 한 사람의 글귀에 매료되는 사람이 있다.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것은 참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 같다. 그러니 솔직하지 않다면 글은 그 맵시를 잃는다. 삶이 한 단면이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그 어떤 문학적인 글쓰기는 또 다른 한 면이다. 거울 같은 하루였지만 거울을 내려놓으면 한 면도 다른 한 면도 수면은 잘 취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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