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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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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저녁의 기원 / 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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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00회 작성일 18-12-04 00:0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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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붉은 군조(群鳥)의 물가로 갔지만 비점(沸點)이 없는 바다였다. 자기 방이 있는 큰 집을 모래 위에 그려보고 아이들의 영혼은 그 집의 흉한 창이 파도에 지워지길 기다린다. 울지 마, 니들은 공평하게 이름을 나눠 가졌고 생일 달력 위엔 천박한 평등. 아이들은 자랐고 문간에 서서 사라진 사물들에게 냉정하게 하나씩 이름 붙였다.

 

     해식애(海蝕崖)와 백사장이 유람선의 승객들에게서 푼돈을 빼앗을 동안, 붉은 덩굴풀은 벽돌벽과 악연을 하나씩 주고받았다. 초년운은 나빴고 말년운은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 씌어지지 않은 말이 씌어진 말을 기다리는 시간.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뾰족한 집게발을 꺼내던 구름의 모래구멍만 생각했다.

 

     밤의 포자를 날리며 가로등은 낡은 지도에서 돌아온다. 실어증 걸린 청년의 철물점을 지나, 트레일러 안에서 창밖을 흘겨보던 소녀를 따라, 지도엔 등고선이 한 개도 없었다. 흰 활엽 교목이 그늘 아래 목각인형처럼 걸어 나온다. 둥지와 무덤이 함께 생기던 바다 끝에 앉아 나는 부활절 달걀을 아끼며 까먹었다.

 

                                                                                                         -저녁의 기원, 조연호 詩 全文-

 

     鵲巢感想文

     詩人 조연호 시집 저녁의 기원’을 예전에 읽은 적 있다. 아침에 문학*네에서 낸 시집 모 시인의 글을 읽다가 실망한 나머지 아예 덮어버리고 그래도 명망 있는 시인의 글 한 편 읽는 게 낫겠다 싶어 이 를 선택한다.

     시제가 저녁의 기원이다. 기원祈願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길 빈다는 뜻이다. 의 맨 끝 문장을 보면 둥지와 무덤이 함께 생기던 바다 끝에 앉아 나는 부활절 달걀을 아끼며 까먹었다고 진술했다. 여기서 둥지는 작가의 것이며 무덤은 작가가 바라본 희망적 모델이다. 그러면 둥지도 생겼고 무덤이 생겼다는 말은 의 탄생誕生의 인식認識을 함께 어우러진 것을 말한다. 시인들은 시를 쓰기 위해 많은 시인의 글을 보지만, 진정 그 시를 얼마나 이해했는가가 문제다. 이해를 가졌다면 그것은 그 무덤의 주인을 안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면 이 에서 하나의 완벽한 세계를 詩人은 어떻게 비유했는지 그 문장 하나하나씩을 나열해 본다. 붉은 군조(群鳥)의 물가, 자기 방이 있는 큰 집, 해식애(海蝕崖), 붉은 덩굴 풀, 초년 운, 씌어지지 않은 말, 구름의 모래구멍, 밤의 포자를 날리며 가로등은 낡은 지도에서 돌아온다, 실어증 걸린 청년의 철물점, 지도와 등고선, 목각인형은 모두 를 제유한 시어이자 시구다.

     물론 우리는 를 생각하지만, 詩人은 이 를 무엇으로 비유했는지는 우리는 알 봐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시만 생각하면 되는 일이다. 저녁의 기원이니 역시 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여실히 볼 수 있는 수작이다.

     시문에서 보면 고정적이고 불변적일 것 같은 도 작가가 어느 시점에서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그 교감의 정도를 이 는 잘 표현한 것도 사실이다. 가령, 첫 단락을 보면, 붉은 군조(群鳥)의 물가로 갔지만 비점(沸點)이 없는 바다였다고 했다. 붉은 군조 즉 한 무리의 붉은 새를 말하며 이것은 문장 전체를 제유한 것이다. 를 보겠다고 처음 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았다. 그러나 비점 없는 바다였다. 비점은 끓는점으로 에 대한 열정이겠다. 열정이 없었다는 말이다. 근데, 첫 문장과 다음 문장을 비교하면 무언가 끈기는 것 같아도 를 생각하면 또 자연스럽다. 자기 방이 있는 큰 집을 모래 위에 그려보고 아이들의 영혼은 그 집의 흉한 창이 파도에 지워지길 기다린다고 했다. 자기 방이 있는 큰 집은 곧 의 세계다. 모래 위에 그려보는 행위의 주체는 작가며 시를 인식하기 위한 하나의 몽타주를 그려나간다는 말이다. 아이들의 영혼은 아직 미성숙한 사고를 비유하며 그 집의 흉한 창은 아직 미완성 단계인 둥지를 아니면 고정불변인 인식의 초년 운쯤 보는 것도 괜찮다. 는 거울이니까. 이러한 시의 불확실성한 윤곽을 말끔히 지워내기 위한 시적 묘사로 파도에 지워지길 기다린다고 시인은 표현했다. 두꺼운 바위 같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시문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기분은 시인만이 누리는 향유다. 이러한 표현은 시문 곳곳 볼 수 있다. 사실, 한 문장의 사건은 커트 즉 잘라서 오려 붙여 놓은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영 없지는 않지만, 시선을 돌림으로써 시의 본질을 숨기는 거라 재미를 더한다. 마치,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한 노선만 달리는 것보다 여러 노선을 달리면 졸음마저 잊게 되는 그런 효과를 발휘한 것처럼 말이다.

     두 번째 단락에 보면 해식애(海蝕崖)와 백사장이 유람선의 승객들에게서 푼돈을 빼앗을 동안, 이라는 표현도 너무 웃긴 문장이다. 해식애는 해식과 풍화 작용에 의하여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기로 어느 정도의 시 해체를 묘사한 것이다. 백사장(白紙)은 해식애와 아주 혼연히 잘 맞는 시어다. 백사장이 아니라 백목련이나 백혈병, 백비탕, 백 그 무엇들 물론 해식애와 버금가는 다른 무엇과 조합이 맞아야 이러한 시어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유람선은 바다에 뜬 배라는 사실, 파도에 울렁거릴 정도로 흔드는 작가의 심적 변화, 어디론가 떠날 수 있는 배라는 사실, 이것은 시인의 마음 상태를 암묵적으로 그렸으며, 그러면 그 승객들은 누굴까? 미지의 시 예찬론자 아니면 시를 좋아하는 동인으로 표현하는 게 좋겠다. 물론 그 푼돈을 빼앗는 행위는 상상을 그리는 묘사며 마치 어느 곡예단의 예술을 보고 푼돈을 던지는 것은 그 예술의 극치를 이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듯 일종의 마음의 교류다.

     시 문장 하나하나 뜯으면서 시인과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여기서 그만 줄여야겠다. 지금껏 쓴 것도 시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를 가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 오늘 일이 벌써 마감이라 저쪽에서 손을 자꾸 흔든다.

     잘 감상했다.

 

     鵲巢

     물안개가 자욱한 저녁의 가장자리에서 불 겨진 카페를 보았다. 어두웠지만 파라솔이 펼쳐져 있었고 벽 등이 켜져 있었다. 인도인 같기도 하고 아라비아인 같은 한 무리의 남자들이 거리를 지나간다. 무엇이 들었는지 검은 봉지를 하나씩 들면서 지나갔다. 아직도 가로등은 켜져 있었고 별빛은 보이지 않았다.

     낙엽이 쓸려나간 보도블록 위에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에 누가 씹다만 껌까지 있었어, 이쑤시개로 쓸어놓은 가래떡을 찍듯 얼굴이 자꾸 상기되었다. 밤은 너무 깜깜해서 새 한 마리 볼 수 없었다. 아침이면 새똥으로 뒤범벅된 차창과 그것도 모르고 밀어버리는 와이퍼에 땀띠가 돋는다.

     악몽의 가장 꼭대기에서 고백을 벗기는 일은 갓 구워 낸 빵을 보듯 신선하다. 어라 환풍기가 멈췄다. 자꾸 저쪽에서 손을 흔든다. 내일은 분명 동풍이 일 것이다. 장롱처럼 태양은 떠오르고 얼룩 없는 바닥과 낮은 계단을 상상해 본다.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흰 운동화의 끈을 단디 맸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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