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소리 / 송승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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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52회 작성일 18-12-17 20:55본문
⋁.
돌 위에 앉아 돌을 던지면 흔들리는 수면 아래로 감감 가라앉는 돌이 있었고, 속 모를 깊이로부터 솟아오르는 불가사리도 있었다 그건 시체였고, 한번 떠오른 시체는 수면을 흔들며 떠오르다 가라앉다 자맥질만 되풀이했다 감감 가라앉는 돌 위로 숙연히 일그러지는 얼굴도 있었고, 얼굴 뒤로 불처럼 번지는 그늘도 있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싶었다
-종소리, 송승언 詩 全文-
鵲巢感想文
詩人들 중 돌을 소재로 글 써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번쯤은 詩의 소재로 이 돌을 다루고 싶을 정도로 돌은 그 특성이 각별하다. 우선 단단하다. 돌만큼 굳은 물질도 잘 없다. 모래보다는 좀 크고 바위보다는 또 작으면서 순우리말로 유순한 음절을 가졌다.
옛사람은 책이 나기 전에는 기억하고 싶은 그 어떤 것들은 모두 돌에다가 새겼다. 광개토대왕릉비도 아주 큰 돌에다가 그 사면 전면을 할애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새겼다. 아버지 업적을 기리기 위해 천팔백 두 자에 이르는 방대한 글이다. 그때가 414년이었다.
필자 또한 돌을 소재로 삼아 글을 몇 번 쓴 적도 있다. 돌은 거칠지만 완벽한 내면을 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소재다. 아마 인류가 살아 있고 그 마음을 표현하고 새긴다면 앞으로도 돌은 끊임없이 생산될 거로 본다.
아무튼, 시재는 종소리다. 이는 마음을 울리는 소리로 종은 하나의 제유다. 돌 위에 앉아 돌을 던지는 것 즉 마음에 앉아 그 마음을 후벼 파는 일은 돌을 던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니까 돌을 보지 않으면 돌이 될 수 없다. 그 돌을 곰곰이 생각하면 파장이 인다. 그것은 시인이 앉은 그 돌과는 또 다른 사회, 문화, 경제, 정치 등 여러 가지 경험으로 묻어나는 사색의 일변도다. 이러한 사색은 시인만의 가진 고유한 성질이라서 이것과 대중성을 교묘히 중첩한다면 좋은 시, 즉 돌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의 결과를 시인은 시체詩體라고 했으며 이 시체는 시인의 마음을 흔들며 검증하기까지 한다. 그러니까 자맥질이다. 역시 돌은 무게에 있다. 가라앉는다. 가라앉는 그 고유의 특성과 결국 바닥(지면)에 닿은 돌 그 돌을 다시 또 보며 붉어지는 얼굴이 있고 얼굴 뒤로 불처럼 번지는 그늘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이지 詩人이면 이러한 반복된 과정을 거치다가도 글에 대한 회의감도 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맑은 물 한 잔이 얼마나 그리운지 잘 대변한 詩라 하겠다.
鵲巢의 辯
밥 먹어
식탁에 의자를 당겨줘 배고프지
보면 더 배고플 거야 자리에 앉아 오랫동안 식탁을 보면 차린 건 없어도 깊은 우물 볼 때가 많아
식탁엔 우울한 혼례처럼 흰 이를 반짝이고 즐거운 이혼처럼 수저를 들어줘
찌개가 팔팔 끓거든 호호 불면서 맛있게 먹어줘
구수한 된장이면 그 냄새로 낭비하고 싶고 푸른 시금치나물이면 그 뿌리까지 꼭꼭 씹어줘
숟가락을 들면 숟가락이 없어지고
젓가락을 들면 젓가락이 없어지는
점점 먹을수록 수북이 담는 밥그릇
점점 먹을수록 죽고 싶다는 것
식탁은 어느새 달랑 접시 하나
그 접시 위에 자른 목을 놓고
먹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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