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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뇌조 / 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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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29회 작성일 18-12-18 11:09

본문

.

     흰 종이가 설원이 되어 깊어가고 있었다

     내게 왜 이런 시간이 도착했는지 생각하느라 창밖이 어두워진 줄도 모르고

     들여다본다는 건 참 가파른 일이구나 우리는 조금 더 부드럽게 휘어질 수 있겠구나 빛에 휩싸인 손으로

     흰 눈 위로 흰 눈이 내리는 시간을 쓰다듬었다 찬장의 접시들이 흔들렸다

     불을 켜지 않았는데 어둡지 않았다 나는 밤의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었다 초인종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을 때 의자는 눈 속에 묻혀 있었고 종이에 흐릿하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뇌조는 극지방의 고산 지대에서만 발견되며 포식자인 북극여우를 피해 눈 속에 굴을 파고 살아갑니다.”

     목소리는 목 안에 없는데 어디서 오는 것일까

     나는 몸을 찢고 날아오르는 일과 아름답게 파묻히는 일을 상상했다 고개를 들자 눈앞에 북극여우가 서 있었다

 

                                                                                                         -뇌조, 안희연 詩 全文-

 

 

     鵲巢感想文

     오래간만에 좋은 詩集 한 권 읽은 듯하다. 詩集을 읽다가 내가 언제 이 詩人을 만났던가 하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작년(17) 1월에 만났다. 그때 詩人한 편 감상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까마득히 잊었다. 나는 특별히 시집을 가려가며 사보지는 않는다. 문장을 좋아해서 마구 사서 보다가 아니다 싶은 것은 따로 정리해 영원한 장례를 치른다. 좀 괜찮은 것은 가까이에 놓아둔다. 항상 빼 볼 수 있는 자리에다가 뒤태를 볼 수 있게 꽂는다. 詩人은 뒤태를 늘 볼 수 있는 명예를 얻은 셈이다. 최소한 나에게는,

     가끔 그 뒤태를 보면서 이상야릇한 미소를 던진다. 시소와 균형의 차이에서 미끈한 계곡과 안 미끄러지려는 자치기의 노력에 기어코 가로등처럼 터지고 마는 맨드라미였으니까! 하여튼,

     시제로 쓴 뇌조는 들꿩이다. 이 들꿩을 어디선가 읽은 느낌도 있지만, 최소한 여기서는 시니까 그 구성과 짜임새 즉, 시적 세계관에서 독자와의 거리를 얼마나 당기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흰 종이가 설원이 되어 깊어가고 있었다. 시적 거리를 두고 시 인식에 다가가는 장면이다. 雪原과 흰 종이가 어떤 선한 장면을 띄운다. 설원하면 눈으로 덮인 하얀 들판쯤으로 종이만 보아도 그런 느낌을 들게 한다. 갑자기 어두운 어떤 장면이 삭 없어지고 오로지 하얀 들판을 보듯 뻥 뚫은 느낌마저 들게 한다. 다만, 는 원통한 사정을 풀어 없애는 것도 설원雪冤임을 여기서 못 박아 둔다.

     詩語에서 사용하는 창은 현실과 시적 세계와의 연결망이다. 창에 커튼을 친다면 바깥 세계를 볼 수 없듯이 시도 보이지 않게 된다. 보통 詩人들은 이 창을 넣으므로 해서 마음의 변이를 조율한다. 창밖이 어둡다는 것은 실지로 창밖이 어두운 것도 사실이지만, 글을 이끌어내는 데도 어둠이 깔린 것과 다름없는 것이 된다. 물론 마음을 풀어내는데 장애적障礙的 요소를 묘사하는 것도 맞다.

     무엇을 들여 보는 일은 가파르다. 우리는 종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그 거리는 알고 모르는 사이에 가까워질 수도 있고 아주 먼 거리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흰 눈 위로 흰 눈이 내리는 시간을 쓰다듬었다 찬장의 접시들이 흔들렸다. 를 쓰는 과정을 묘사한다. 하얀 종이 위에 내 모르는 글을 쓰다 보면 어떤 좋은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련의 작업은 詩人만이 갖는다. 여기서 空間的 槪念인 찬장이 나오고 접시를 예로 들었다. 찬장도 찬장으로 보지 않는 눈 즉 그러니까 서재로 돌려보는 것도 좋고 교본과 다름없는 책이나 그 어떤 사물을 떠올려보는 것도 좋다. 찬장이 보다 큰 개념이면 접시는 이에 속하는 작은 물질이다. 접시라는 물질의 특성은 단단하고 굳은 것이며 떨어뜨리면 깨질 수 있는 소재라는 것도 함께 생각하면 를 읽는 데 더욱 재밌다.

     나의 밤의 한가운데에 도착해 있었다. 초인종 소리를 들은 것 같아서, 여기서 보면 는 이미 깊게 들어와 있는 상태다. 깊게 들어와 있는 글쓰기는 각성을 일깨는 보조 장치를 하나 넣으므로 해서 전환점을 알렸다. 초인종이다. 딩동 그러면 문을 열 것이고 문 열면 이미 우리는 다른 쪽 세계에 도착해 있으니까. 가령 부정이 희망으로 희망이 암흑으로 그 어떤 전환의 매개체다.

     잠시 자리를 비우고 돌아왔을 때 의자는 눈 속에 묻혀 있었고 종이에 흐릿하게 적힌 글씨가 보였다. 詩 認識이다. 다음 따옴표 안에 든 문장은 에 대한 보조 설명이다. 독자를 위한 배려다.

     목소리는 목 안에 없는데 어디서 오는 것일까? 장은 역시 손으로 담아야 맛있다.

     마지막 결구는 뇌조와 글쓰기를 중첩시켜 놓는다. 이에 상극인 북극여우를 내세웠다. 이 글을 읽는 필자가 마치 북극여우가 된 셈이다.

 

 

     鵲巢

     꿈은 두꺼운 종이가 얇아질 때 옵니다 꿈을 가볍게 그려나갈 수 있었던 일은 피아노 건반처럼 한 옥타브씩 고독을 지웠기 때문입니다 맨드라미 꽃송이와 제라늄에 작은 꿈을 봅니다 앉은뱅이가 흔히 쓰는 달구지를 세 개나 가슴팍 주머니에다가 꽂아주십니다 나무동산 앞이라 결코 어린나무는 굽은 가지들의 얼룩을 버리지는 못합니다 똑똑거리며 제쳤다가 젖혔다가 두드리다가 마냥 두드리고 한숨을 쉬고 힐끔 쳐다보더니 또 옵니다 모자가 참 예쁩니다 연마광택이라고 하는 바닥이 낯설지 않은 이곳 달이 중천에 떠 있습니다 똑 딴 달을 오혈포에다가 장전합니다 밤은 아직도 환해서 문은 열어 놓습니다 돼지 저금통과 축구공이 끊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모두 잠자고 있을 고개는 내일을 기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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