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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가급적 문예지에 발표된 등단작가의 위주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자작시는 삼가바람) 

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계단의 비밀 / 최금진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931회 작성일 18-12-23 11:12

본문

.

     추도 명단에 없는 영혼들이 준공식 의자에 앉는다

     일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그는

     머리말도 못 새겨놓고 어느 높이까지 걸어 올라갔을까

     밤이면 계단들이 마을로 떼를 지어 내려온다

     우르르 몰려와 마을의 모서리와 귀퉁이를 훔쳐간다

     사람들은 직각보행을 잃어버리고

     그 각진 무르팍에 개망초꽃이 염증처럼 핀다

     꽃 피는 계단의 무르팍을 보라

     올라가지 않으면 내려오도록 설계된 계단의 힘줄을 보라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은 건 그만의 건축술

     집으로 가는 길을 잊어 버렸을 때는

     처음 걸어온 계단부터 다시 걸어와야 한다, 얘야

     머리를 풀어 헤친 노모가 증언하는 그의 가파른 생애는

     어느 사찰의 지붕을 잇는 헌금으로 바쳐지고

     올봄, 늙은 목련나무는 물관과 체관에 놓인 계단을 버리고

     자신의 바깥을 향해 줄행랑쳤다

     달에는 어떻게 가는가, 중력을 잃으면 된다

     그는 달에 앉아 지구에서 잘못 보낸 우주선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모두 저문 계단을 닫아걸고

     지하실 깊이 숨겨놓은 잠을 진탕 마시기 위해 내려간다

     그 길은 포르투갈 어느 섬과 이어져 있고

     누가 내리다 만 줄 하나가 대롱대롱 자전하고 있다

     어미가 보고 싶을 땐 이 줄을 힘껏 당겨라

     몸을 접어 계단을 놓아주마, 그리로 오너라, 아가

 

                                                                                                         -계단의 비밀, 최금진 詩 全文-

 

     鵲巢感想文

     詩人 김지녀의 해동을 보면 얼었던 얼음이 녹는 순간은 3분이라 했다. 한 편의 를 읽고 마음에서 풀리는 시간 말이다. 굳었던 표정에서 마치 온 몸이 녹는 그 시간까지, 끓는 물에 굳은 국수를 삶듯이 물과 엉킨 국수발, 물도 아니면서 국수 면발은 물과 더불어 흐느적거리기 시작했다. 채로 걸러 하얀 면발의 그 감촉과 허기진 배를 채운다면 더할 나위 없는 문학이다.

     詩人 최금진은 이미지를 꽤 잘 띄우는 시인이다. 를 사랑한다면 그의 언어는 쉽게 파악할 수 있겠다. 각 행마다 를 떠올리며 詩人이 쓴 일기와 시의 조합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니까,

     시제는 계단의 비밀이다. 전에 모 詩人에서 설명한 바 있다. 시인은 이 계단을 꽤 좋아하는 것 같다. 무엇에 이르는 단계며 한 발씩 떼며 걷는 어떤 순차성도 내포한다.

     추도 명단에 없는 영혼이다. 이 말은 의 부재를 논한다. 여기서 시의 부재는 준공식 의자(實體)에 앉는다. 준공식 의자는 의 실체에 다가 와 시작을 알리는 문구다. 그러니까 의 각 행은 시의 부재와 시의 실체사이에 오가는 오묘한 글쓰기다. 이러한 글쓰기를 진행하면서 계단의 비밀을 한 겹씩 풀어내고 있다.

     머리말도 못 새겨놓고 어느 높이까지 걸어 올라갔을까, 시제가 계단의 비밀이다. 계단을 착안하여 쓴 글이다. 실체와 부재의 부조리에서 오는 갈등과 어떤 조합을 통해 에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이 를 통해 볼 수 있다. 가령,

     밤이면 계단들이 마을로 떼를 지어 내려온다거나, 우르르 몰려와 마을의 모서리와 귀퉁이를 훔쳐가는 것도, 사람들은 직각보행을 잃어버린 것, 그 각진 무르팍에 개망초꽃이 염증처럼 피는 일, 꽃피는 계단의 무르팍을 보는 것은 詩 認識에 접어든 신호며 건축술에 비유를 둔 시작법과 노모와 늙은 나무는 에 대한 노련한 어떤 경험자를 제유하며 중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곧 에 가까워 옴을 말한다.

     詩人이 쓴 시어, 지붕도 유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에서 많이 사용하는 단어다. 무엇을 덮는다는 기능, 색상까지, 완벽한 사물을 비유하기도 하는, 온화한 생명체로 거듭나는 시인의 손재주를 본다.

     시는 밑바닥에서 얼굴까지 거리다. 그 거리를 두고 시인은 계단을 놓은 셈이며 그 비밀을 은유한다. 뒤에 포르투갈 어느 섬과 이어져 있다는 능청도 참 재밌다. 글의 방향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쓰는 시인도 모를 때가 많다. 어쩌다가 긁적이다가 영 아닌 것도 나올 수 있지만, 정말이지 페인트 통을 엎질렀는데 생각지 못한 작품을 건져낼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의 역학적으로 볼 때 밑에서 한 사람을 끌어당기는 어떤 매혹적인 데가 있다.

 

 

     鵲巢

     돌 볼끈 쥔 주먹이 저 번득이는 맹수의 이빨을 보았을 때

     벌겋게 흐르는 초원의 피는 흰 갈대밭을 적시고 있었다

 

     이빨을 본다는 것은 깊은 동굴에 밧줄을 내리고

     휘어진 손과 악수한다는 것

     갈대밭 사이 숨어 숨만 졸이고 있었다

 

     밑줄 위에 노을이 간당 거렸을 때 초원은

     바람에 흐느적거렸다


     뼈마디가 부러진 돌 볼끈 쥔 주먹

     다 빼먹고 남은 흰 골수의 잔해가

     바위에 널어져 있었을 때

 

     왜 주먹 없인 이빨이 젖지 않는가

     맹수의 이빨은 찢어져도 다시 피어나는 건가

 

     낭자한 피의 맛에 초원은 끝도 없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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