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푸치노 심리학 / 안차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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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844회 작성일 18-12-29 00:10본문
⋁.
내가 한 잔의 카푸치노에 집착하는 건 프로이트적으로 말하면 구강기의 오래된 분리 불안 증세 같은 것, 엄마의 젖이거나 품에서 일찍 거세됐던 검은 앙금을 끈적끈적 붙이고 다닌다는 것, 게슈탈트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전경과 배경 사이의 욕망 곡선이 머그컵만한 소용돌이로 늘 한자리에서 맴돈다는 것, 당신은 휘핑크림보다 가볍게 떠오르는 거품 알갱이 사이로 달뜬 입술 밀어넣고 싶겠지만 두어 마디 감미로움 밑은 캄캄한 바닥이라는 것, 넘치는 거품만큼 물기는 빠져 있어 언제나 목 깊은 갈증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 쩝쩝거리는 내 구순기와 질척거리는 당신의 항문기가 맞닿아 있어 우리의 키스는 늘 시작도 하기 전에 꾸역꾸역 역순의 시간부터 게워내야 한다는 것!
-카푸치노 심리학, 안차애 詩 全文-
鵲巢感想文
내가 커피를 처음 대했던 게 아마 중·고등학교 시절이지 않나 싶다. 아버지는 늘 인스턴트커피를 좋아하셨기에 식탁에 놓인 그 커피 한 잔을 조금 맛 본 기억이 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틈이 생기면 줄곧 자판기 커피 한잔 뽑아놓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직장생활도 그렇고 자영업 세계에 들어와서는 커피를 생업으로 하게 될지는 미처 몰랐다. 그 사업도 이제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참 지난한 시간이었다.
카피치노는 이탈리아 카페 문화에 그 기원을 둔다. 성 카푸친 수도회의 수도사들의 옷차림에서 메뉴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청빈의 상징인 모자와 원피스 모양의 옷은 꼭 에스프레소 메뉴에 거품 잔뜩 들어가 있는 모양과 흡사하다.
요즘은 커피 메뉴가 카푸치노와 라떼의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매장마다 경쟁은 라떼 아트로 치달았기에 라떼든 카푸치노든 한 방에 부은 우유에서 각종 그림을 띄워 고객의 눈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다만, 구분한다고 하면 계핏가루(시나몬)가 얹고 안 얹고 차이겠다.
詩人의 詩는 카푸치노의 특색과 詩의 특성을 잘 살려 중첩시켜놓은 수작이다. 가만 생각하면 한 잔의 카푸치노를 만드는 것도 머그컵만 한 소용돌이로 늘 한 자리에서 맴도는 우유 붓기가 없다면 어렵고 詩도 또한 쓰다 보면 늘 그 자리를 떠나기가 어렵다. 더나가 달뜬 입술 모양을 밀어 넣는 것도 손 기술이 없으면 어렵다. 詩나 카푸치노 한 잔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겠다. 이렇게 완벽한 시 한 수와 읽는 독자와의 거리는 역시 역순의 시간 같은 것이며 구순기와 항문기가 맞닿는 시점과 같아 잠시 보고 있는 이 순간은 키스와 다를 바 없겠다.
鵲巢의 辯
문득 눈을 뜨자 연말이 왔다 올해가 몇 장 남지 않았다 아직도 이해 못하는 커피만 마셨다 세월만 길었다 그러나 세월은 커피 한 잔처럼 지나갔다 사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이었다 점점 고립되었고 점점 자폐가 되었다 늘 지나는 골목을 들어가며 늘 그 골목을 빠져나왔다 목표지는 분홍 꽃잎이었고 도착지는 어두운 발판이었다 가속기와 제동을 번갈아 밟으면서 바깥은 늘 새로운 풍경이었으니까 다만, 간병인처럼 옆 좌석을 끼고 앉아 옆 좌석만 바라보았다 하지만 노인은 아직 일렀다 핸들은 잡을 수 있었지만 도넛은 줄 수 없었다 그렇게 뺑뺑 돌면서 바가지만 엎어 놓았으니까 그러면서도 신호등이면 따듯한 손을 잡았고 눈만 마주쳤으니까 꽃잎은 그렇게 무너져갔다 이제 마지막 하루를 본다 그 하루도 빠져나오고 싶었다 훨훨 새처럼 날아 구름을 몰고 싶었다 하지만, 연말은 어둠이었다 내가 속한 어둠은 없었다 대낮처럼 너를 밝혔으니까 오늘은 바람이 불고 많이 불어서 얼굴까지 얼얼했다 목이 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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