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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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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안락사 / 권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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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26회 작성일 19-01-02 00:02

본문

.

     커튼 뒤에서 잃어버린 어제를 찾았죠. 베개는 얼마나 잃은 꿈을 견뎌냈나요. 머리맡엔 단단한 구름과 말캉한 악몽이 쌓이고, 기억들을 팡팡 털어도 베개는 풍성해지지 않아요. 부풀어 오르지 않아요. 걸어온 길들은 푹 꺼져서 다신 되돌아오지 않아요.

     침대는 흰 배를 내놓고 앉아 있어요. 커튼을 치면 종기처럼 별이 돋아나고 터진 잠 속에서 깃털들이 솟구쳐요. 재채기가 나와요. 콧등은 주름지고 우리의 날들도 구겨져요. 지폐를 구기면 낯선 얼굴이 우릴 바라보는 것처럼 구겨진 삶이 우릴 바라보고 웃고 울어요. 그 새침하고 가여운 얼굴 속에서 혀를 날름거리고 눈물도 흘려요.

     바뀐 요일을 입으면 기운이 새로 솟아요. 오늘 지고 일어나면 또 얼마나 열매가 많은 날이 펼쳐질까요. 얼마나 많은 잘린 머릴 목격할까요. 별들이 태어나고 숲이 타오를까요. 이 한잠만 자고 일어나면........

     부러진 나무들이 일어나요. 번개가 기지개 켜요. 온 들판에 불이 일고, 우리의 수많은 잠들이, 꿈들이 하나하나 낯익은 얼굴이 되어 찾아와요. 못다 한 인사를 커튼 뒤에 감추고

     나는 잠들기 전에 내가 가진 모든 하루를 생각해요.

 

                                                                                                        -안락사, 권민경 詩 全文-

 

     鵲巢感想文

     詩題 안락사는 편안하고 즐거운 죽음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인정하는 안락사는 생명 단축을 위한 어떤 의료행위가 들어가 있다면 에서 안락사는 말 그대로 편안한 쓰기겠다. 실지, 우리는 그렇게 편안한 글쓰기를 하지 못한다. 詩學은 이미 마음의 고백에서 문학의 재미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요즘 詩學은 좀 더 사색을 요하고 생각을 하게끔 유도한다. 한 편의 글을 읽음으로써 잠깐의 외도, 그 외도가 낳은 기발한 思索은 어쩌면 創造素材.

     이 에서는 소재가 병실이다. 병실에 놓인 여러 가지 자재를 와 연관시켜 복합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가령 커튼과 베개, , 악몽, 구름, 침대, 종기, 깃털, 콧등, 지폐, 요일, , , 나무, 들판, , 얼굴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詩語는 병실의 느낌과 詩人의 심상을 유추한다.

     詩는 총 다섯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단락은 커튼과 베개라는 素材를 사용하고 있다. 커튼 뒤에 그러니까 이미 지나간 장막은 아무리 떠올려도 되살릴 수 없는 詩的 기능과 일기를 다루었다면, 이를 펼칠 수 있는 장은 역시 베개인 것이다. 베개는 물론 머리맡에 깔개로 누이며 받히는 기능이다. 지면도 어쩌면 이와 유사해서 풍성한 글쓰기를 끌어내는 데는 단단한 구멍은 몰랑한 것의 전환과 말캉한 악몽이 아니라 달콤한 어떤 형이상학적 물질이어야겠다.

     침대는 우리의 몸을 누일 수 있는 소재지만 여기서는 우리의 정신을 뽑을 수 있는 소재로 쓰고 있다. 그러니까 침대는 돌이며 베개는 마모된 돌이므로 여기서 끊임없는 사색과 동물적 기능을 가한 다음은 물방울이 아니라 빗소리 즉 비를 그려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인 신용목은 숨겨둔 말에서 비가 새는 지붕이 있다면, 물은 마모된 돌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침대는 베개의 지붕인 셈이다. 지폐라는 시어가 보인다. 지폐는 지폐紙幣일 수 있지만, 지폐紙蔽나 지폐紙廢라는 것도 한 번쯤 생각해보자. 여기서는 아무래도 니까!

     다음 단락에서는 요일이라는 詩語와 좀 과격하지만, 잘린 머리 그리고 열매 및 별과 숲이 등장한다. 바뀐 요일을 입으면 기운이 새로 솟아요. 여기서 요일 다음에 나오는 동사에 주목하자. 입는다는 것은 옷이나 혹은 어떤 은혜나 고통 따위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요일은 특정명사가 돼버린다. 요일이 요일이 아닌 요일에 찾아온 요일 같은 책을 우리는 상상해 볼 수 있겠다. 별과 숲은 대치를 이룬다. 숲의 특성과 별은 차이가 크다. 아주 혼잡한 무용지물() 가운데 유독 한 점()을 일구는 것은 詩人의 마음이다.

     더디어 의 탄생誕生을 묘사하듯 다음 문장은 아주 긍정적으로 진행한다. 마치 안락사를 당하는 사람의 마음과 같이 온 전신이 붉은 신호등에서 푸른 신호등으로 순탄한 길로 접어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상에 진입하는 우리의 잠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문장은 좀 아쉽다. 나는 잠들기 전에 내가 가진 모든 하루를 생각해요라고 하는 것은 詩人 本人의 자세다. 는 거울이기 때문에 솔직히 이렇게 쓰면 진부하다. 이 문장을 가령 잠들기 전에 하루를 펼쳤으면 좋겠어요. 꿈이 훨훨 날아가게요. 요렇게 썼어야 했다. 훨씬 독자를 배려한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鵲巢

     뽀글뽀글 끓는 찌개에는 안부의 입김이 있다 숟가락을 들고 있는 사람은 최소 일 명 혹은 여러 명

     맑은 소주 한 잔에 뒤엉킨 소재를 쇠막대기로 휘휘 저으며

     입김은 여전히 피어오르고 속 데울 수 있는 건 그래도 이 찌개 한 숟가락

     그릇의 바깥은 말이 많고 이 좁은 문단의 찌개에 노을을 뜰 때마다 비탄은 낮아지고 마침표는 가까워지는 불 다 끄진 마당에

     바닥의 고요가 어쩌면 붉은 낯짝을 바라본다

     한때는 찌개보다 더 끓었던 열정

     다 식어버린 냄비 채 던져 버렸던 일과

     하얀 속만 든든히 데웠던 바람의 각도가 지붕을 다 덮었으니까

     그래도 문밖으로 끌려 나가던 머리와 손목 그리고 발목까지

     계절과 계절로 잇는 적막이 끔찍한 세련미도 없는 거저 고독과 악어였다면

     술은 비었고 찌개는 닥닥 졸고

     패기는 어느새 다 비운 허기의 잔 다만, 질질 끌려 나가는 의자가 참 길었던 하루

     *찌개에 노을을 띄우고 / 鵲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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