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교 / 조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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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475회 작성일 19-01-07 00:52본문
⋁.
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겠지
소년병은 투구를 안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고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봐 눈을 감는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
-배교, 조연호 詩 全文-
鵲巢感想文
詩題 배교는 믿던 종교를 배반하다는 뜻을 지녔다. 한자로 표기하면 배교背敎라 한다.
詩 첫 문장을 보면 색약인 너는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바라본다. 라고 쓰고 있다. 색약인이라는 단어가 사실 없다. 색약이라고 하면 색약色弱인데 빛깔을 판별하는 힘이 미약한 것을 말하는 것이므로 색약인은 그런 사람을 일컫는다. 여름의 초록을 불탄 자리로 본다는 것은 그 색약인이 본 여름의 초록은 사실 불탄 자리처럼 보았다는 것이겠다. 그러면 나는 여름의 초록을 있는 그대로 보았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색약인은 어떤 종교적인 색채로 보자면 종교에 충실하지 못한 이로써 어떤 사실을 왜곡해서 보았다는 말도 숨겨져 있다.
만약 불타는 숲 앞이었다면 여름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겠지. 근데 여기서 불타는 숲과 여름이 나온다. 아까 첫 문장에서 여름의 초록이라 했다. 그러니까 초록은 여름의 것이다. 여기서는 여름이 계절로 쓰이지 않는다. 그리고 불탄 자리와 불타는 숲은 차이를 이룬다. 불탄 자리는 이미 끝난 세계고 불타는 숲은 진행형이다.
세 번째 문장은 앞의 것과 확연히 다른 이미지를 띄운다. 소년병은 투구를 안고 있었고 그건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하다고 했다. 아마 소년병은 아직 미성숙의 단계로 독자나 자아로 생각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투구는 굳은 물질로 시 소재로 알맞은 단어다. 이는 무엇을 덮는 역할로 詩를 제유한다. 소년병이라는 어감에서 보듯이 마치 우리는 전쟁터에 있는 그런 느낌도 든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치열한 시 쓰기다. 그러니 두개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 또 경전 같은 시집이 될 수도 있겠다.
사실, 詩가 많은 것을 대변하기도 하고 많은 것을 억제抑制하기도 해서 어쩌면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일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폐인처럼 세상을 완전 닫고 사는 그런 인간을 만들기도 한다.
詩와의 對話는 끊임없이 이루어지므로 그 대화에 뺑뺑 돌고 도는 질문과 답, 어쩌면 동문서답 같은 마음으로 한쪽은 계속 숨기고 한쪽은 무엇인지 자꾸 찾아들어가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변이 된 어떤 기형아를 출생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잠시 소모적인 시간과 전투, 그 끝에서 스스로 안도하는 시인들이다.
그러므로 저편이 이편처럼 푸르게 보일까 봐 나는 자꾸 숨는 것이다. 숨은 쪽은 죽음의 세계이므로 눈을 감는 것과 같다. 시만 쓴다.
나는 벌레 먹은 잎의 가장 황홀한 부분이다. 저쪽은 이파리 하나로 모든 눈을 가렸다면 나는 그래도 벌레 먹은 것처럼 구멍을 일단 뻥 뚫어놓고 세상을 바라본다. 역시 시를 꿰뚫어 놓고 본 세상이겠다.
鵲巢進日錄
바람을 엮어 하늘 꿰는 메타세쿼이아
뼛골로 오로지 서서 이 추운 겨울바람을 깁고 있다.
많은 사람이 오가는 카페 입구
다 짠 수의 한 벌이 펄럭인다
몸이 가벼워 손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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