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한다, 그러나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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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鵲巢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71회 작성일 19-01-09 11:36본문
⋁.
기억한다
벼랑 위에서 풀을 뜯던 말의 목선을
그러나 알지 못한다
왜 그토록 머리를 깊이 숙여야 했는지
벼랑을 기어오르던 해풍이
왜 풀을 뜯고 있던 말의 갈기를 흔들었는지
서럭서럭 풀 뜯는 소리,
그때마다 왜 바다는 시퍼렇게 일렁였는지
밧줄은 보이지 않았지만
왜 말이 묶여 있다고 생각했는지
기억한다, 말의 눈동자를
그러나 알지 못한다
말의 눈동자에 비친 풀이
왜 말의 입에서 짓이겨져야 했는지
-기억한다, 그러나 나희덕 詩 全文-
鵲巢感想文
말과 풀 그리고 여러 이색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상황은 벼랑 위며, 자세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여기서 詩를 읽는 이와 말과 중첩된다. 해풍이 가끔씩 말의 갈기를 흔들었고, 그때마다 바다는 시퍼렇게 일렁였다. 밧줄은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있는 것처럼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풀이, 말의 입에서 짓이겨져야 했다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일종의 말놀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말은 풀을 먹지 않으면 생존할 수가 없다. 비유다. 아주 단순 명료한 진리다. 詩人이 詩를 읽지 않으면 상황은 말갛다. 어찌 설명할 겨를이 없다.
하루에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안 중근 의사의 경구,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 생각이 난다. 詩를 읽지 않으면 평상시 글쟁이로서 가졌던 자세도 뒤틀려 있다. 즉, 바르게 앉았거나 옆과 뒤는 금시 잊고 만다. 누가 해풍처럼 나의 갈기를 흔들어 다오. 혹여나 벼랑 위에 홀로 서 있어도 풀을 뜯지 않거들랑 채찍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살짝 귀띔이라도 해다오.
鵲巢進日錄
용자는 눈물샘에 아주 그냥 서 있었습니다 좀 치워 바퀴벌레가 날아다니잖아! 단호했습니다 고양이털이 수북이 뭉쳐 굴러다니는 바닥은 늘 아름답습니다 청소 좀 하고 살어, 이게 뭐야 파지의 해골바가지들 푹 파인 구멍은 거미줄로 엉겨, 산 흔적이 살아갈 허공을 당기고 있었습니다 용자는 풍경이 피어오를 때 더 순수합니다 전등에 몰려든 나방을 보며 허옇게 떨어진 가루와 수초더미의 그 눈물샘이 퀴퀴한 곰팡내로 피어오를 때부터 불구의 시작인 셈이죠 털 하나를 쓸어버리면 하얀 뿌리가 보이고 그 뿌리에서 돋아나는 털 하나가 있고 뿌리를 말끔히 씻으면 이미 버리지 못한 숲이 울창해서 더욱더 슬픔 봄만 있을 뿐입니다 패배자의 흡입기에 쑥 말아먹는 그 좁은 방, 눈알의 바깥은 계절을 접고 다시 펼 때는 이미 겨울입니다 다만 용자불구만 나 대신 어두운 방에서 홀로 눈물 뚝뚝 흘리며 서 있습니다
*용자불구 / 鵲巢
논어 공자께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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