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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고 싶은 시에 간단한 감상평이나 느낌을 함께 올리는 코너입니다 (작품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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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편 이내 올려주시고, 특정인을 홍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을 

제 19회 해양 문학상 당선작/ 김경숙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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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金富會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1,168회 작성일 19-01-16 14:45

본문

【평론】

 

바다의 자궁에서 태어난 모음- 그 영혼의 메시지

 

◆김경숙 시인의 시 세계를 통한 시적 질감의 유연화에 기반을 둔 상호소통에 대한 가능성 모색

 

 

“‘돌멩이’는 돌멩이지 사회주의나 휴머니즘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들이 돌멩이를 돌멩이라는 ‘물리적 존재’로 보지 않고 ‘관념적 존재’로 보려고 한다.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관습이 되어 있으며,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정말로 무엇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테이블을 테이블로, 꽃을 꽃으로, 구름을 구름으로, 컵을 컵으로 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데, 그렇게 보지 않고, 무언가 그 사물 뒤에 있는 인생이나 문화나 역사나 관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본다. 관념화 하는 것은 전혀 그 사물이 아니다. 그렇다고 물리학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우리 시 사상 사물을 사물 그 자체로 보려고 한 시인은 정지용이 처음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지용(鄭芝溶)은 한국 이미지즘의 효시요 사물시의 원조로 알려져 있다. 그의 시를 직접 보자.

 

나직이 한 하늘은 白金빛으로 빛나고

물결은 유리판처럼 부서지며 끓어오른다

동글동글 굴러오는 짠 바람에 뺨마다 고운 피가 고이고

배는 華麗한 짐승처럼 짖으며 달려나간다.

―정지용, 「甲板 위」에서“

 

『문덕수 시인의 사물적 가능성과 상상적 가능성』 일부

 

시는 시문학의 장르를 빌어 세상을 보는 것이다. 존재하는 사물 또는 현상에 대하여 그 물리적 배후의 이면에 산재한 관념을 만드는 것은 선험적 경험에 의한 시인 각자가 소유한 겹눈 일부분에 맺힌 망막의 한 부분을 덧씌우는 일인지도 모른다. 문덕수 시인의 말처럼 사물의 배후를 들여다보는 것은, 어쩌면 들여다보기 그 이전에 사물에 대한 정확한 시선이 먼저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먼저 붙였는지 알 수 없지만 모든 사물에는 이름이 있다. 벌레는 벌레대로, 꽃은 꽃대로, 지명은 지명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본래 없던 것에 이름이 만들어지고 우린 당연하게 이름을 부르거나 만들거나, 이름이라는 굴레를 쓰고 살거나 한다. 시적 질감은 과연 누가 먼저 그 이름을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꽃을 돌로 잘못 보면 향기와 자태와 잎과 가지에 대하여 논하는 것이 무의미하다. 다시 말하면 본질적 감각이라는 말은 사물에 대한 일체의 상상과 관념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본질’을 보는 것이며 본질이라는 형상적 아이덴티티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김경숙의 시는 본질에 대한 형상적 상상과 확장적 사유가 작 믹스된 커피와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질감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는 재료가 가지는 성질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달리 느껴지는 독특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숲, 나무, 들, 교차로, 돌맹이 모든 것이 시의 재료적 역할을 할 때, 우리는 이 시료 내지는 질료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바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바다의 메시지가 귀에 들린다. 그 메시지는 나와 상관관계를 갖는 무엇인가에 상호 이입되어 또 다른 변형된 메시지를 만들고, 시인이 부여한 메시지의 정의가 독자의 가슴에 들어와 상호 공감 내지는 교통을 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다.

 

손금

손가락으로 소금이라고 쓰면

손바닥에 파도가 인다

손금을 빠져 나온 길들이

바다 밖으로 향하고 있다

지도 속 얼룩진 길을 따라가면

막다른 곳에 염전이 있다

 

생각을 졸여 세상을 간하고 있는

손을 뒤집어도 지워지지 않는 바다

할아버지 맥박 속을 돌아 나와

순례자처럼 수평선을 지고 간다

물려받은 한 뙤기 소금밭에서

불볕에 타는 굽은 등을 짊어지고

바람에 그을린 고무가래를 끌며

소금 탑을 쌓고 있는 아버지가 보인다

 

소금 꽃으로 핀 얼룩진 눈물의 가계

몸속에 흐르는 피 죄다 졸여서

염전에 뿌려 간 맞춰 놓고

노을로 타고 있는 혈통을 건질 때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 파도가

내 손바닥에 소금을 뿌렸다『김경숙 손금』전문

 

김경숙은 바다에서 손금을 읽었다. 손가락으로 소금을 쓰면 손바닥에 파도가 인다는 도입부에서 바다를 벗어나지 못한 파도가 내 손바닥에 소금을 뿌렸다는 결구까지 시종일관 시인의 심상에 맺혔던 바다에 대한 기억과 시인 본인 기억의 경계를 오가며 확장적 상상을 한다.

 

소금→파도→염전→아버지→눈물의 가계→혈통→바다를 벗어나지 못한 파도→내 손바닥

 

구조는 자연스럽게 본질과 사유를 잇는 매개체로 자신은 손바닥을 사용했으며 아버지에 대한 기억의 회상을 상상의 단초로 제시했다. 이러한 비약적인 전개는 시를 읽는 독자에게 뭉클한 기억의 호주머니를 털어보게 한다. 비록 아무것도 나올 것 없는 것을 알면서도 빈 호주머니를 뒤진다는 행위는 향수로 회귀하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감정적 귀환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김경숙의 시는 일관된 논조로 감정적 귀환 내지는 과거 성찰에 기본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독자 역시 시를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린 어느 한때의 나와 내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아슴한 기억을 되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경향은 또 다른 시[양남바다 주상절리]에서 그 맥점을 이어가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양남바다 주상절리

ㅡ아코디언 

 

집 없이 떠도는 보헤미안의 보폭으로 세상 뒤꼍 혼자만 아는 주소에 와 닿은 파도, 그들이 내쉬는 웅휘로운 호흡 속, 미처 동 트지 않는 박명 속에도 푸른빛 검은 파장을 감지하며 움츠렸다 펼쳐드는 바다결 음계에 귀 기울이며 삶의 체감온도를 자가 측정한다 어제를 패러디한 오늘의 파도라며 이른 새벽 치러내는 표절에 대한 자기검열 앞에 바다는 저마다 또 다른 제스처로 포즈를 취한다

 

오선지처럼 주름진 경주 문무대왕릉 해안을 따라 걷다가 물결처럼 주름진 주상절리 앞에 멈췄다 파도소리길 층층 주름 한 채 살며시 펼치면 구슬픈 노랫가락 흘러나올까 오일장 따라 화진포 속초 강릉까지 비가 와도 장터 구석구석 파도 주름잡으며 아코디언을 접었다 폈을 바다 할아버지, 낡은 주름 조여 보리쌀 사고 부풀린 주름 엮어 꽃고무신 사서 주름진 이마에 웃음꽃 피웠으리라 

 

막걸리 한 사발로 주름진 배를 채우며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몇 해를 거듭 켜켜이 주름을 연주하고 닦아도 젖은 지갑 속 고향은 한숨만 깊어갔으리 꼿꼿하던 허리에 굵은 파고를 받들고 흐려지는 눈가에 잔주름을 잡아 구불구불 홀로 저물었을 할아버지 주상절리에 와서 파도의 시간을 접었다 펴고 있는 귀밑머리 하얀 낯익은 양남바다를 본다 갯바위 구석구석 지문을 새기며 수 없이 제 몸을 구부렸다 펴는 뒤축이 부어 있는 바다, 걸음이 빠져나간 흔적이 첩첩 접혀있다. 켜켜이 멍든 노래 한가락 젖어 새어나오는 바다 틈새를 본다『김경숙 양남바다 주상절리』본문

 

시를 이해하기 전, 양남바다와 주상절리에 대한 문헌을 찾아보는 것이 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첩경인 것 같다. 양남바다는 경주 양남에 있는 동해바다에 속한 바다를 말하며 주상절리는 다음과 같다.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도C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하게 되어 용암이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이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節理)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방향으로 연장되어 발달하면 기둥모양(柱狀)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柱狀節理)라 한다. 중략

 

에메랄드빛 바다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주상절리들을 독특한 형태가 가져다주는 심미적인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먼 옛날의 화산활동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경주시 주상절리 파도소리 길 안내문』부분

 

시의 문학적 부분에 대한 고찰에 앞서 장황하게 경주시의 안내문을 인용한 것은 서두에서 논지한 바 있는 본질에 대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양남바다를 눈으로 한 번 보고 지나치는 것, 주상절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스쳐 지나가고 나면 시를 이어갈 맥점이 막막하게 된다. 바다의 역사와 주상절리의 형성과 현재의 모습, 미래의 학술 가치 등을 종합해서 알게 되면 좀 더 많은 시적 상상력을 얻게 되고, 이러한 사유의 확장이 시를 좀 더 윤택하고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물결처럼 주름진 주상절리 앞에 멈췄다/

 

주상절리가 형성되기까지 세월을 부단하게 지났을 것이고, 시간은 그 결의 마디조차 닳아 이미 정지해 있을 것이다. 시인은 바다 마을 어디선가 본 노회한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거나 노인의 삶에 대한 적당한 상상과 년치에 어울리는 삶의 미묘한 주름들을 보았을 것이다. 아코디언을 실제 연주하는 노인인지 시인의 상상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느 한 사물 내지는 형태를 보고, 그 안에서 경험적 산물들에 대한 사유의 깊이를 추정한다는 것, 그것이 시를 바르게 쓰는 상호소통이며 시적 질감의 유연화라는 생각이 짙게 든다.

 

시인이 바다를 보는 방법

 

어제를 패러디한 오늘의 파도라며 이른 새벽 치러내는 표절에 대한 자기검열 앞에 바다는 저마다 또 다른 제스처로 포즈를 취한다 『양남바다 주상절리』부분

 

표절에 대한 자기검열이라는 말로 바다를 본다. 또한, 어제와 오늘이라는 시간이 같으면서도 다른 모양을 가진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로 바다에 동일화된 자신 삶의 동기화도 하는 것이다. 시는 독자와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자신과의 소통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것도 시의 한 방편 일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담겨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센텐스는 잠언이 될 것이다.

 

바다는 단순하게 바다에 머물지 않는다.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고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 시의 대상을 바다라는 관점 너머에서 좀 더 세밀하게 파고 들어가면 더 많은 시적 대상이 나올 것이다.

 

바지락

 

바지락을 소금물에 담가 놓고

조간을 펼쳤다 전국은 찜통 더위란다

당분간 장맛비가 오락가락하겠으니

우산과 부채를 함께 준비하라는 일기예보를

읽고 있는데 활자 위로

빗방울 하나 날아든다 싸락싸락

모래에 길을 내며 가고 있는 빗소리

중얼중얼 바지락 숨소리도 거칠게 들린다

 

빗살무늬에 가려진 입을 열고 바지락은

혓바닥으로 날씨를 중계하고 있다

저기압을 우산이라고 읽으면

기다란 입술이 바닥을 적시고

멀리서 파도 무너지는 소리가 난다

 

고기압을 부채라고 쓰고 싶다

바람 부는 정자나무 그늘에서

검은 돌로 흰 돌을 잡아먹는 노인이

눈을 옮겨 신문에서 바지락을 읽는다

남해 섬들이 장마전선에 갇혔다

 

빗속에 들다

햇살에 들다

바람에 들다

입 닫은 바지락에 들다

 

주방에 해풍을 풀어놓으면

귓불을 휘감는 파도 소리에

 

시장에서

 

바지락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시에서 우주와 별과 역사와 세계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상의 어딘가에 묻혀있을지도 모를 이야기에 솔깃하다는 것은 시인의 재주며 본능이며 감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장에서 사 온 바지락을 소금물에 해감하는 와중에 바지락의 숨소리를 듣고 생물의 경계 너머 멀리서 파도 무너지는 소리는 실제 우리 귀에는 들리지 않는 상상의 소릴 일 뿐이다. 하지만 시인의 시선은 바다와 바지락의 경계를 지나 바지락의 서식지인 남해의 섬들과 정자나무 그늘 노인의 시선을 읽는다. 삶을 보는 것이다. 사물이 가진 집합과 내가 가진 집합의 어딘가에 교묘하게 일치하는 부분 집합 내지는 공집합의 영역을 읽어내는 것이 대상에 대한 사물적 감각이며 상상적 감각으로 대상화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사물과 나를 일체화 시키는 시 한 편을 더 소개해 보기로 한다.

 

 

 

그대가 물그림자처럼 일렁이는 날엔 마음 속 바다에 배하나 띄우리. 두근거리는 심장을 돛처럼 매달고 갑판에 떠오르는 햇살로 깃발을 펄럭이며 그대라는 섬으로 출항하리. 핏줄이 끓는 팔다리로 몇 달 몇 해 노를 저어 가다 파고에 늑골이 휩쓸리고 암초에 어깨가 부딪히고 소용돌이에 배가 휘말려도 이마에 돌고래처럼 솟아오르는 그리움을 지나 그 섬에 가 닿으리. 섬 한복판에 상처투성이 닻을 내리리. 늦은 아침까지 수평선을 홑이불처럼 둘러쓰고 누워서 사방팔방에서 두런대는 고요를 바라보리. 출렁이는 당신의 푸른 심장소리를 들으리. 맨발로 해변을 걷다가 당신 가슴으로 들어가 가문비나무 숲으로 가리. 쇠갈매기 알을 품은 둥지를 지나 섬백리향이 번지는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리, 당신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날 저무는 줄 모르리, 당신 옆구리에 기댄 긴 그림자를 끌고 노을 속으로 환하게 어두워지리, 뒷주머니에 넣어둔 낡은 해도海圖를 달빛에 던지고 잡은 손 다시는 놓지 않으리

『김경숙, 섬』전문

 

섬이라는 대상 또는 목적물 아니 매개체를 보는 시인의 감성을 따라가 보자. 김경숙의 섬에는 쇠 갈매기 알을 품은 둥지와 섬백리향이 번지는 벤치와 당신의 이야기와 당신 옆구리에 기댄 긴 그림자가 존재한다. 섬 전부와 섬의 알몸을 모두 메타포로 간주해 보면, 김경숙의 섬이 어떤 형태와 어떤 이야기와 무엇을 간직하고 바다에 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으며 김경숙의 가슴 속 바다에 섬 하나가 실존하는 것을 공감할 수 있다. 그 섬은 바다의 심장 소리와 벗하며 사는 고적한 섬이다. 섬에 다가가기까지 늑골이 휩쓸리고 어깨가 부서지는 고통이 있지만, 이윽고 도달한 섬에서 나머지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뒷주머니에 넣어둔 낡은 해도海圖를 달빛에 던지고 잡은 손 다시는 놓지 않으리

 

오랜 난관을 지나 도달한 섬에서 김경숙은 해도를 달빛에 던지고 손을 놓지 않고 싶어한다. 어쩌면 섬이나 삶이나 같은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한 시간을 살며 살아오다 내 희망과도 같은 잃어버린 동기화의 대상을 찾았을 때 우리는 그 속에 머물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속성인 것이며 본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는 이런 것으로 생각한다. 난해한 경전의 어딜 뒤적거리는 것도 좋고, 어둠의 배후를 낱낱이 캐보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근원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결국 어떤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 먼저일 것 같다. 시를 읽다 보면 가끔은 김경숙의 섬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 아니, 누군가에게 그런 섬이 되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동질성의 같은 차원을 공유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 시의 역할이며 시인의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 메시지의 수신인은 결국 시인 자신이며 시를 읽는 우리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위 바지락에서 언급한 사물적 감각과 사물적 감각에 대한 공감이라는 부분 집합의 또 다른 영역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김경숙은 지속해서 바다와 관련한 시를 지어냈다. 바다가 보여주는 모습과 바닷속 생명의 이야기에서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를 쉽게 끌어낸다는 점에서 시선의 일치 같은 문학적 에고이즘을 읽었다. 하지만 다음에 소개하는 두 편의 시에서는 바다로 인해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해녀)에 대한 것으로 시선의 확장을 유도한다. 김경숙의 눈이 겹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해녀와 관련한 시 열다섯 편 중 세 편을 선정해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

 

탈의장

-해녀·1    

 

물이끼와 곰팡이 사이 갯강구가 우글거리는 탈의장, 한쪽 벽면에 붙박이로 늘어선 대못이 녹슨 목에 한사코 걸어 놓고 있는 고부자. 홍영자. 정순옥. 양연하. 양연옥… 빛바랜 이름표들이 굽은 등을 기대고 함께 늙어가고 있다 형제봉 일출보다 먼저 갯가로 나와 납덩이에 몸을 묶고 열길 물속으로 뛰어들어 바튼 숨 몰아쉬던 때도 서로 곁을 살폈다 마주보며 낡아온 이름들이 젖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탈의되지 못한 몸을 내려다보며 건져 올린 물풀처럼 말라가고 있다 전복 하나를 따면 연필을 사고 문어 한 마리가 모여 학비가 되었다 산더미 같은 성게가시를 갈라 집을 사고 작은 고깃배를 장만하고 자식들 출가시키느라 무거워진 몸을 끌고 돌아와 눕는 밤이면 이제 물질은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날마다 물질하는 꿈을 꾼다  

 

푸르게 반짝이던 젊은 이름들이 

뒤틀린 관절을 삐걱거린다 

파도소리 쪽으로 발을 뻗어보며 

링거를 매단 중환자처럼 

녹슨 못에 매달려 빛바래고 있다『김경숙, 탈의장』전문

 

엄마는 해녀였다

―해녀·2

   

 

걸음마 때부터 바닷가를 걷기 시작했던 엄마

갯바위에 걸터앉아 물장구치다가

떠밀려온 미역, 조개껍데기를 건지면서

물풀과 함께 키가 컸다

겨우 땅 짚고 헤엄치다가

눈 밝게 고동을 잡고 소라를 잡고

놀이삼아 파래를 건져 올릴 때마다

어른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놀이가 돈이 되는 줄 알면서부터

학교대신 물 밭에서 철이 들어

더 깊은 물질로 꿈을 키웠다

 

해녀가 된 엄마가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물밑 차가운 수온이 아니고

물 위 가슴 치는 거친 파도가 아니고

턱에 닿는 허기도 아니었다

수압에 눌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두개골이 빠개질 것 같은 아픔

이른 나이에 난청이 되었는데

거친 파도를 닮는 엄마 목소리였다

 

낮잠을 자다가도 귀를 틀어막고 일어나

따라온 바닷물을 토해냈다

또 물질하는 꿈을 꾸었냐고

식은땀을 닦아주는 내 목소리도

영락없이 파도소리를 닮아갔다

제주를 떠나온 지 반평생이 지나

비단 솜이불에 몸을 뉘여도

엄마는 파랑 속 꿈길을 무겁게 오간다

『김경숙, 엄마는 해녀였다』전문

 

성게를 까며

―해녀·13

 

 

 

방파제에 앉아 성게를 깐다 부르튼 손바닥에서 비린내가 핀다 가시가 전부인 성게가 칼끝에서 가시를 세운다 손가락을 찌르는 가시를 재빨리 떼어내는 그녀, 힘주어 쥔 칼이 날카롭게 흔들린다 유독 손마디가 굵은 그녀는 얼마 전 다녀왔다는 요양병원을 이야기를 한다 야자수가 둘러싼 병실이 무덤처럼 쓸쓸했다며 우울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린다 사람들이 침대위에서 가시처럼 말라가고 있다며 마른 침을 삼킨다 영양제를 꽂고 누워서 몸이 야위어가는 것은 자식에게 가시가 되는 거라며 목에 가시가 돋는지 입술을 쓸어낸다 병원건물을 사이에 두고 장례식장이 있어 삶과 죽음이 한 발짝이라며 노란 성게 알을 그릇에 담는다 젊어 혼자되어 풍랑 속을 살아왔으니 죽는 복이라도 타고나 자는 듯이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바닥에 떨어진 성게 알을 바닷물에 헹궈 입에 넣는다 흠칫, 새로 돋은 혓바늘에 눈물이 찔린다 그녀, 내장이 붙어있는 성게 껍데기를 바다에 던진다 잠시 물이랑에 가늠할 수 없는 정적이 흔들리다 기우뚱 가라앉는다 가시를 벗고 삶을 빠져나온 성게 종말이 바닥에 수북하고 그녀 등 뒤에서 뚝뚝 노을이 마른다

『김경숙, 성게를 까며』전문

 

 

시를 감상하기 전, 강은교 시인의 시를 위한 일곱 가지 방법 중 몇 가지를 인용해 본다.

 

째 장식 없는 시를 써라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임을 기억하라 셋째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고 자신을,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네 번째, 시의 힘에 대하여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강은교, 시를 위한 일곱 가지 방법』부분

 

장식 없는 시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누구나 글을 짓다 보면 더 좋은 글, 좀 더 회자할 수 있는 글에 대한 욕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욕심이 과하다 보면 수없이 많은 덧칠을 하게 된다. 덧칠에 덧칠하게 되면 결국 시라는 캔버스는 온갖 물감이나 질료들이 범벅되어 우스꽝스러운 검은 색을 연출하게 될 것이다. 평자는 어느 평론에서 이런 덧칠을 경계하며 촌평을 던진 적이 있다.

 

서정, 서사, 자유, 허무 등등의 시 세부 장르에 근본은 삶이라는 것이다. 정의하자면 삶에 대한 기본의식이 바로 서지 않으면 글은, 글의 의미를 퇴색하게 할 것이다. 늙은 몸의 예쁜 열매와 보내는 자만이 볼 수 있는 가장 미더운 어깨는 시인의 가슴이며 시인의 주장이며 시인의 세계이며, 그것을 연결해 주는 당위성이 바로 우리와 시를 연결하는 고리임을 알게 된다. 그 연결점에 구차한 액세서리는 때에 따라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김부회, 장의 비만화에 대한 경계 -메타포(metaphor)와 분명히 다른 수식어 또는 수사의 차용과 남용』부분

 

김경숙은 탈의장(해녀1)을 끌어가는데 수식어를 일절 배제했다. 갯강구 우글거리는 탈의장 한쪽 귀퉁이에 걸려있는 빛바랜 이름표를 나열하고, 이름표 주인들이 해녀가 된 사연을 가감 없이 담담하게 서술했다. 그녀들의 몸을 묶은 납덩이와 뭍에 올라온 탈의 되지 못한 몸과 연필을 사고 학비를 대 준 문어의 몸을 서술한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를 꿈을 꾸는 그녀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무거워진 몸을 끌고 돌아와 눕는 밤이면 이제 물질은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날마다 물질하는 꿈을 꾼다 

 

해녀가 아니라도 우리 부모들의 삶이 그러했고, 나 역시 그런 삶을 살아왔다. 해녀가 바다를 뒤져 문어를 잡을 때 우리 역시 아스팔트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해녀의 독백과 같은 독백을 되뇌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일체의 수식어가 없는 것이 담백하고 진솔하다. 삶이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 삶이다. 그 삶에 액세서리가 달리고 다이아몬드 반지가 손가락에서 반짝거리는 순간 이미 보통의 삶은 지나가는 것이며 공감의 영역을 그 빛의 강렬한 번쩍거림만큼 잃게 되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말처럼 푸르게 반짝이던 젊은 이름들이 뒤틀린 관절을 삐걱대는 소리에 귀 기울지 않으며 반짝이던 이라는 말의 배후를 짐작하지 못하고 망각하게 된다. 수식어가 배제된 글에서 진정성이 묻어난다. 수식이라는 말은 상상이라는 말과 다른 말이며 감상이라는 말에 더 가까운 말이다. 첫 장에서도 강조한 바 있는 근원을 보는 것,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은 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며 우선 되어야 한다.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상상을 전해 한다는 것은 거짓이며 글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엄마는 해녀였다(해녀2)에서 김경숙이 본 해녀를 조망해 보자. 그 조망된 일상의 어딘가에 우리네 엄마와 내 모습의 어슷하게 일치하는 부분을 떠올려보자.

 

 

◆떠밀려온 미역, 조개껍데기를 건지면서

물풀과 함께 키가 컸다

 

◆놀이가 돈이 되는 줄 알면서부터

학교대신 물 밭에서 철이 들어

 

◆이른 나이에 난청이 되었는데

거친 파도를 닮는 엄마 목소리였다

 

◆따라온 바닷물을 토해냈다

 

◆영락없이 파도소리를 닮아갔다

 

◆비단 솜이불에 몸을 뉘여도

엄마는 파랑 속 꿈길을 무겁게 오간다『김경숙, 엄마는 해녀였다』부분

 

김경숙이 묘사한 해녀의 모습이다. 시적 질감을 찾아보자. 수사적인 기법이나 기술적 제유나 환유를 찾아보자. 없다. 이 시에는 엄마 = 해녀라는 등식만 존재한다. 난해한 시나 미래파의 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차방정식의 해설이 없다. 아니 추정도 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한 강은교 시인의 일곱 가지 방법 중 네 번째를 다시 가져와 보자.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전율은 좋은 문장에서도 느낄 수 있다. 최근 문단 젊은 시인 중에 강력한 전율을 주는 김경주 시인의 [획]을 한 번 보자.

 

획劃

 

김경주

 

새들이 마주 오는 죽은 새들을 마주칠 때

그들은 서로의 속눈썹을 얼굴로 쓰다듬고 지나간다

 

바람은 그 높이에선 늘 눈을 감는다

 

서로 다른 붓털이 만나서 만들어 가는 하나의 획

 

이상하게 한 획을 긋는 붓에서는 바람 냄새가 난다

 

붓을 삶는다

 

삶은 붓은

혈압에 좋다『김경주, 획』전문

 

김경주의 획과 김경숙의 엄마는 해녀였다는 분명히 다른 질감을 갖고 있으며 다른종류의 전율을 준다. 김경주의 질감과 전율이 김경숙의 질감과 전율보다 더 좋다고 분명히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며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무언가 독자에게 준다는 점이다. 그것이 화려한 치장과 웅숭깊은 철학적 사유에 의한 것이든 해녀가 된 엄마가 가장 견디기 힘든 두개골이 빠질 것 같은 아픔, 난청의 고통이든 우리는 같은 질량의 전율을 얻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박자 늦게 다가오는 전율이 있는가 하면 한 박자 빨리 다가오는 전율도 있다. 그 모든 것이 시인의 전달력이며 시인의 질감이며 시적 질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 질감을 얼마나 더 강철 같은 알레고리를 사용하느냐 유연화된 알레고리를 갖추고 있느냐 하는 문제는 온전한 독자의 몫이며 시인이 갖고 있는 물감의 多色化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때 보통사람을 위한 보통사람의 정치라는 슬로건이 유행한 적이 있다. 시라는 장르 역시 문학의 한 갈래이며 문학적 가치를 논하는 것이 가장 먼저라는 이론도 맞는 이론이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대승적인 견지에서 본 문학적 가치의 베이스와 좀 더 소승적인 견지에서 본 문학적 가치의 베이스에는 공통으로 삶이라는 것이 스며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쉬운 말로 소통이라는 말이다. 소통은 전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감정의 전이, 감각의 전이, 생각의 전이, 사물에 대한 시선의 전이, 상상의 전이, 추상의 전이, 관념의 전이 등등 모든 物我의 본질이 내게서 네게로 가는 통로이며 네게서 다시 내게로 오는 무한 반복의 고리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다.

 

김경숙의 성게를 까며(해녀 13)에서 김경숙의 본 해녀는 성게를 깐다. 성게가 칼끝처럼 세운 가시를 재빨리 떼어내는 해녀를 묘사한다. 아마도 성게 알은 누군가의 식탁 위에서 밥상의 풍미를 더 할 것이다. 그 시간에 엄마는 요양병원 갔다 온 기억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성게 알이 수북이 쌓일수록 요양병원에 다시 갈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엄마의 눈자위가 성게 알 색을 닮아간다는 것을, 엄마의 소원이라면 젊어 혼자되어 한평생 풍랑 속을 살아왔으니 잠자는 듯 가는 것이 소원이라는 것을, 김경숙은 말하고 있다.

 

가시를 벗고 삶을 빠져나온 성게 종말이 바닥에 수북하고 그녀 등 뒤에서 뚝뚝 노을이 마른다『김경숙, 성게를 까며』부분

 

김경숙의 시 몇 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게 종말이 바닥에 수북하고, 그녀 등 뒤에서 뚝뚝 노을이 마른다는 것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살아왔으며 살며 살아갈 것이다. 바다가 자궁이라면 바다를 포함한 그곳에 사는 생물들, 생명, 바다와 관계된 그 모든 것들의 메시지는 母音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음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배제하고 법정 스님이 설파한 영혼의 모음이라는 글 일부를 인용해 본다.

 

그리고 여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밀밭이, 어린 왕자의 머리가 금빛이라는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황금빛이 감도는 밀을 보면 그리워지고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가 좋아질 거라고 했다. 그토록 절절한 '관계'가 오늘의 인간 촌락에서는 퇴색해 버렸다. 서로를 이해와 타산으로 이용하려 들거든.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나와 너의 관계가 없어지고 만 거야. '나'는 나고 '너'는 너로 끊어지고 말았어. 이와 같이 뿔뿔이 흩어져버렸기 때문에 나와 너는 더욱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거야. 인간관계가 회복되려면, '나', '너' 사이에 '와'가 개제되어야 해. 그래야만 '우리'가 될 수 있어. 다시 네 동무인 여우의 목소리를 들어볼까.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다 만들어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사면 되니까. 하지만 친구를 팔아주는 장사꾼이란 없으므로 사람들은 친구가 없게 됐단다. 친구가 갖고 싶거든 날 길들여!"『법정, 어린 왕자에게 보내는 편지/영혼의 모음』부분

 

바다는 생산을 한다. 바지락도 상어도, 오징어와 물고기와 파도와 밤바다의 별과 파랑이는 오후와 해녀와 성게와 방파제와 섬까지, 어느 날 바다에서 나온 모든 것들의 모음에 귀 기울여보면 삶이 보일 것 같다. 삶은 알몸일수록 더 잘 보이는 습성을 갖고 있다. 김경숙의 시는 알몸이다. 김경숙이 펼쳐놓은 유연화된 질감에 솔깃해 보자. 그 소통의 언어와 감성과 느낌에 충실할 때 우린 자연의 위대함과 사람과 사람 사이 실종된 관계가 회복될지도 모른다. 그것이 시적 상상력의 온유함이며 시인의 능력일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본 세상을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며, 그 공유의 궁극은 나는 나, 너는 너 가 아닌 나와 너, 우리 사이에 수배된 [와]를 찾는 길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사람 속에 살 때 가장 사람답다는 것을 그녀의 시에서 배운다.

 

끝으로 김경숙이 보는 바다에 대한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시 한 편을 소개하고 맺는다.

 

등대

 

연대기를 알 수 없는 선사시대 때부터

웃음을 잃어본 적이 없는 꽃

혼자 사랑하고 짝을 짓고

뜨거운 꽃잎을 자웅동체로 출렁거렸다

날마다 물결 깊은 곳에다 살을 섞고

먹먹해진 가슴으로

잇몸을 들어내고 혼자 웃어보는 꽃

물에 젖지 않는 발아래

외눈박이 물고기가

만 평 파도를 산란하고 있다

『김경숙, 등대』전문

 

 

프로필

 

김경숙 (시인, 수필가)

호: 지헌知軒/ 서울출생

세계모던포엠 작가회 수석 부회장/한국바다 문학상 수상

제7회 세종문화예술상 문학대상 수상/ 제19회 해양문학상 수상

저서 『소리들이 건너다』『이별 없는 길을 묻다』『우리시대의 나그네』『먼 바다 가까운 산울림』『얼룩을 읽다』

 

◆글/ 김부회 시인, 수필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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